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롬 파월 연준 의장(사진=AFP/연합)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9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동결한 가운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를 두고 “일시적(transitory)"이라고 주장해 주목받고 있다. 파월 의장은 2021년 당시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미국 물가가 오를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현상을 두고 “일시적"이라고 했다가 뒤늦게 통화긴축에 나섰는데 이번에도 같은 오판을 반복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CNBC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이 우리의 조치 없이 빠르게 사라지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때론 이런 인플레이션을 놔두는 게 적절할 수 있다"며 “관세 인플레이션일 경우 이에(일시적)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준이 일시적 기조로 돌아왔냐'는 질문에 “이를 기본 시나리오로 본다"면서도 “우리는 (일시적일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미국 경제를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 상승)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공포감이 커졌는데 파월 의장은 금기어로 여겨졌던 '일시적'이란 단어까지 사용하면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킨 것이다.
이와 관련, JP모건 자산운용의 엘리스 아우젠바우는 “'일시적'이 돌아왔다"며 “시장 반응을 보면, 투자자들은 관세 정책 등이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만들지 않고 연준이 통제 가능하다고 믿으려 한다"고 봤다.
다만 일각에선 파월 의장을 비롯한 연준 위원들이 2021년 당시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으로 평가하며 대응을 미루다가 역풍을 맞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짚었다.
당시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공급망에 차질이 발생했기 때문으로 진단했는데 결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022년 9.1%까지 치솟았고 연준은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연속적으로 밟는 식으로 뒤늦게 대응했다.
파월 의장은 지난해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자신과 같은 견해가 많았다는 뜻으로 “'일시적' 호(號) 선박이 붐볐었다. 대다수 주류 애널리스트들과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승선했다"고 말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AFP/연합)
이렇듯 연준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으로 보고 있는 배경엔 트럼프 집권 1기때의 전례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준은 트럼프 집권 1기 때인 2018년 9월 당시 관세에 대한 대응책으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거나, 물가 상승을 일시적으로 보고 침체가 발생하면 금리를 인하하는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연준은 결국 후자를 택했고 다음해인 2019년 금리를 세 차례 인하했다.
문제는 현재 경제 환경이 트럼프 집권 1기때와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블룸버그는 “과거엔 인플레이션이 너무 낮아 연준이 걱정할 정도였다"며 “트럼프 1기 관세 정책 또한 규모와 대상국이 작아 기대 인플레이션에 큰 영향을 안줬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플레이션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여전히 연준 목표치(2%)를 웃돌고 있는 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엔 관세 전선을 전 세계 대상으로 확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각국 대미 관세율 및 비관세 장벽을 두루 감안해 책정할 '상호 관세'를 4월 2일 발표할 것이라고 예고해왔다.
여기에 미국 소비자들은 향후 물가상승률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미시간대에 따르면 향후 1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4.9%로 2월 대비 0.6%포인트 올랐다. 이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상승했던 지난 2022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와 관련, 연준 이사회 선임 고문을 역임했던 듀크대학교 엘렌 미드 경제학 교수는 “파월은 관세가 지속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높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는 집중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아디차 바브 이코노미스트는 “그들(연준)이 기대 인플레이션을 얼마나 과소평가하고 있는지 놀랐다"고 했다.
일각에선 파월 의장이 트럼프 행정부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향후 연준 정책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동의했지만, 실패한 '일시적 팀'(team transitory)이 다시 모여 관세보다 더 일시적인 건 없다고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밝히기도 했다. 연준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를 반영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LH메이어의 데렉 탕 이코노미스트는 “파월은 눈치를 보고 있다"며 “ 그는 연준이 백악관의 조준점에 들어가길 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연준의 금리인하를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관세 정책이 경제에 소기의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어 연준은 금리를 내리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며 “옳은 일을 하라. 4월 2일은 미국의 해방일"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이 1월에 금리를 동결했을 때도 “제이 파월(연준 의장)과 연준은 자신들이 인플레이션으로 만든 문제를 멈추게 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