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기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이 427조원을 넘어섰다. 은행, 증권, 보험업계를 통틀어 전년 대비 45조원이 증가한 가운데, 증권업계는 20%라는 두드러진 성장률로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상장지수펀드(ETF)를 중심으로 한 투자 확대와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시행이 주요 성장 요인으로 꼽힌다.
작년 3분기 말 기준 은행, 증권, 보험 등 42개 사업자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427조1916억원에 달한다. 2023년 말 382조원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불과 1년 새 45조원, 12%가량 커진 것이다. 이는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IRP를 모두 합산한 수치다.
이 중 증권업계의 성장이 단연 눈부시다. 작년 말 14개 증권업 퇴직연금사업자들의 총 적립금 규모는 약 104조원으로 전년 말(87조원) 대비 20%(17조원) 급증했다. 동 기간 보험업계가 약 5조원 증가한 것에 비하면 상당한 성과다. 비록 28조원이 증가한 은행권에 비해서는 규모가 뒤쳐지지만, 상승 비율로 따지면 오히려 은행(14%)을 앞선다. 그만큼 증권업 퇴직연금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 퇴직연금 성장 1등 공신은 작년 10월 31일 본격 시행된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다. 이는 가입자 손실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 다른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에 은행·보험에서 원리금 보장 상품 위주로 퇴직연금을 적립하던 투자자들이 상장지수펀드(ETF)를 중심으로 좀 더 기대 수익률이 높은 증권사로 '머니 무브'를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는 중 각 증권사가 거둔 성과들도 눈에 띈다. 우선 29조원이 넘는 적립액으로 업계 선두를 달리는 미래에셋증권은 DC, 개인형 IRP 적립금만 작년 6조원이 증가하며 전 업권에서 독보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4분기에만 1조9720억원의 적립금이 새로 들어왔다.
이에 질세라 한국투자증권도 작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이 16조원을 돌파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말 15조원을 넘어선 후 두 달 만에 1조원이 증가한 규모다. 특히 한투증권의 상품 '디폴트옵션고위험BF1'의 1년 수익률은 26.56%로 증권업계 최고를 기록했다.
이에 퇴직연금에 큰 관심을 갖지 않던 증권사도 새롭게 시장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키움증권은 현재 '퇴직연금 TF'를 가동해 미래 신사업으로 육성하려 하고 있다. 그간 주식 위탁매매에 강점을 뒀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해당 TF는 자산관리(WM) 부문 산하로 정규 조직화할 예정이며, 내부에서 상품 개발, 인력 확보도 적극 진행 중이다.
원리금비보장형 상품의 인기 요인이 바로 ETF인 만큼 각 자산운용사들도 쾌재를 부르고 있다. 특히 ETF 시장은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의 총 점유율이 80%에 달할 정도로 과점 상태지만, 퇴직연금 투자자들이 유입돼 중소형 운영사의 상품임에도 순자산총액(AUM)이 크게 증가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신한자산운용의 'SOL 미국배당 미국채혼합50' ETF는 이달 들어 상장 3개월 만에 순자산 2000억원을 돌파, 초기 대비 20배 이상 성장했다. 전체 자금 중 90% 이상이 퇴직연금 계좌를 통해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ETF는 미국배당 다우존스와 미국채 10년물을 5대 5 비율로 투자하는 상품으로 퇴직연금 계좌에서 납입금 100% 투자 가능해 수혜를 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