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느리게 진행돼 왔던 수소 경제 생태계 구축 작업이 올해는 아예 후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으로 화석연료가 더욱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정부가 강력한 정책을 내놔야 했으나 올해 정치 갈등이 심각해지면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수소 관련 사업을 진행해왔던 SK, 두산, 효성 등 대기업은 올해 관련 사업을 가속화하기보다 관망하는 모습이며, 중소 협력사들은 아예 사업을 포기하고 있다. 이에 수소 생태계 구축 작업이 후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계열사 두산퓨얼셀은 고심 끝에 올해 세계 최초로 실시한 청정수소발전시장입찰(CHPS) 입찰을 포기했다. CHPS는 매년 일정 규모 이상의 청정수소로 발전한 전기를 한국전력 등이 의무적으로 구매해 주는 제도다.
3일 산업권에 따르면 국내 수소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들 사이에서 더욱 강력한 정부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정부가 내놓았던 로드맵에 따라 수소 생태계 구축이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라 더욱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10월 기준 국내에 등록된 수소차는 3만6007대에 불과하다. 이는 지난 2019년 정부가 발표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의 2022년 수소차 보급 목표인 6만7000대의 절반 가량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러나 지난해 연말에 이어 올해까지 계엄령 사태와 탄핵 등의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면서 정부가 강력한 수소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때문에 수소 사업을 핵심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밝혀왔던 국내 대기업들 사이에서도 수소 관련 사업을 관망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실시한 청정수소발전시장입찰(CHPS) 입찰에서 석탄·암모니아 혼소발전을 추진하는 한국남부발전만 낙찰자로 선정됐다.
CHPS는 매년 일정 규모 이상의 청정수소로 발전한 전기를 한국전력 등이 의무적으로 구매해 주는 제도로 주목을 받아왔다. 당초 산업통상자원부는 청정수소·암모니아를 통해 연간 6500GWh 전력을 생산할 계획이었으나, 이번 입찰량 전체의 11.5%(750GWh)에 불과했다.
특히 이번 입찰에서 눈에 띄는 점은 경쟁 입찰에 뛰어든 사업자 중 민간 기업은 SK이노베이션 E&S가 유일했다는 점이다. 앞서 수소 사업을 핵심 성장동력으로 낙점했다고 밝혔던 두산에너빌리티, 두산퓨얼셀, 효성중공업 등의 기업들은 아예 참여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가격 경쟁력 면에서 수소 연료전지 발전 방식이 석탄 혼소발전에 완전히 밀려난 결과로 풀이된다. 국내 수소 관련 대기업들이 대규모 생산 체제를 갖춰 가격 하락을 유도하기보다는 생태계 구축 가능성에 의문을 갖고 관망세로 돌아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간 주도 사업 중에서는 좌초되는 사업도 적지 않다. 최근 3년 동안 두산에너빌리티는 한국중부발전, 제이씨에너지와 '수소에너지 신사업 추진 협약'을 체결하고 전남 영압군 대불국가 산업단지 내 100MW 규모의 연료전지 발전사업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두산에너빌리티와 함께 사업을 추진해왔던 협력사 제이씨가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중도하차하면서 관련 사업이 좌초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이씨 측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수소발전 시장 전체의 규모를 작게, 분산형 발전에 유리한 형태로 계획한 탓에 기존 사업이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파악된다.
수소 사업 관계자는 “현 정부가 청정수소 공급망 구축과 세계 1등 수소산업 육성을 목표로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 방향을 제시한 바 있으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실행력을 잃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을 벗어나 수소를 포함한 전반적인 에너지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리더십을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