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윤 정치평론가

▲이강윤 정치평론가
2025년 3월 8일. 대통령이자 내란혐의 피고인인 윤석열이 법원의 구속취소 결정으로 석방됐다. 물론 무죄석방은 아니다. “구속만료 시점을 지나 기소했으니 위법"이라는 법원 결정에 따른 석방이다. 검찰은 법원결정이 정당한지 따져달라는 상급심 항고 없이 석방했다. 정치가 법원 문지방을 자주 넘나들수록 판사는 신이 되어간다, 되어야만 한다. 이 또한 우려할 일이다. 의사처럼 고도로 훈련받은 직업인일뿐인데 정치는 그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결과가 기대와 다르면 그들은 곧바로 '정권 시녀'나 '빨가족족한 사상 불온자'로 매도당한다.
“대통령, 탈옥같은 출옥"
대통령 석방 뉴스는 대통령 처벌을 주장해온 시민들을 충격과 분노에 빠트렸다. 전국에서 집회를 열어 법원과 검찰, 내란을 규탄했다. 한 시민은 “탈옥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탈옥같은 출옥. 반면 대통령 지지자들은 환영 집회를 대대적으로 열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자가 구치소를 나와 웃으며 주먹을 흔들고 폴더 인사를 한다. 그의 활보와 독립영웅 귀환같은 환영행렬을 보며 정의를 다시 생각한다. 하나의 팩트가 진영에 따라 완전히 달리 해석되는 이 가치 전도.
가치 전도-대립 조장 국힘, 명백한 잘못
계엄발령과 군 투입은 전 국민이 동시에 지켜본, 이론의 여지가 없는 팩트이자 내란 증거였다. 그런데도 진영에 따라 '헌법파괴 내란'과 '국민 계몽'으로 극명하게 갈린다. 팩트는 하나인데 해석은 정반대다. 이해하기 어려운 고차원 수학공식도 아닌데. 계몽이나 인원-요원-의원 발음 얘기는 상식조차 갖추지 못한 억지이자 국민 우롱이다. 그런 말장난은 국민 수준 얕보는 '국어 계엄'이자 모욕이고, 정신파탄 상태라는 자백이다. 사정이 급해 이것저것 다 주워삼긴다 하더라도 유만부동이지…. 대통령이나 변호인들은 자기 집에서도 계몽이나 인원이란 말을 그런 뜻으로 쓰나? 아닐 것 아닌가. 자해적 망발, 그만 두라.
계엄 해제 이후 여당은 겸손하게 법원 결정을 기다린 게 아니라, 지지자들을 부추겨 가치 전도와 대립을 극대화시켰다. 적반하장이고 내란 연장이다. 석방된 내란피고인의 활보를 TV로 보는 동안 한 국가의 정기와 위엄, 정의가 짓밟히는 정신적 고통이 엄습했다. 수 십년 전 '반민특위' 해체가 어른거렸다.
尹 활보, '반민특위' 해체 연상
검찰은 내란사건 기소 주체로서, 형사소송법 절차 실수에 대한 설명과 함께, 국민 과반 다수(여론조사를 종합하면 응답자의 약 60%가 대통령파면과 처벌에 찬성)에게 사과해야 한다. 국가공무원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설명과 복종의무가 있다. 국가는 주권을 위임한 국민의 또다른 이름이다. 대통령석방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시민들은 검찰의 날짜계산 실수라는 업무과실보다는, 정의와 국가 정기가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것을 규탄했다.
계엄 사태 이후로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호외급 기사가 며칠 걸러로 쏟아진다. 계엄의 파장과 불안이 그만큼 크고 많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상태가 언제 안정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걱정만 할 뿐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선거에서 이기면 해결하겠다는 막연한 다짐 뿐이다. 다짐으로 해결될 수준은 진작에 넘어섰다. 갈등이 아니라 내전 수준이고, 냉전일지 열전일지만 남은 듯하다.
헌재에서 대통령파면이 결정된다면 곧 선거가 치러지고 새 정부가 출범하겠지만, 어느 쪽이 이기건 이미 돌입 상태인 정치적 내전은 격화될 게 확실시된다. 이대로 계속 가면 파국일 걸 뻔히 알면서도 두 열차는 브레이크 없이 돌진중이다.
헌재 결정, 내란 종착점 아닌 제2출발점 가능성 농후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내란이 남긴 상처와 왜곡을 바로잡으려 할 것이다. 당연 조치다. 국힘은 정치보복이라며 저항할 것이다. 반대로, 국힘이 승리하면 내란은 '정당한 국민계몽'이 되고 강압통치가 심화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윤석열과 이재명이 사활을 걸었던 2022년 대선전이 공수만 교대된 채 연장전에 돌입하고, 경기 양상은 전보다 훨씬 거칠 것이다. 곧 있을 것으로 보이는 헌재 결정은 계엄내란의 종착점이자 해결점이 아니라 제2출발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선이 문제해결의 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내란 주동측, 사과와 법원결정승복 선언해야
걱정만 할 뿐 해결책은 불투명한 이 상태의 선택지는 오직 하나, 결자해지다. 공허하게 들리겠지만 이것밖에는 없다(내란 관련자 처벌은 너무 당연하니 따로 적지 않는다). 여당인 국힘은 내란을 사과하고 벌을 기다려야 한다. 그게 상식이자 정의다. 모든 정파는 헌재 결정 전 미리 승복선언을 함으로써 내전 비화를 필사적으로 막아야 한다. 의원이건 자칭 목사건 폭력을 부추기는 자는 의법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멸이다. 상식과 합리의 회복이 결국 정의고 공정이다. 정의와 공정은 진영 불문 공통 가치이자 공동 선(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