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배터리 LG에너지솔루션 부스에 전시된 ESS용 LFP배터리 팩. 사진=이찬우 기자
한국 배터리 업계가 점유율 하락-에너지저장장치(ESS) 전망 악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전기차 캐즘과 중국 기업의 급성장으로 자리를 잃어가는 와중에 그나마 돌파구였던 미국 ESS 시장마저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는 현지화, 유럽 시장 등 판매 다각화에 집중해 향후 일어날 여러 불확실성에 대비할 방침이다.
8일 에너지시장 조사업체 SNE리서치 1~3월 글로벌 전기차용(EV) 배터리 사용량 자료에 따르면 한국 배터리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의 점유율이 18.7%로 전년 동기 대비 4.6%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글로벌 EV 배터리 사용량은 221.8GWh로 38.8%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SDI는 유럽·북미 완성차 수요 감소로 배터리 사용량이 17.2% 줄었고,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도 성장세를 보였으나 점유율 확보에 실패했다.
반면 중국 기업은 올해도 파죽지세다. CATL(38.3%)과 BYD(16.7%)는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통해 양사 합산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이어가고 있다. LFP 대응이 늦어 뒷걸음질 치고 있는 한국 업계와 정반대의 양상이다.
이에 국내 기업들은 ESS를 신성장동력으로 삼아 반등에 나서려 했는데 최근엔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ESS는 초거대 배터리로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특히 대용량 전력이 필요한 데이터센터 등에 필수적인 요소로 추후 수요가 꾸준히 중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분야다.
그러나 최근 유망했던 ESS 시장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으로 인해 ESS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취소될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NEF(BNEF)는 2025년 글로벌 ESS 설치량을 전년 대비 37% 오른 247GWh로 전망했지만 2026년 성장률은 4%로 급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미국 시장은 2025년 설치량 전망치를 12% 하향 조정했고, 2026년에는 32% 추가 하락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국내 배터리 업계의 재정 악화를 더욱 가속화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분기 삼성SDI는 영업손실 4524억원 기록했다. 적자 원인 중 ESS 시장의 약세가 큰 부분으로 꼽히는데 앞으로 이 부분이 더욱 부각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LG엔솔과 SK온은 지난 분기 선방했지만 ESS 시장 위축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에 한국 배터리 업계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 ESS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유럽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전기차 시장이며 2030년까지 ESS 시장도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전략적 지역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독일 뮌헨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유럽 2025'에서 유럽산 LFP 셀을 적용한 20피트 표준 컨테이너형 ESS 제품과 다양한 ESS 배터리 라인업을 선보이며 현지화 전략과 배터리 패스포트 사업을 강조했다. 삼성SDI도 AI 데이터센터용 UPS 배터리 신제품 'U8A1'과 밤낮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삼성배터리박스(SBB) 1.5'를 공개하며, 고출력과 안전성을 강조했다.
배터리협회 관계자는 “유럽은 세계 전기차 산업의 중심지이자 급성장하는 ESS 시장을 품은 전략적 지역"이라며 “한국과 유럽 간 배터리 산업 협력과 기술 교류가 더욱 심화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