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 HBM4 12단 샘플.
SK하이닉스가 2025년 1분기 세계 D램 시장 매출 기준 1위에 오른 배경에는, 10년 넘게 이어진 고대역폭메모리(HBM) 투자 전략이 있다.
삼성전자가 범용 D램 중심의 생산 확대에 집중하던 시기, SK하이닉스는 HBM에 대한 장기 투자를 이어왔고, 2024년 세계 최초로 HBM3E 양산에 성공하면서 AI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했다.
채권단 시절 넘어 SK 인수…장기 투자 전환점
10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본래 현대전자의 반도체 부문으로 출발했다. 1999년 LG반도체를 통합하며 몸집은 커졌지만, 외환위기 직후인 2001년부터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며 경영 불확실성이 지속됐다.
이후 파운드리 사업 정리와 매각 무산 등을 겪으며 수년간 생존 중심의 경영이 이어졌고, 구조조정도 반복됐다.
2012년 SK그룹의 인수를 계기로 자본 기반이 안정되면서 장기적 기술 투자 여건이 마련됐고, 이때부터 고부가 메모리인 HBM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된다.
SK하이닉스는 2009년 TSV(Through-Silicon Via) 기반 기술 개발에 착수했고, 이듬해 AMD와의 공동 개발을 통해 HBM 설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13년 12월에는 TSV 기반 1세대 HBM 프로토타입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며 기술 기반을 다졌고, 이후 HBM2, HBM2E, HBM3까지 연속적으로 개발을 이어갔다.
이어 2023년 하반기, 하이닉스는 HBM3E 제품의 품질 검증을 완료하고, 2024년 3월 세계 최초로 12단 적층 기반 HBM3E 양산을 시작했다. 10년이 넘게 진행된 투자가 드디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기준 SK하이닉스는 HBM 시장 점유율 70%를 기록, 삼성전자(20% 이하 추정)를 크게 앞섰다.
하이닉스는 MR-MUF(Molded Reflow Underfill) 공정을 통해 고적층 제품의 발열과 수율 문제를 해결했고, 검증된 1b 공정을 채택해 안정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2024년 상반기, 삼성전자가 HBM3E 품질 테스트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이, 하이닉스는 이미 공급 체계를 구축해 엔비디아·AMD·TSMC 등과 협력을 확대했다.
매출 구조 바꾼 HBM…D램 매출의 40%
SK하이닉스는 HBM 성공 이후 수익 구조도 크게 바뀌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기준 하이닉스의 전체 D램 매출 중 HBM이 차지하는 비중은 40% 이상에 이른다. 이는 일반 D램 대비 가격이 수 배 이상 높은 고부가 제품이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2024년 약 5조 원 규모였던 HBM 시장이 2029년에는 50조 원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전체 D램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가 이 시장의 현재 점유율 70%를 유지할 경우, 수조 원 단위의 신규 수익원이 확보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SK하이닉스는 2025년 하반기 HBM4 양산을 목표로, 차세대 제품 개발을 진행 중이다. 2025년 3~6월 사이에는 HBM4 샘플 제품을 고객사에 제공할 예정이며, 12단 적층을 기본으로 인터포저 설계와 발열 대응 기술을 개선하고 있다.
HBM4는 성능뿐 아니라 TSMC·AMD 등과의 패키징 연계 전략이 핵심이다. SK하이닉스는 턴키 방식보다는 고객 맞춤형 모듈 구성과 외부 파운드리와의 협업 모델을 강화하고 있으며, TSMC와의 인터포저 개발 연계가 HBM4 공급 확대의 핵심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제품'보다는 '패키지 안에서 어떤 조합을 고객이 원하는가'를 중심으로 설계한다"며 “HBM4에서도 기술과 상업성의 균형을 통해 시장 주도권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