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부 이찬우 기자.
고래 싸움에서 새우가 어부지리로 이기는 법, 새우 몸집을 키우는 거죠.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지 않을 만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시간은 새우 편 아닐까요?"
미국, 일본보다 뒤늦게 반도체 시장에 뛰어든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의 “고래싸움에서 새우가 어부지리로 이길 방도는 없겠나?"라는 질문에 대한 손자 진도준의 대답이다.
2022년 12월 종영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오랜만에 돌려보다 정신이 번뜩인 순간이었다. 미국과 중국이란 거대한 고래 싸움에 낀 한국 경제와 사회에 시기적절한 대사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했고 한국은 그 사이 어딘가에 끼어있다. 세계 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뽐내는 두 나라 모두 한국에 중요한 시장이자 국가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수십년 간 군사적, 경제적으로 미국에 많이 의지해왔다. 8.15 광복과 6.25 전쟁 이후 돈독한 사이를 이어왔고 2000년대엔 한미 FTA를 통해 자유로운 무관세 무역도 이끌어 왔다.
세계 패권을 쥔 초강대국과의 친밀한 외교는 한국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 이에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을 최대 고객으로 두면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으로 한국에도 전례 없던 25%란 관세가 부과됐지만 이는 세계 모든 국가에 매겨진 세금인데다 아직 협상의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희망이 없는 상황은 아니다. 특히 중국에 부과한 145%의 관세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중국 역시 마냥 등 돌릴 수 없는 국가다. 미운 점도 많지만 결국 한국의 주력 상품인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모든 곳에 중국의 부품과 원자재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최근엔 중국의 기술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AI 모든 시장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다. 전기차와 배터리 쪽에선 중국을 따라올 곳이 없을 정도다. 이젠 단순히 덩치만 큰 고래가 아니라 사냥도 잘하는 똑똑한 고래로 변모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의 말처럼 '몸집을 키우는 것'이다. 특히 우리 기업의 체력과 체급을 키워 고래 싸움에도 흔들리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기업이 흔들리면 국가 경제와 민생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에 절실한 것이 정부 차원의 기업 지원이다. 예를 들어 국내 배터리 기업에 직접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는 '한국판 IRA'가 대표적이다.
일각에선 지금처럼 국내 배터리 산업을 방치하다간 중국에 완전히 밀려 묻혀버린 디스플레이 업계의 실패를 반복할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 점유율이 10% 초반대로 떨어졌고 캐즘이 끝나지 않은 지금,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