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AF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70여개 국가에 상호관세를 향후 90일간 유예하기로 했다. 한국의 경우 오는 6월 3일 대선 이후 새 대통령 체제하에서 전열을 정비한 채 미국 정부와 협상에 나설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 셈이다. 다만 미국 정부는 관세와 비관세 장벽은 물론, 비통상 이슈까지 패키지로 논의할 것임을 드러내고 있어 협상 결과를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75개 이상 국가가 무역, 무역장벽, 관세, 환율 조작, 비통화적 관세 등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에 연락을 취한 점, 미국을 향해 보복조치를 취하지 않은 점을 감안했을 때 90일간 (국가별 상호관세를) 즉각 중단하고 관세율을 10%로 낮추기로 승인했다"고 밝혔다.
한시적이지만 관세율을 전격적으로 낮춘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에 대한 미국의 상호관세도 90일간 기존 25%에서 10%로 낮아지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중국에 대해서 관세율을 104%에서 125%로 추가로 인상했다. 미국에 정면으로 맞서면 추가 관세가 부과된다는 점을 중국을 통해 본보기로 보여주면서 협상에 나선 국가들에 대해선 한시적으로 관세 부담을 완화시켜 맞춤형 협상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부 장관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에 직접 참여를 원하기 때문에 90일 유예한 것"이라며 “75개가 넘는 국가가 우리를 접촉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으로 와서 협상을 하고 싶으면 우리는 기꺼이 들어줄 것이고 (성공시) 그들에게 관세율을 기본 수준인 10%로 낮출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정부는 상호관세 유예 소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협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한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주미대사관에서 특파원단과 간담회를 갖고 “금번 유예 조치는 미국 측과의 관세 협상을 지속해 우리 업계에 미칠 영향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여지가 확보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1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미국 상호관세 25%가 우리나라가 협상하는 90일 동안 일단 유예되고 기본적으로 부과되는 10%만 부과하는 것으로 결정됐다"며“앞으로 90일 동안 모든 협상에 진전을 보여서 관세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더욱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와 경제, 산업을 연계해 포괄적으로 협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만큼 한미간의 협상이 복잡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진행한 행정명령 서명 행사에서 '유럽이나 해외에 있는 미군을 감축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It depends)고 답한 뒤 “우리는 유럽에 있는 군에 대해 비용을 내지만 (그에 대해) 많이 보전(reimburse)받지는 못한다. 이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은 무역과는 관계가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협상의) 일부로 할 것"이라면서 “왜냐하면 각국에 대해 한 개의 패키지로 다 담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깔끔하고 좋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유예된 한국에 대한 25% 상호관세를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 협상 과정에서 비관세 장벽 철폐, 조선 등 산업 협력,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 주한미군 감축 등을 지렛대 삼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문제삼았던 각국의 비관세 장벽도 앞으로 이뤄질 협상의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경제 참모들이 비관세 장벽을 해결하는 일을 경제 협상의 가장 중요한 측면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공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 보고서)에선 대규모 무기 수입 시 기술이전 등을 요구하는 '절충교역', 미국산 소고기 수입 월령 제한, 전자 상거래 및 디지털 무역 장벽 등이 한국의 비관세 장벽으로 거론됐다.
국내 전문가들은 상호관세가 90일간 유예된 만큼 6월 대선까지 상황을 관리하며 차분히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미국이 속전속결로 한국의 '양보'를 받아 내려 할 수 있기에 대선 전에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