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로고
글로벌 반도체 업계 지형도가 크게 요동치면서 삼성전자의 '인수합병(M&A) 시계'가 더 빨리 돌아갈 것이라는 관측이 업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반도체 제왕'으로 군림하던 인텔이 몰락해 사업 부문을 분할·매각한다는 얘기가 들리는가 하면 기업간 합종연횡이 워낙 활발해 변화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당장 '빅딜'보다는 성장성이 뚜렷한 분야에서 강소기업을 품는다는 소식이 먼저 들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M&A 추진을 공식화한 이후 다양한 국내외 기업들을 살펴보며 물밑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에 참석해 “인공지능(AI)과 로봇, 메디텍, 공조 쪽은 꾸준히 M&A를 하려고 시도하고 있고 많은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작년 3분기 말 기준 약 104조원이다. 전년 같은 시기와 비교해 10조원 이상 늘어난 수치다. 차입금을 제외한 순현금은 87조원 가량 쌓아두고 있다. 반도체 등에서 시설투자를 꾸준히 늘리고 있음에도 '실탄'을 모으며 M&A에 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규모 딜은 꾸준히 성사시켜오고 있다. 삼성전자 자회사 삼성메디슨은 작년 5월 프랑스 AI 스타트업 '소니오'를 인수했다. 산부인과 초음파 진단 리포팅 기술을 갖춘 곳이다. 삼성메디슨은 이를 통해 유럽 우수 AI 개발인력을 확보하는 한편 향후 자사 의료용 AI 솔루션에 소니오의 기술력을 더한다는 구상이다.
삼성전자는 같은 해 7월 영국 기술 스타트업 '옥스퍼드 시멘틱 테크놀로지스'를 품었다. 데이터를 사람의 지식 기억 및 회상 방식과 유사하게 저장·처리하는 '지식 그래프' 원천 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국내에서는 로봇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을 추가 매입해 최대주주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AI·반도체 분야 기업들에 일단 눈독을 들이고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는 경쟁사 SK하이닉스에 밀리고 있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는 대만 TSMC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설계 역량을 갖춘 강소기업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접촉하고 있다고 안다"고 귀띔했다.
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는 점은 삼성전자 'M&A 시계'를 더 빠르게 돌아가게 만드는 요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텔이 파운드리는 TSMC에, 설계는 브로드컴에 넘기는 안을 조율 중이라고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첨단 기술을 미국으로 불러들이는 차원에서 인텔 파운드리를 대만에 넘기려 한다는 게 WSJ의 예측이다. 브로드컴은 인텔의 칩 설계 및 마케팅 사업 부문을 면밀히 검토했고 자문단과 비공식적으로 입찰을 논의했지만 '제조 부문 협력사를 찾는 경우' 등 단서를 달았다고 전해진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반도체 제왕' 인텔의 몰락을 보며 한 기업이 제조·설계를 모두 하기보다 특정 분야에 집중해 기술 격차를 벌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AMD가 약 39조원에 자일링스를 인수한 사건이나 엔비디아가 ARM을 사려다 무산된 사례 등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범위를 AI로 넓히면 글로벌 빅테크와 반도체 업체들은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리며 동맹 또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 오픈AI 등은 전세계를 누비며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오픈AI, 소프트뱅크 등과 AI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중국 '딥시크 쇼크'도 삼성전자 M&A 방향이 일정 수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소비 시장인 중국 시장 전략을 가다듬는 동시에 서방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반(反) 중국' 정서를 활용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국우선주의' 정책을 펼치며 삼성전자에 추가적인 생산시설 건설을 요구할 경우 역시 대비해야 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 변화는 단순히 인텔 분리 가능성 등 사건을 두고 파악하기보다 무역갈등, 기술발전 등 큰 그림을 보고 접근해야 보인다"며 “반도체 기업의 경우 누군가가 사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살 수 없다는 특수성이 있다는 점도 (M&A를 추진하는 삼성전자 입장에서) 눈여겨 봐야한다"고 짚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삼성전자는 반도체, 바이오, AI, 로봇 등 분야에서 역량을 키우기 위한 M&A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