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워싱턴DC에 위치한 에너지부 본사.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y)'로 지정한 배경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에너지부 산하 연구원의 도급업체 직원이 원자로 소프트웨어를 한국으로 유출하려 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와 관련 있는 원자력연구원이 논란이 됐지만, 연구원은 “명백한 오보"라며 강력 부인했다.
민감국가 지정이 단순 해프닝일 수 있다는 의견과 한국의 핵무장론에 대한 엄중한 경고일 수 있다는 상반된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시 한미 동맹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지정을 해제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일 정계와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올해 1월초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했다는 사실이 최근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왜 지정했는지 배경에 대해선 여전히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민감국가 지정 배경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내용은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의 도급업체 직원이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한국으로 유출하려다 적발된 사건이 있는데, 정부는 이 사건이 지정과 연관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INL과 공동 연구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관성이 제기됐고 해당 기술은 '사고 저항성 핵연료 연구'라는 보도가 있었지만, 연구원은 “명백한 오보"라며 선을 그었다.
원자력연구원은 해명을 통해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와 해당 연구를 한 적도 없고, 할 계획도 없다"며 “INL과 공동 연구를 하는 곳이 우리밖에 없다는 오해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INL은 2000명 이상의 연구원이 활동하는 대형 연구소인데, 그중 한국 연구원 출신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단순 행정 착오 가능성…핵무장론에 대한 경고 차원
일각에선 이번 지정이 미국 정부의 정권 교체기에 발생한 단순한 행정착오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감국가 지정 시기가 1월 초로, 바이든 정부의 임기 말과 산업통상자원부와 웨스팅하우스 간 체코원전 협상 시기와 겹친다는 게 이유다.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당시 한국의 양보로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원전 지식재산권 협상이 완료되면서 양국 관계에 훈풍이 불던 시기"라며 “협상이 결렬됐다면 몰라도, 같이 협력하기로 대내외 적으로 알린 시기에 민감국가 지정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국이 지재권 협상을 위해 한국을 4월 15일 발효되는 민감국가로 지정했다가, 정권교체기에 이를 해제하지 않고 지나가면서 발생한 단순 행정 착오라는 것이다.
야권을 중심으로 한국의 핵무장론에 대한 경고 차원일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4월 29일 하버드대 강연에서 “마음만 먹으면 1년 안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등 핵무장론을 강조해왔다.
원자력 안전과 미래, 핵과 에너지의 안전과 환경을 우려하는 과학자 모임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의 민감국가 분류는 핵비확산 체제를 위협하는 무리한 정책에 지속된 경고의 누적된 결과와 윤석열 정권의 불안한 국정운영에 따른 결과"라고 지적했다.
4월 15일 민감국가 지정 발효…정부, 기술유출 명확한 해명 필요
정치권에서는 민감국가 지정이 실제로 발효될 경우 한미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양국간 원자력, AI 등 첨단기술 연구협력은 물론 동맹 관계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관세 압박을 포함한 다양한 경제적 불이익까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경제계의 중론이다. 민감국가 지정은 한미 동맹 관계에 일종의 경고 메시지이며 한국에 경제적·정치적 압박을 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예를 들어, 미국이 한국에 반도체 수출 규제, 관세부과 등 정책을 수용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이 조치를 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감국가 지정이 해제되지 않을 경우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민감국가 지정은 경제적인 문제 외에도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는 한국이 유출이나 안보 문제에서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인식될 가능성을 높이며,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 내부적으로도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미 지정 배경을 두고 여야 간 네탓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노동석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자력소통지원센터장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 측과 협상을 통해 민감국가 지정을 해제하면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지만 해제되지 않을 경우 심각한 외교적, 경제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정부는 미국 측과의 긴밀한 협상을 통해 지정 배경을 명확히 하고, 오해를 해소해야 한다"며 “기술 유출 의혹에 대해 명확히 해명하고 한국의 원자력 기술 관리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민감국가 지정으로 훼손된 국제적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