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개헌과 양원제 이야기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3.06 11:01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최근 개헌 이야기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단골로 등장하는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정부제 가운데 국민의 선호도를 묻는 여론조사도 넘쳐난다. 개헌의 시기도 마치 조기 대통령선거가 당연하다는 듯이 이참에 아예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까지 함께 하자는 의견부터 이번에는 후보들이 개헌을 공약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후보로 언급되는 몇몇은 이번에 당선되는 대통령의 임기를 개헌을 통해 3년으로 줄이고 2028년 국회의원선거에서 4년 중임제 동시선거를 하자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개헌론에도 꿈쩍하지 않는 이도 있다.


개헌의 단골 주제 가운데 하나는 양원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최근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새헌법안』을 출판했는데 “국회를 양원제(공화원·민주원)"로 바꾸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검찰 출신 전 여당 대표는 “지역구 의원은 그대로 두되 비례대표 의원을 상원으로 전환해 중대선거구제로 선거를 치르는 양원제 도입"을 주장한다.


최근에 아주 재미있게 읽은 『헌법의 순간』이라는 책에 의하면 사실 양원제는 한국에서 1948년 제헌을 할 때부터 아주 고전적인 주제였고 매우 열띤 찬반의 대상이었다. 잠시 시간을 대한민국의 헌법을 기초하던 시점으로 돌아가자. 유진오 헌법기초위원회 전문위원이 제안한 양원제는 “지역대표와 경제, 교육, 종교 등 직능대표들로" 상원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헌법기초위원들 사이에는 12대 10으로 단원제 지지가 더 많았다. 양원제를 선호하는 입장은 무엇보다 하원과 상원 사이에 서로 견제가 가능하고 두 번의 절차를 거쳐 신중한 결정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와 반대로 단원제를 고집하는 입장은 양원제에서 의사결정에 시간과 비용이 늘어나고 상원이 귀족제의 유산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대한민국 헌법은 단원제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제헌 헌법의 잉크가 미처 다 마르기도 전인 1948년 양원제 도입 논의가 다시 제기되었다.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 12월 18일 제1회 국회 폐회식에서 “(다음) 국회에서 작정할 것은 상원법과 규례를 정하여 어떻게 조직하며 어떻게 선거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진행하는 것이에요"라고 발언했다. 195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이승만 대통령의 인기는 갈수록 떨어졌고 국회는 이승만을 위한 대통령제 대신 의원내각제 개헌을 추진했던 시절이었다. 결국 1952년 한국 전쟁 중 피난 수도 부산에서 군인과 경찰이 지켜보는 앞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양원제까지 포함하여 이루어졌다.


그다음으로 한국에서 양원제가 등장한 것은 4.19혁명 이후 제2공화국 시절이었다. 제5대 국회의원선거에서 하원 격인 민의원이 233명, 상원 격인 참의원이 58명 뽑혔다. 민의원은 4년 임기인데 참의원은 6년 임기였다. 참의원은 특별시나 도 단위에서 선출되었고 3년마다 29명씩 뽑는 방식이었다. 권한은 민의원이 더 강했고 양원 사이에 의견이 다를 경우에도 최종 결정은 민의원의 몫이었다.




그나마 실체를 가지고 잠시나마 작동했던 제2공화국의 양원제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당시 민의원과 참의원으로 명목상으로 구분만 이루어졌지 역할의 분담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똑같은 일을 양원에서 두 번씩 반복하고 말았다. 또한 참의원은 우려했듯이 나이가 많고 사회적으로 인지도가 높았으며 이른바 고관대작으로 즐비했다. 당시 언론은 이런 참의원을 보고 쓸모없는 장식품이고 세금만 낭비한다고 비판했다. 결국 5.16쿠데타 이후 양원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따지고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양원제를 둘러싼 찬반 논쟁의 핵심은 똑같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정사의 경험은 양원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국민 사이에 심어주기 충분하다. 학술적인 연구결과는 결코 양원제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정치적으로 민주적인 이른바 선진 국가에서 작동하는 우월한 제도가 아니라는 점을 알려준다. 대신 양원제가 정착된 나라들이란 대체로 인구가 많고 땅덩어리가 큰 연방제 국가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학계의 중론이 모여졌을 뿐이다. 한국과는 먼 이야기인 것이다. 1987년 헌법이 진짜 오늘 한국 위기의 근원일까. 요새 정치인들이 희망하듯이 헌법을 바꾸면 정치 문제가 다 풀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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