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주현 단국대학교 에너지공학과 교수
한 끗. 근소한 차이나 간격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는 한 끗 차이로 중요한 경기의 승패가 결정되거나, 나중에 예상치 못한 파장이 일어나는 나비효과를 경험하곤 한다.
지난 2월 21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이 확정되었다. 작년 5월 발표된 전기본 실무안에는 신규원전 4기가 포함됐었지만, 국회 보고 과정 중 정치적 타협에 따라 3기로 축소됐다. 1기 차이지만, 여기에 숨겨진 의미와 파장은 가볍지 않다.
첫째, 국민 부담이 큰 폭으로 뛴다. 전기본 최종안은 실무안 대비 신규원전 1기를 줄이는 대신 태양광 발전설비 2.4GW를 추가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분석에 따르면, 원전 1기 대체를 위해서는 7GW의 태양광 발전설비와 92GWh의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하다고 한다. 전기본 최종안대로 태양광 발전설비 2.4GW만 반영해도 32GWh의 ESS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들 설비 건설비용은 원전 1기 건설비용의 약 2배인 12조 원가량일 것으로 추산됐다. 신규원전은 60년을 가동하지만, 태양광과 ESS 가동 기간은 각각 20년, 15년인 점을 고려하면, 이들 설비의 추가 교체가 필요해 총비용은 33.6조 원까지 급증한다고 한다. 이런 건설비용뿐만 아니라 국민이 내야 할 전기요금도 매년 3,800억 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숫자 하나 줄였을 뿐인데, 국민이 떠안을 부담은 어마어마하다.
둘째, 원전 건설 물량이 줄어든다. 원전 1기 건설비용은 6조 원 내외다. 신규원전 1기 축소는 이 정도의 건설 물량이 국내 산업계에 풀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원전 1기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원전 설계부터 기자재 제작 및 건설 분야까지 망라한 업체가 참여한다. 이들 업체의 인력과 조직은 우리 원전산업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들 업체의 인력과 조직은 물량이 지속 확보돼야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단기간에 많은 물량이 몰렸다가 사라지는 것보다 조금씩이나마 물량이 공백기 없이 공급되는 것이 경쟁력 유지에 효과적이다. 이런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신규원전 1기가 타당한 이유 없이 사라진 것이다.
셋째, 전기본의 공신력이 훼손됐다. 산업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90여 명의 전문가가 2023년 7월부터 2024년 5월까지 87회의 논의를 거쳐 전기본 실무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국회 보고 과정 중 전문가 평가나 검증 없이 신규원전 1기를 줄인 것은, 과학적 근거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시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처럼 정치적 흥정의 산물이 된 전기본은 그 신뢰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나비효과 예로는 지난 2월 27일 국회를 통과한「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이하 '특별법')」을 들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오랜 난제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문제 해결의 단초를 마련한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런데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 중 특별법안 제36조제6항의 단서 조항인 “여건 변화가 있을 경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위원회 심의‧의결로 저장 용량을 달리할 수 있다"는 문장이 삭제됐다. 이것이 우리나라 계속운전 제도를 뒤흔들었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운전 허가가 만료된 원전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10년간 계속운전할 수 있으며, 그 횟수는 제한이 없다. 계속운전은 가장 경제적인 탄소중립 수단이다. 세계적으로 최초 운전 허가 기간이 만료된 원전의 대부분은 계속운전되고 있다.
발전사업자는 계속운전 기간 중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공간을 확보해 놔야 계속운전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단서 조항 삭제로 원전 부지 안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최대 저장 용량이 제한되면서, 저장공간 부족으로 계속운전 허가를 받기 어렵거나 계속운전 횟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발에 스스로 족쇄를 채운 꼴이 됐다. 계속운전을 하지 못하면, 대체 발전설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비용은 전기요금에 반영된다. 대체 발전설비를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대규모 전력 공급부족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다.
정책이나 법률의 수치나 문구의 미세한 변경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 사회․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기본과 특별법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다. 정부와 국회는 이런 실수를 인지한 즉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그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신규원전 계획과 특별법 해당 조항의 조속한 원상복구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