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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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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자체 근거없는 ‘게임=중독’…게임산업 멍든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7.13 14:43

성남시중독관리센터 공모전 4대 중독에 게임 포함
경기도일자리재단도 게임산업 고용지원 대상 제외
과학·정책 근거 요구에 답변 회피 책임 떠넘기기만
학계 연구 결과 “게임, 이용자 문제행동 영향 미미”
업계 “사회적 낙인 우려…인식개선·정부기준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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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공공기관이 최근 사업 추진 과정에서 게임을 중독으로 규정해 논란을 빚고 있다. 게임 이용자를 향한 사회적 낙인을 챗GPT로 형상화한 모습.

다수의 공공기관이 최근 사업 추진 과정에서 게임을 '중독'으로 규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더욱이 '게임=중독' 논란에 게임산업업계가 반발하며 해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소관부처들이 뚜렷한 입장 표명 없이 서로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해 빈축을 사고 있다.


이에 따라, 게임업계는 '게임=중독'의 부정적인 낙인 효과로 자칫 게임산업이 침체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며 재발방지책 마련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13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경기도일자리재단은 최근 '주 4.5일제 시범사업 참여기업 모집' 공고에서 게임을 도박·유흥과 함께 사행성·불건전 소비 업종으로 분류하고 고용 지원 제외 대상으로 명시했다.


경기 성남시중독관리지원센터도 지난 6월 'AI를 활용한 중독예방 콘텐츠 제작 공모전' 공고 과정에서 인터넷 게임을 4대 중독 항목에 포함했다.


센터측 공고에 반발하는 업계 항의가 빗발치자 경기도일자리재단은 “일반 게임이 아닌 사행성 게임을 제외한다는 뜻이었다"고 해명했고, 성남시 또한 “보건복지부 지침을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두 기관의 입장을 종합하면 사업추진 과정에서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사업 안내'를 참고하는 비중이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정작 보건복지부는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회피하고 있다.


게임 협·단체는 지난달 20일 복지부에 △센터 공모전 관여 정황 △게임을 질병과 동일선상에 놓는 과학적·정책적 논거 △'인터넷 게임'이 4대 중독에 포함된 유권 해석의 존재 여부 △부정적 인식 고착 방지를 위한 복지부의 대응 계획 △성남시의 표현 수정 배경과 정부의 인지 여부 △게임산업·이용자에 대한 공식 사과 계획 등을 질의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국내 13개 게임 협·단체의 공식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센터에서 추진 중인 공모전은 지역 특화 사업"이라며 “중독 관련 사업의 홍보 내용·방법 등 구체적 사항을 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했다. 사업 홍보 방식은 해당 지자체와 센터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같은 보건복지부의 답변을 놓고 업계 안팎에선 지자체와 정부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게임이 왜 중독인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으니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실제로 게임과 중독의 인과관계 및 진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은 과거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고 게임업계는 지적했다.


한덕현 중앙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게임 이용자의 행동 유형을 4년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게임이 이용자의 문제적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교수의 연구 외에도 현재 게임과 중독의 상관관계를 증명한 선행연구는 없다.


한 교수는 “자연 치유를 기대하기 힘든 중독 유형과 차이가 있음에도 게임을 마약·도박과 동일선상에 두는 건 부적절하다“며 "사회가 게임과 관련된 특정 현상을 질병으로 분류하기 위해선 충분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련 법의 기준이 느슨해 특정 부처나 기관의 자의적 판단이 작용할 여지가 큰 상황이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정신건강사업안내'에 명시된 중독 유형 중 '인터넷'이라는 표현이 광범위하다는 내부 논의에 따라 지난해 '인터넷'을 '인터넷 게임'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지침의 법적 근거인 정신건강복지법은 게임을 중독의 범주에 포함하고 있지 않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제15조 3항을 살펴보면,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사업 수행에 포함되는 중독 유형은 △알코올 △마약 △도박 △인터넷으로만 명시돼 있다.


이철우 게임이용자협회장(변호사)은 “관련 법률 어디에도 게임을 중독의 구체적 대상으로 포함한 표현은 없다“며 "그럼에도 복지부가 중독관리 관련 홈페이지와 가이드라인에서 '인터넷'을 '인터넷 게임'으로 자의적으로 변경·표기하는 건 법률의 규정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사업 진행 과정에서 책임자들이 평소에 갖고 있던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게임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용인할 경우 산업 위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만큼 부정적 인식 개선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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