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역폭메모리(HBM)의 매출 기여도에 따라 반도체 업계의 영업이익률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인공지능(AI) 시장 개화에 따라 수요가 큰 폭으로 확대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한 SK하이닉스가 창사 이래 최대실적을 기록하며 부동의 1위였던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앞지른 상황이다.
'역대급 성적' 하이닉스, 삼성보다 이익률 3배
23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23조4673억원으로 전년(영업손실 7조7303억원)의 영업손실을 깔끔하게 털어냈다. 영업이익률은 무려 35%다. 같은 기간 매출은 66조1930억원으로 102%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4분기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은 8조828억으로 영업이익률은 41%를 기록했다.
매출은 기존 최고였던 2022년 44조6216억원보다 21조원 이상 높은 실적을 달성했고, 영업이익도 메모리 초 호황기였던 2018년 20조8437억원의 성과를 넘어섰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창사 이래 최대이다.
SK하이닉스가 호실적을 기록한 반면, 삼성전자는 실적이 부진해 양사의 영업이익률 격차가 3배에 달할 전망이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작년 3분기까지 매출 80조9700억원, 영업이익 12조2200억원을 기록했다. 증권업계에서 추정하는 작년 4분기 DS 부문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9조2500억원, 3조1500억원으로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이 같은 실적이 확정될 경우 삼성 반도체의 작년 영업이익률은 13.9%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2021년만 해도 영업이익률 측면에서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비교해 열세를 보였다. 당시 SK하이닉스의 이익률은 29%, 삼성전자 DS 부문은 31%였다.
양사의 이익률 차이를 만든 건 HBM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혁신적으로 끌어올린 고부가·고성능 제품이다.
HBM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는 2023년 ChatGPT 등장 이후 AI 열풍과 함께였다.
챗GPT는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하기 위해 1만개가 넘는 엔비디아의 그래픽 처리장치(GPU)를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GPU에는 고성능 메모리인 HBM이 탑재된다.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려면 데이터 처리와 저장 기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3월 HBM 5세대인 HBM3E 8단을 AI 큰손 고객인 엔비디아에 업계 최초로 납품하기 시작한 데 이어 지난해 9월에는 HBM3E 12단 제품도 세계 최초로 양산에 돌입하는 등 HBM 시장 주도권을 확실히 잡았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작년 4분기에도 높은 성장률을 보인 HBM은 전체 D램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했다"며 “차별화된 제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수익성 중심 경영으로 실적 개선세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수차례 엔비디아의 HBM3E 품질 검증을 시도했으나 통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CES 2025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삼성은 디자인을 새로 설계해야 할 수 있다"며 쐐기를 박았다.
TSMC 40%대 이익률…마이크론 10%p 이상 주저앉아
이 같은 추이는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와 미국 마이크론의 영업이익률 변화 추이에서도 드러난다.
TSMC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45.7%로 2021년과 비교해 4.8%p 상승하며 질주하고 있다.
마이크론의 2025 회계연도 1분기(2024년 9~11월) 영업이익률은 24.9%로 2021 회계연도 4분기(2021년 6~8월, 38.6%)와 비교해 13.7%p 하락했다.
TSMC는 7나노 이하 첨단 공정 시장에서 엔비디아를 비롯해 애플, AMD 등 주요 고객들을 싹쓸이 하며 AI 호황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고성능컴퓨팅(HPC)'에 집중하는 전략도 역대급 영업이익률 달성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HPC는 AI로 고성능 연산을 하기 위한 컴퓨터로 고부가 반도체가 필요해 다른 매출처보다 수익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HBM 시장을 SK하이닉스에 내준 마이크론은 영업이익률 하락을 면치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선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 격차가 30%p를 웃돌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