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전통적으로 미국은 '위대하고 특별한 나라'라는 신념에 입각하여 자유와 민주주의 신장을 위해 이타적인 정책을 전개해 왔다. 이것은 미국이 세계를 지도하는 국가로서 역할을 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하여 관세 드라이브를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다. 우방국에도 예외를 두지 않은 공세적인 정책을 전개해고 있는데, 먼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위반하면서까지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 관세를 부과했다. 더구나, 불법이민자 축소 등 특정 정책목표와 연계하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는데, 콜롬비아에 대한 관세부과는 대표적인 예다.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에 이어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한 미국은 드디어 2일(미국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했다. 발효일인 9일부터 실질적인 협상을 시작했다. 국가별 상호 관세율은 한국 25%, 중국 34%, 유럽연합(EU) 20%, 일본 24%, 인도 26%, 베트남 46%, 대만 32%이다. 또 태국에는 36%, 스위스 31%, 인도네시아 32%, 말레이시아 24%, 캄보디아 49%, 영국 10%, 남아프리카공화국 30% 등이 적용된다. 중국, EU 등이 맞대응을 예고하면서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했던 글로벌 통상 질서가 급변할 전망이다.
관세 부과는 미국에 이득이 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데, 필연적으로 물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인플레이션을 야기한다. 선거 운동 중 '임기 첫날'에 물가를 잡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이 공염불이 될 것이다. 그리고 관세를 매기는 목적은 제조업·첨단산업 등을 육성하고 관세를 통해 증가된 세수는 법인세 인하 등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사용하여 궁극적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는 것이라고 하나, 벌써 경제 침체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상대 국가들이 맞대응하게 되면서 수출 타격을 불러오게 된다. 결국, 트럼프의 관세 드라이브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미국 경제는 나쁘지 않다. 외국인 투자가 크게 늘어나고 고용지수도 좋으며, 주가는 매우 높다. 무리하게 관세라는 구닥다리 무기를 휘두를 필요가 없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는가? 그것은 경제적인 이득을 추구하는 싸구려 부동산 업자 출신 트럼프의 보여주기식 과시욕 때문이다. 우방국을 비롯한 전 세계 국가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는 것은 미국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 세계에 반미 정서가 드리워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미국으로 가는 여행객이 감소하고 있어, 여행수지가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지도적 위치가 흔들릴 것이다. 그로 이로 인한 빈자리를 중국이 노릴 것이다. 지난 3일 세종연구소 개최 포럼에 참석한 찰슨 플린 전 미대평양육군사령관이 트럼프 정책으로 “America is not alone."(미국이 외토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세계 지도 국가에게 이러한 우려가 제기된 것만 해도 심각한 것이다.
우리가 더 걱정이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이 글로벌 수준으로 확대되고 국제 교역은 '빙하기'에 진입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수출 중심의 경제체제인 한국으로서는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다. 가장 직접적 영향으로는 대미 수출 타격이 우려된다. 주요 대미 수출 품목은 자동차, 반도체, 석유제품, 배터리 등인데, 특히 자동차 수출이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멕시코·캐나다·베트남 등 한국기업이 다수 진출한 지역에 고관세가 부과되어 한국 기업 수출에 영향을 받음은 물론, 중간재 수요 감소에 따른 한국산 중간재 수출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구나 국가적 리더십 공백인 상황에서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로 인해 한미자유무역협정(FTA)까지 사실상 백지화되면서 미국과의 새로운 통상 규칙을 수립해야 하는 동시에, 글로벌 관세전쟁 격화 대응에 비상이 걸리게 됐다. 상호관세율이 일본은 24%인 데 비해 한국은 25%로서 1% 더 높다. 관세전쟁 상황에서 리더십 부재는 뼈아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 업계, 노동계 모두가 비상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야당 등 정계도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