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초 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롯데케미칼 여수 공장 야경. 사진=롯데케미칼 제공
석유화학업계의 돈줄이 장기 불황과 투자 자금 소요 등으로 인해 말라가고 있다. 주요 석화 기업들의 합산 적자 규모는 조단위에 이른 가운데 업계는 감원이나 사업부 매각 등 각종 자구책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8일 석화업계에 따르면 해상 운임이 급등한 탓에 운반비 부담이 가중돼 작년 주요 업체들의 합산 손익은 적자로 돌아섰다. 또 올해에도 저조한 수익성과 투자 자금 소요 등으로 국내 관련 업체들의 재무 악화는 과거 대비 더욱 뚜렷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주요 원인으로는 중국 경제 성장률 둔화 속 자국 내 자급률 상승과 유가 앙등, 신규 투자 부담 확대 등이 꼽힌다. 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SKC·효성화학 등 4개사의 작년 영업손실은 취합한 결과 총 1조641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롯데케미칼은 범용 올레핀 계열 부진의 영향이 커 적자 규모도 8941억원으로 최대치를 기록했고, 3년 연속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작년 10월 미국 루이지애나 법인 지분 40%에 대해 6627억원 상당의 주가 수익 스왑(PRS) 계약을 체결했고, 올해 2월과 3월에는 파키스탄 법인 지분과 LCI 지분을 매각해 7479억원을 확보했다.
울산 사업장에서는 일부 생산 라인 가동을 중단했고, 인력을 재배치하는 과정에서 퇴사자들이 생겨났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권고 사직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는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면서도 “일정 부분 명예 퇴직 방식으로 진행된 건 맞다"고 말했다.

▲LG화학 사옥 출입문. 사진=박규빈 기자
투자 은행(IB)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사모펀드 글랜우드 프라이빗에 최근 수처리 필터 사업을 1조3000억원에 매각하는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40년 간 운영해오던 여수 공장 사택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LG화학 관계자는 “확정된 바는 없다"면서도 “친환경 소재·전지 소재·신약 등 3개 신 성장 동력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측이 매각설에 대해 부인하지 않아 업계에서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작년 영업손실이 3002억원인 한화솔루션은 울산 사옥 부지와 한화저축은행 지분 매각해 3382억원을 마련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실행했다. 그러나 주력인 석화와 신재생 에너지 사업 모두 업황이 저조해 영업 실적 회복을 바탕으로 한 재무 안정성 개선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한국신용평가의 분석이다.
SKC는 동박 사업이 전기차 캐즘에 따른 전방 수요 둔화와 시장 공급 생산 과잉으로 인한 낮은 가동률이 지속됐고, 국내 전력 비용이 급격히 상승해 손익 구조가 약화됐다. 이에 따라 작년 11월에는 SK넥실리스 FCCL 박막을, 12월에는 SK엔펄스 CMP 패드 사업을 매각해 4360억원을 확보했다.
올해에는 구매력이 큰 중화권 대형 고객사향 공급이 본격화되고, 기존 고객사들의 가동률 정상화가 예상돼 판매 물량의 탄력적인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SKC 관계자는 “투자 자산의 손상 등으로 세전 적자가 더욱 심화됐다"며 “전방 산업의 부진은 계속될 전망이지만 주요 사업의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미래 사업의 성장 기반을 탄탄히 구축해 수익 기반을 회복하고, 차입구조 개선, 폴란드 정부 보조금 확보 등 재무 건전성을 지속 강화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효성화학은 역내 프로필렌 계열 증설로 경쟁 강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해상 운임이 급등해 수익성이 악화됐다. 작년 12월 특수 가스(NF3) 사업 부문은 효성티앤씨에 양도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청사. 사진=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 페이스북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석화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포함한 업계 재편 지원책을 발표했지만 자율 컨설팅을 맡겨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유보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지난달 15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 “정부가 강력한 메스를 들이대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며 “중장기 연구·개발(R&D)로 기술력을 제고하려는 기업이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되면 수요가 나올 수도 있어 과도한 구조조정보다는 자율적인 사업 재편으로 지원을 계획 중"이라고 답변했다.
김서연 한신평 기업평가본부 수석연구원은 “석화 산업단지에는 여러 기업의 설비가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연계돼있기 때문에 개별 매각이 쉽지 않은 구조적 특성이 있다"며 “장기간 지속된 수익성 저하로 인수자 확보와 매각가 협상에도 어려움이 따르고, 실제 사업·재무 효과로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