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포토

장하은

lamen910@ekn.kr

장하은기자 기사모음




[감사의 계절 ㊥] 반기보고서 ‘의견거절’에 무더기 ‘거래정지’…회계법인 의견에 달린 명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3.31 10:30

반기 '의견거절·한정' 기업 80%가 거래정지

32곳은 연간 감사서도…상장폐지 심사 돌입

2년 연속 의견거절 기업 19곳…소액주주 '직격탄'

정리매매 진입 시 90% 폭락…사실상 자산 증발

AI가 상장 폐지로 충격을 받은 투자자들의 모습을 구현한 사진. [출처=뤼튼테크놀로지스]

▲AI가 상장 폐지로 충격을 받은 투자자들의 모습을 구현한 사진. [출처=뤼튼테크놀로지스]

금융당국이 투자자보호에 고삐를 죄고 있다. 기업이 2년 연속으로 '부적정' 또는 '의견거절'을 받을 경우, 별도 실질심사 없이 상장폐지로 직행하는 강경 조치까지 예고된 상황이다. 감사의견이 단순한 기업 평가를 넘어, 생존의 경계선으로 부상한 셈이다. <에너지경제>가 지난해 상반기 외부감사 의견으로 상장폐지 경고등이 켜졌던 기업들의 현재 위치와 향후 향방을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의견거절' 또는 '한정의견'을 받은 상장사 64곳 중 주식시장에서 거래정지를 당한 곳은 54곳으로 80%에 달했다.


반기보고서에서 외부 감사인의 부정적인 감사의견이 나왔다고 해서 곧바로 거래가 정지되거나 상장 폐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는 향후 거래정지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한 경고 신호로 작용하며, 연간 감사에서도 동일한 의견이 반복될 경우 상장폐지 가능성이 더 커진다.


거래정지와 부정적 감사의견은 대부분 회계·재무 문제에서 비롯되며, 상호 연관성이 크다. 특히 '의견거절'은 외부 감사인이 회사 측으로부터 필요한 재무정보를 충분히 제공받지 못했거나, 감사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비협조적인 경우에 내려지는 판단이어서 회계 투명성의 심각한 문제를 시사한다.


현재 거래정지 상태인 54곳 중 연간 감사에서도 의견거절이나 한정의견을 받은 곳은 32곳으로 모두 상장 폐지 실질 심사를 받고 있다. 이들 기업은 내달 10~11일까지 이의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상장 폐지 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당장 4월에만 주식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는 기업이 30곳이 넘는 셈이다.




이 가운데서도 2년 연속 의견거절을 받아 당장 상장 폐지 위기에 몰린 곳은 19곳이다. 또 연간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을 공시했거나, 아무런 공시도 하지 않은 기업은 18곳에 달했다.


한국테크놀로지와 어스앤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상장 폐지를 당했다. CNH는 지난 10일 상장 폐지로 결정됐으며, 위니아는 내달 10일까지 개선기간이 부여된 상태다.


기업이 사업연도말(정기) 감사보고서에서 의견거절 또는 부적정 의견을 받으면 상장규정 제48조에 따라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다. 거래소는 해당 기업을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삼을지 결정하는데, 심사 기준은 △지속가능성 △경영 투명성 △내부통제 수준 △재무 안전성 등이다.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되면 한국거래소는 해당 기업에 대한 상장폐지 여부를 심의한다. 기업은 경영개선 계획서, 정정 감사보고서, 자본 확충 계획 등을 제출해 상장 폐지 위기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개선 기간은 최장 1년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해 상반기에 부정적인 의견을 받은 기업 중 연간 감사에서 적정 의견을 이끌어 낸 곳은 퀀텀온, 현대사료, 투비소프트, 비덴트 단 4곳 뿐이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정지 기업 상당수가 회계나 재무상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며 “감사인은 이를 감지하고, 제출된 자료가 조작되었거나 신뢰할 수 없는 정황이 있을 경우 의견거절을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감사의견은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기준선"이라며 “특히 2년 연속 의견거절은 상장폐지로 직행하는 법적 인과성이 명확한 만큼, 감사인은 더욱 촘촘하고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2년 연속 의견거절? 배임·횡령 등 경영진 문제 점철…소액주주 피해 불가피

30곳이 넘는 기업이 단기간 내 상장폐지 된다면 소액주주 피해는 상당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특히 의견거절·감사보고서 미제출 등 회계 불투명성과 경영위기로 인한 상장폐지라면 피해 규모는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상장폐지가 확정되면 열흘간 '정리매매'가 진행되는데, 이때 주가는 하루 만에 80~90% 급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소액주주들은 손절 기회도 없이 자산 대부분을 잃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한국테크놀로지와 어스앤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9월, 10월 나란히 상장폐지 정리매매에 돌입했는데 첫 거래일부터 주가가 90%대로 폭락했다.


지난해 2년 연속 의견거절을 받은 곳은 19곳이다. 2년 연속 의견거절을 받았다는 것은 기업의 단순한 '비협조'를 넘어, 회사의 실체 자체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계속된 의견거절은 기업의 고의적 은폐, 횡령·배임 가능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2년 연속 의견거절은 '감사의 실패'가 아니라 '회사에 대한 신뢰의 붕괴'라고 보는 게 적절하다고 보는 게 전문가 중론이다.


일례로 최근 2년 연속 의견거절을 받은 이아이디의 경우 김영준 전 이그룹(옛 이화그룹) 회장의 700억원대에 달하는 횡령·배임 혐의 논란이 번졌다. 이에 이아이디뿐만 아니라 이화전기, 이트론 등 이그룹 3사가 끝내 상장폐지로 위기로 내몰렸다. 이들 기업은 현재 상장폐지 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따라 상장폐지 절차(정리매매 등)가 보류된 상태다. 상장폐지 효력은 일시 정지됐지만, 향후 법원의 최종 판단에 따라 운명이 갈릴 수 있는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상폐 이후 비상장 주식을 장외시장에서 팔 수는 있겠지만 거래 자체가 드물고 가격도 거의 헐값 수준"이라며 “기업은 살아남아도 소액주주는 사실상 아무것도 못 받을 가능성이 큰 것"이라고 말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