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탄핵정국 이후 정부 고위급 관료로서는 처음으로 방미에 나섰다. 원전 업계에서는 안 장관의 방미가 오는 3월 본계약을 앞둔 체코 신규원전 수주와 관련한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한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6일 원전업계에 따르면 안덕근 산업부 장관이 6일부터 10일까지 미국 방문에 나선 가운데 통상 이슈 등 여러 현안이 있지만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체코원전 수주 관련 지식재산권 협상 문제일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원전업계 한 관계자는 “이 시점에 산업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한 이유는 다른 산업분야 협력도 있지만 당장 체코 원전 본계약을 두달 여 앞둔 상황에서 수주의 최대 걸림돌인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적재산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이유가 가장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안 장관은 지난해 7월 체코원전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직후인 8월에도 미국을 방문해 지적재산권 분쟁 해결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다만 당시 뚜렷한 해결책이 도출되지 않았고 이에 지난해 11월에도 미국을 방문한 뒤 이번에 재차 방문하게 됐다.
이 관계자는 “미국 정부와 협상을 하러 갔지만 사실상 웨스팅하우스만 우리의 체코 수출을 수용하면 미국 정부와의 문제는 없다고 봐도 된다"며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국내 정국까지 불안정해지면서 다소 불리한 합의를 맺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웨스팅하우스는 미국의 세계적인 종합 원자력 기업이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이 체코 등 해외에 수출하려는 원전 기술이 자사 것이라며 미국 수출통제 규정을 적용받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22년 미국에서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동시에 한국에서는 대한상사중재원의 국제 중재 절차가 진행 중이다.
웨스팅하우스 측은 “소송을 통해 계속해서 자사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미국 수출통제 규정을 준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업계에서는 안 장관이 미국 정부와의 협상에서 최대한 우리나라에 유리한 협약을 이끌어 내길 기대하고 있다. 한국과 웨스팅하우스 측에 과거 아랍에미리트연합(UAE)바라카 원전 진출 당시 맺었던 컨소시엄 형태로 협력하는 방안을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지적재산권 분쟁은 사모펀드가 보유한 웨스팅하우스의 비즈니스적 협상 전술이며 결국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에너지경제와 통화에서 “미국이 한국의 원전 수출을 제동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며 “사모펀드가 웨스팅하우스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들의 문제제기는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한국과 미국 정부 차원의 문제인데 미국 정부가 웨스팅하우스 하나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것 같지는 않다"며 “한국과 미국은 원전 수출에서 협력하는 게 서로에게 가장 유리하다. 현재 두산에너빌리티가 뉴스케일의 SMR(소형모듈원전) 주기기 제작을 12기나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미국 내 원전 건설에도 한국과 협력을 많이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웨스팅하우스가 제기한 지적재산권 문제는 결국 우리가 오는 3월로 예정된 본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게 하거나 우리나라와 조정을 하든지 둘 중 하나"라며 “수출에 차질을 빚는 것은 사실상 파국으로 가는 건데 미국도 안보 전략 차원에서 그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웨스팅하우스는 설계 등의 분야에서 원천기술을 갖고 있지만 건설 능력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되는 수준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시공이나 기자재 분야에서 강점이 있다. 양국의 강점을 토대로 협력하는 모델이 가능할 것"이라며 “UAE 바라카 원전에 한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참여한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진행되는 게 '윈-윈'"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 UAE에 수출한 바라카 원전 상업운전에 성공해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캐나다에 이어 세계 6번째로 수출 원전이 실제 운영되는 국가가 됐다.
현재 체코, 폴란드,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신규 원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체코는 두코바니 지역에 8조원 규모로 1000∼1200메가와트(MW)급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프랑스, 미국 등과의 수주 경쟁을 거쳐 지난해 7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폴란드는 총 6000∼9000MW 규모의 신규원전 6기 건설을 위해 잠정부지를 선정했으며 한국과 미국, 프랑스 등과 신규 원전 도입을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차세대 원전 2기를 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업계 일각에서는 해외 수출 때마다 사사건건 부딪히는 웨스팅하우스를 차라리 한국 측에서 인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돼왔다.
실제 안덕근 장관도 지난해 말 공개석상에서 “산업계와 공공기관이 힘을 합쳐 웨스팅하우스 지분을 일부 인수하길 바라지만 미국이 팔려고 하겠느냐라는 문제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