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소매 경기 부진 등의 여파로 카드 승인액 내 법인카드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올 1분기 전체 카드 승인금액이 전년 동기 대비 3.3% 증가했다.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으나, 법인카드가 선전한 덕분이다.
1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올 1분기 전체 카드 승인액은 300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개인카드는 247조5000억원으로 2.2% 증가했다.
그러나 지난해 1분기 5.9%, 2분기 3.8%, 3분기 3.7%, 4분기 2.6% 등 상승세가 꺾이고 있다. 승인건수 증가율도 같은 기간 6.4%에서 3.7%로 낮아졌고, 올 1분기는 1.5%로 더욱 하락했다.
온라인으로 식료품을 구매하고 배달 주문을 넣는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항공여객 및 여행 관련 산업의 지출 증가세가 둔화된 탓이다. 외국인 관광소비가 13.0% 불어났음에도 내국인이 5.1% 감소했다.
지난해 1분기 3100만명에 달했던 영화관 관객수가 1년 만에 2082만명으로 급감하는 등 여가 관련 업종의 실적도 약세다.
반면, '법카' 승인액은 53조2000억원으로 8.8% 늘어났다. 승인건수가 줄어들고 있으나, 승인액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 -0.5%, 2분기 0.8%, 3분기 11.2%, 4분기 5.8%를 기록했다.
법인 경영실적 개선 및 이에 따른 법인세 부담 등으로 평균승인액(14만3257원)이 11.3% 커진 영향이다. 같은 기간 개인카드 평균승인액(3만8208원)은 0.8% 증가에 그쳤다.
실제로 카드사 9곳(삼성·신한·KB국민·현대·우리·하나·롯데·NH농협·BC) 법인 회원들의 일시불/할부 국세·지방세 등 이용실적은 지난해 1~3월 6조9192억원 규모에서 올 1~3월 약 6조8969억원으로 상승했다.
업계는 향후에도 법카가 전체 실적을 견인하는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KB국민·하나·우리카드를 필두로 업계가 법카를 앞세워 실적 향상에 나섰던 것도 개인 회원 보다 법인 회원의 기여도가 크다는 판단이다.
개인카드의 경우 프리미엄 회원을 늘려 연회비 수익을 높이는 전략을 지속하고 있으나, 확장 가능한 고객의 범위가 넓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심리지수가 90대로 형성되는 등 개인 회원들의 지갑이 쉽게 열리지 않는 점도 문제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법인 회원수가 감소하고, 기업들도 골프장 이용 제한 등 씀씀이를 줄이고 있지만, 여전히 1개월당 9조원 상당의 이용실적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카드사들이 치열한 점유율 경쟁을 펼치는 까닭이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정책 영향이 본격화되면 법카 실적도 저해될 수 있다. 대미 수출 감소 등 경영환경이 악화되면 허리띠를 더욱 졸라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 일부 설비를 셧다운하고 미국 루이지애나에 대규모 공장을 짓기로 한 현대제철에 이어 삼성전자도 TV·가전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LG전자도 미국 세탁기·건조기 생산량 확대 계획을 갖고 있다. 관세 충격을 피하고 현지에서 받는 대규모 유·무형 지원을 토대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이같은 흐름이 지속되면 법카 실적도 악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우선 원자재 구매, 물류, 식비를 비롯해 국내에서 발생 중인 각종 경비 지출이 축소된다. 임직원 급여, 출장비, 유지보수, 공과금 결제 등 사업장 운영에 필요한 지출도 이전된다. 공장을 둘러싼 밸류체인 전체의 발목이 잡힌다는 의미다.
업계 관계자는 “가맹 수수료율 인하가 이뤄졌고, 연체율 상승 등으로 카드론(장기카드대출)을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는 만큼 법카 실적이 수익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며 “요식업을 비롯해 힘든 시기를 보내는 업종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추가경정예산을 집행하는 등 정부와 국회 차원의 지원사격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