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담당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에너지 기업들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2기 출범을 앞두고 정책수립과 대응 전략 마련이 한창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화석연료 및 원전을 확대할 계획인 가운데, 국내 에너지업계는 저렴한 미국산 천연가스 도입으로 인한 요금 안정화를 기대하고 있으며 원전 업계는 미국과 원전 수출에 적극 협력한다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현지시간으로 20일 취임식을 갖고 이날 낮 12시(한국시간 21일 오전 2시)부터 공식적인 업무에 돌입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의 석유·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생산을 대폭 늘리겠다고 선언한 만큼 우리나라도 이 물량을 대량으로 구매해야 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트럼프 2기의 에너지 정책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확대를 주요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에너지 수입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LNG 총 수입량은 4633만톤이며, 순위별로 보면 1위 호주 1141만톤, 2위 카타르 888만톤, 3위 말레이시아 614만톤, 4위 미국 564만톤, 5위 오만 473만톤을 기록했다. 미국 물량을 더 늘릴 여지가 충분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LNG는 가격도 저렴하다. 국내 수입액을 수입량으로 나눈 단순 도입단가를 보면 톤당 카타르 745달러, 오만 733달러, 호주 628달러, 말레이시아 551달러, 미국 548달러로 미국이 가장 저렴하다.
에너지업계에선 국내 전력도매가격이 LNG 발전기에서 결정되는 만큼 저렴한 미국산 LNG 물량 도입을 통해 전기요금 안정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재무위기에 허덕이는 한전, 한국가스공사 등의 에너지 공기업 재무상황이 개선되고 제조업 경쟁력도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한전 적자해결을 위해 지난해와 지지난해 모두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했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 국내 정세 불안으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연료도입 비용이 증가해 기업들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는 수출주도형 제조업의 원가경쟁력을 약화시켜, 중소 철강사 등은 공장의 해외 이전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또한 일부 석유화학 기업들은 자가발전, 전력도매시장 전력직접구매도 적극 검토중인 상황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산 천연가스 생산과 수출을 늘리겠다고 천명한 만큼 우리나라로선 이 물량을 도입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줄이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며 “한국은 에너지 자원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저렴한 에너지 공급은 국내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화석연료에 대한 미국의 의존 증가는 장기적으로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한국은 국제 사회의 환경 규제 강화와 탄소 중립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와 탈탄소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 미국의 정책 변화로 한국도 화석연료 활용을 강화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이렇게 되면 에너지 전환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원전업계에서는 원전 활용 확대에 긍정적인 트럼프 정부와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첫 대통령 취임 당시에도 원전 부활을 선언하고, 침체된 원전 산업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대선에서 승리하면 미니 원전으로 불리는 소형모듈원자로(SMR)를 중심으로 원전 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최근 한미 양측은 체코원전 수주를 둘러싼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과 웨스팅하우스 간 지적재산권 분쟁에 대해 수출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지적재산권 문제 제기와는 별도로 최근 수년간 한국을 찾아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한전과 한수원 등 전력·원자력 기업들을 방문한 바 있다. 업계에선 웨스팅하우스가 한국 쪽에 원전 공정 관리나 건설·기계 분야의 협력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웨스팅하우스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한국과 미국 정부가 웨스팅하우스의 시공 능력 부족으로 미국에서 추진 중인 원전 공사를 한국 기업에 넘기는 방안도 협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웨스팅하우스는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 보글(Vogtle)원전 3,4호기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썸머(Summer)원전 2,3호기를 건설 중이다. 보글 원전은 올해 준공 예정이지만, 썸머 원전은 수차례 지연된 끝에 중단된 상태다.
이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가 해당 원전용으로 만들고 있던 원자로와 터빈 등 주기기를 남겨놨다가 수출할 때 쓰려고 하는데, 이 기기들은 한국 기업인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제작해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주기기 외에 나머지 건설 부문도 한국 업체들에게 넘겨 미국 내에서 완공을 하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폴란드나 다른 동유럽 국가로 수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유승훈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한국의 에너지 정책과 업계에 긍정적 영향과 부정적 영향을 동시에 미칠 수 있는 복합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한국은 미국의 정책 변화를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이에 맞춰 탄력적인 전략을 수립해 에너지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