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축은행업계는 건전성 지표 악화 등으로 부실 처리를 위한 NPL 자회사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막중해진 상황이다.
저축은행 업권의 건전성 지표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저축은행중앙회가 부실채권(NPL) 정리를 위한 자회사 설립을 통해 본격적인 부실채권 정리를 시도하고 있다. 인가와 동시에 곧바로 자산화에 속도를 내기 위해선 신속한 자본금 조성과 적극적 투자금 유치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SB NPL 출범 '초읽기'…관건은 발빠른 초기 자본금 확보
17일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중앙회가 하반기 중 NPL 자회사를 통한 부실채권 정리를 시작한다. NPL은 금융기관에서 발생한 부실채권으로, 원금이나 이자가 일정 기간 이상 연체된 대출을 의미한다.
중앙회는 지분 100%, 자본금 5억원의 자회사 '에스비엔피엘대부(SB NPL) 주식회사'를 지난 5월 설립하고 현재 금융감독원의 영업인가를 기다리고 있다. 앞서 당국이 부실채권 정리를 독려해 온 만큼 3분기 안에 승인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회는 자회사 설립에 맞춰 경력 20년 이상의 NPL 매입관리전문가를 채용하는 등 실무 조직 구성과 행정업무 등 운영 채비도 마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는 최소 자본금 요건을 맞춰 법인을 설립한 상태로, 추후 업계 재원으로 자본금을 확충할 계획이다.
업계에선 건전성 지표 악화 등으로 부실 처리를 위한 NPL 자회사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막중해진 상황이다. 상반기에 1조4000억원 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채권 정리에 성공했지만 현재 고정이하여신비율, 기업 대출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가 심각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79개 저축은행 고정이하여신비율은 1년 전 대비 0.27%p 증가한 10.59%를 기록했다. 고정이하여신은 저축은행 대출채권 건전성 5단계 중 3단계인 '고정' 이하 여신 중 연체 기간이 3개월을 경과한 물건이다. 전체 여신 중 이 비중이 클수록 건전성이 나쁜 것으로 해석한다. 기업 대출 연체율은 2.65%p 상승해 13.65%에 달했다. 기업대출은 업계 대출사업 중 가계대출을 제외한 사업으로, 부동산 PF가 여기로 집계된다. 기업대출 연체율 악화는 부동산 PF 시장 안정성이 낮다는 의미다.
수익성도 지속해 하락 중이다. 지난해 업권 전체 순손실은 3974억원에 달해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자기자본, 수신 등 주요 재무지표도 하락세다.

▲저축은행중앙회.
이에 SB NPL은 당국 인가가 떨어지면 곧장 시행사 채권 매입 등 현장 실무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SB NPL의 빠른 부실 정리가 시작되려면 업계로부터 신속한 초기 자본금 조성이 이뤄져야 할 것이란 지적이다.
중앙회는 기존 마련된 지급준비예탁금 외에 적극적인 투자금 유치에도 나설 방침이다. 현 시점에선 100억원 규모로 시작한 뒤 자본금을 단계적으로 늘려 1000억원까지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선 자본금이 100억원으로 늘어나면 1000억원까지 부실채권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대부업법상 대부업체 총자산은 자본금의 10배 이내로 제한된다.
본격적인 부실 정리를 위한 전략 수립과 발빠른 실행력도 과제다. SB NPL은 경공매 특징상 따라오는 수요부족 문제와 회수율 제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대일 협상이나 조건부·분할 매각 등 다양한 정리 방식에 나설 방침이다.
타 업권보다 어려운 요건 다수…출자 여력·인지도·노하우 취약
한편 SB NPL이 최소 수준의 요건을 갖췄을 뿐 타 업권 대비 채권 처리에 따르는 구조적 한계점으로 인한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금융권 내 타 업권엔 △은행권(유암코) △농협(농협자산관리회사) △새마을금고(MCI대부) △수협중앙회(수협NPL대부)가 있다.
유암코는 대형 금융사들의 연합 출자와 오랜 노하우·인력풀을 지녔다는 강점이 있고 농협자산관리회사는 자체 자금과 조직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어 효율성이 높다. 지난해 10월 설립된 수협NPL대부는 조합 지원 등 자본금 500억원으로 시작해 저축은행보다 수월하게 운영에 들어갔다.
반면 저축은행은 회원사 대다수가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형사로, 중앙회 차원의 대규모 자본금 유치가 상대적으로 어렵고 출자 여력도 떨어진다는 게 우선적인 문제다. 일부 대형사는 개별 NPL 자회사를 이미 보유하고 있어 중앙회 주도의 증자에 적극적이기 어려운 면도 있다. 신입 회사인 만큼 기존 NPL 대형사 대비 떨어지는 시장 신뢰도나 협상력, 투자자 풀도 꾸준히 쌓아야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규모 저축은행은 부실채권 규모가 작아 매각 시 협상력 확보에 난항을 겪을 수 있고, 자본력이 취약한 저축은행의 경우 모회사 지원이 어려워 중앙회가 공동 대응도 끌어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장기적 운영 측면에 있어서도 경영 성과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올해 전 금융권 내 NPL회사들의 자산 증가가 예상되지만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운영하는 정부의 장기연체채권 채무조정프로그램(배드뱅크)과 업무가 겹쳐 모멘텀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신용평가(한신평)은 지난 10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캠코를 통한 배드뱅크 설립과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 등 효과까지 감안하면 4분기 이후 NPL사들의 부실채권 매입 규모는 점차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