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의 산업계 금융지원 압박과 기업 연쇄부실 우려에 따른 대출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은행권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탄핵 후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에 잠시 안도감을 찾았던 금융시장에 국정 공백과 미국발 관세 충격이 가해졌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산업계 금융지원 요청에 따른 조 단위 지원과 기업 연쇄부실 우려에 따른 리스크 대응에 나서야 하는 등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날 금융감독원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주재로 '미국 상호관세 대응 점검회의'를 열고 금융시장 변동성에 대한 비상 대응체계를 가동했다.
비상 대응체계는 지난 주말 시작된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조치에 따라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당국이 즉각 가동에 나선 것이다. 당국은 매주 이 원장 주재 회의를 개최하며 100조원 규모의 시장안정프로그램 준비에 돌입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시장은 조기 대선 시행 시기까지 국정 공백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다. 앞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됐다가 곧바로 국정 공백에 처하면서 경제 정책의 연속성 약화와 시장 변동성 확대가 예상되고 있다.
은행권은 전날 미국의 상호관세 폭탄에 따라 금융시장 안정화 조력을 위해 긴급 투입됐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7일 5대 금융지주 회장들과 함께한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금융지주사와 정책금융기관이 중심이 돼 금융시장 안정과 함께 기업 등 실물 부문에 대한 자금 지원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로 수출기업 및 협력 업체의 경영이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필요한 자금 공급과 지원이 적시에 이뤄지도록 각별히 챙겨달라"고 강조했다.
이에 금융지주와 시중은행은 수출기업과 협력 업체에 대한 자금 공급과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금융 지원 요청 대응으로 즉각 26조원 규모의 수출기업 금융 지원 방안을 냈다.
전날 KB금융그룹은 KB국민은행을 통해 총 8조원 규모 금리우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수출 타격을 입는 중기·소상공인에 금융지원을 확대하는 게 골자다. 같은 날 신한금융그룹도 국내 수출기업 등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10조5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 계획을 밝혔다. 우리금융은 비상경영태세로 전환하고 '상호관세 피해 지원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어 관세 충격이 큰 수출입기업을 최우선 지원하기로 했다. 하나금융그룹은 앞서 지난 3일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위한 총 6조3000억원 규모 '긴급 금융 지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아울러 소비·투자 부진과 통상환경의 불확실성 증대 등 대내외 경제 리스크가 은행권 여파로 고스란히 이어질 수 있어 우려가 커진다. 최근 안전 자산 선호 흐름이 강해지면서 원화 가치도 급락한 상태다. 윤 전 대통령 파면 당일이던 지난 4일 원·달러 환율은 32.9원 내렸지만 7일 장 시작부터 전 거래일 대비 27.9원 뛴 1462.0원에 출발해 한 때 147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환율 상승은 기본적으로 은행 재무건전성에 악영향을 미치며 BIS기준 총자본비율이 하락을 야기할 수 있다. 관세 전쟁으로 환율이 치솟으면 또 다시 은행 건전성을 건드리는 악순환으로도 이어진다.
관세 태풍을 맞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부실에 처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어 은행권 충격파가 예상된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에 따르면 최근 기업신용평가 B등급 기업이 역대 최대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다. B등급 기업은 경영난으로 워크아웃이나 기업회생 등 구조조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회사다. 이들 회사가 무더기로 구조조정 대상에 오르면 금융사들도 심각한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은행권은 자동차와 같이 관세 영향을 받는 산업군을 중점 관리업종으로 설정하고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신 집중도 완화와 연체 관리 강화를 통해 자산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다.
업계는 산업계와 소상공인 금융 지원이라는 실질적인 대책부터 미국발 관세 전쟁 등 불안정성 확대에 따른 리스크 관리로 당분간 긴장 모드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굵직한 수출기업의 줄타격 등 대내외적으로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 따라 은행의 긴급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며 “관세전쟁에 따른 산업계 타격과 기업들의 부실 문제도 커질 수 있어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