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이 수립 기한을 넘겼다. 전기본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년 단위로 수립하여 시행한다. 11차 전기본의 계획기간이 2024년부터 2038년까지이니 계획이라는 의미를 살리려면 2023년에는 수립되어야 맞겠으나 그동안 시작년도에 수립해 왔다. 이번에도 지난해 5월에 실무안이 나온 뒤 산자부는 연말에 확정하려 하였으나 계엄사태로 해를 넘기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산자부는 실무안을 일부 수정한 조정안을 만들어 국회를 설득하고 나섰으나 에너지정의행동 등 시민단체가 백지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등 반발하고 나섰다.
이번 전기본은 지난해 실무안이 나왔을 때부터 근본적인 문제들이 지적되어왔다. 한 차례 공청회를 하기는 했지만 수정 의견들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국회 보고용 조정안조차 환경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요구를 미미하게 반영한 수준에 머물렀다.
첫 번째로 제기되는 문제점은 과다한 목표 수요이다. 11차 전기본은 2038년의 최대 전력수요를 129.3GW로 전망하여 22%의 예비율을 적용해 157.8GW의 설비가 필요하다고 설정하였다. 그리고 그때까지 가동하는 기존 발전설비와 기 계획된 발전설비 총 147.2GW를 감안하면 추가로 10.6GW의 발전설비가 필요하며, 이는 대형 원전 최대 3기와 소형 모듈러 원전, 가스복합발전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이 목표 수요는 10차 전기본의 2036년 목표치 118GW보다 불과 2년 후에 11.3GW를 높여 잡은 것으로 그에 따라 신규 필요 설비량도 1.7GW에서 10.6GW로 대폭 늘어난 것이다. 이는 대형 원전 3기를 추가하기 위해 목표 수요를 늘려잡았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1인당 전력소비량은 11,402kWh로 세계 14위이다. 노르웨이나 스웨덴 같이 수력전기가 풍부한 나라와 일부 산유국을 제외하고는 우리가 가장 많다. 독일의 1인당 전력소비량 5,500kWh에 비하면 약 2배 수준이다. 우리나라 전력의 열량 당 가격이 석유, 가스보다 싼 것도 한몫하였다.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우리의 경쟁국들은 에너지 효율이 우리의 2배 수준이며 이미 경제성장과 에너지 소비가 동반하지 않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에너지 효율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에너지 수입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개별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길이기도 하다. 이번 전기본은 계획의 출발점인 목표 수요를 전망하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두 번째는 에너지 안보에 대한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이다. OECD 국가 중 에너지 안보가 가장 취약하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제일의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일 취임 일성으로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미국의 에너지 독립을 달성하여 경제를 부흥시키겠다고 선언하였다
우리나라는 1988년 '대체에너지개발촉진법'을 제정하여 에너지원의 수입대체를 위한 노력을 본격화하였다. 이미 육상풍력발전의 보급이 궤도에 오르고 있던 시점이다. 이후 태양광 발전이 빠르게 성장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 법의 명칭은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으로 바뀌었다. 이 중 신에너지는 화석연료를 활용하는 것이므로 사실상 에너지 이용 합리화라고 보아야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진정한 자립 에너지이다. 97.5%까지 올라갔던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3% 수준으로 내려온 것은 더디나마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보급된 덕분이다. 이에 따른 수입대체 효과는 약 10조원에 달한다.
그런데 11차 전기본의 재생에너지 목표는 2030년에 총 발전량의 18.7%, 2038년에 29.1%에 불과하다. 국회 설득용 조정안에는 기존안에서 0.1%를 상향하였다. 참으로 안이하기 이를 데 없다. 독일은 이미 올해 초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62.7%를 기록하였다. 주춤했던 유럽의 재생에너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다시 불붙었다. 에너지 안보가 더욱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손실이나 좌초할 자산이 아니다. 200조원에 이르는 에너지 수입의 대체 효과는 물론 강화되는 기후위기 대응 압박에서 우리나라 산업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 재생에너지 목표는 대폭 상향 조정되어야 한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독선과 극한의 사고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사회로 재정립되는 해가 될 것이다. 전기본의 지연 사례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7개월이나 늦은 해도 있었다. 산자부는 11차 전기본의 강행을 유보하고 출발부터 다시 점검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