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에서 생산된 리튬이온 배터리 팩(사진=AF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반기후 정책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모든 교역국을 대상으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자 미국 청정에너지 시장에 먹구름이 짙어질 전망이다. 특히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힘입어 폭발적인 성장을 보인 미국 배터리 시장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분석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중국을 제외한 70여 개 교역국에 대한 상호관세를 유예하고 10%의 기본관세만 적용키로 했다. 반면 중국에 대해선 상호관세율을 125%로 높였다. 이로써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중국에 대한 미국의 총 관세율은 145%에 달한다고 미 백악관은 10일(현지시간) 설명했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같은 관세 정책으로 미국에서 전기차용·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비용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미국 배터리 산업은 해외 수입 의존도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데이터 리서치 업체 로모션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미국에서 새로 설치된 ESS 중 90% 이상은 중국산 리튬이온 배터리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제조하는 배터리 공장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의 영향권 안에 든다. 블룸버그NEF(BNEF)에 따르면 미국 업체들이 올해 배터리 제조를 위해 양극재는 83%를, 음극재는 67%를 수입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배터리 가격 상승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BNEF는 작년까지만 해도 올해 배터리 가격이 전년 대비 13%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50% 추가 관세를 더해 관세율을 총 104%까지 끌어올렸던 지난 8일 당시 BNEF는 미국에서 대규모 ESS 비용이 관세 부과로 58% 급증할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은 그 이후 중국에 대한 관세율을 더 올린 만큼 배터리 비용 상승폭 또한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주요 대미 배터리 수출국인 한국, 일본 등에 대해서도 상호관세를 각각 25%, 24% 부과했다. 한국과 일본은 90일간 상호관세가 유예됐지만 10%의 기본관세는 적용된 상태다. 지난해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서 수입한 배터리 비중은 전체 대비 각각 5%, 8%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성장세를 이어온 미국 배터리 시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로 본격 위축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BNEF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ESS를 가장 많이 설치한 국가로 나타났다.
배터리 업계 홍보업체인 트웬티투 앤드 브랜드의 로젤 킹스버리 선임 브랜드 전략가는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관세를 대규모로 부과할 경우 미국에서 ESS 보급이 상당히 둔화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발전소와 발전그리드는 필요했던 용량을 확보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BNEF의 키쿠마 잇슈 선임 연구원도 “상당한 배터리 프로젝트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터리에 이어 태양광과 풍력발전 비용도 오를 전망이다. 컨설팅업체 라이스태드 에너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은 9500만개의 태양광 패널을 수입했는데 대부분은 트럼프 대통령이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한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에서 수출됐다. 라이스태드 에너지의 마리우스 모달 바케 태양광 리서치 부회장은 “미국 개발자들의 비용이 오를 것"이라며 미국은 폴리실리콘과 웨이퍼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풍력발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풍력터빈용 블레이드, 드라이브트레인, 전력 시스템 중 절반은 미국이 유럽연합(EU)에서 수입했다. 지난 2월 컨설팅업체 우드맥킨지는 미국 정부가 전 세계에 보편관세 25%를 부과할 경우 풍력 프로젝트 비용이 최소 7% 오를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미국 태양에너지산업협회의 아비게일 로스 호퍼 회장은 “미국의 갑작스러운 정책 변경은 특히 제조업체에게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해 투자를 위축시키고 일자리 창출을 둔화시킬 수 있다"며 “글로벌 자본 경쟁에서 제조업체들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신규 투자에 나서기 위해선 장기적인 정책 확실성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