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5월 30일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5 삼성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최치훈 삼성물산 전 이사회 의장, 이영호 삼성물산 전 사장 등이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업무 상 배임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삼성물산이 10년간 얽혔던 사법리스크에서 완전 탈출하게 됐다. 앞으로 도시정비사업이나 해외 건설 수주, 신사업 분야 진출 등에서 좀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경영이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21일 관련업계 등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과 최치훈 전 의장, 이영호 삼성물산 건설부문 전 사장, 김신 삼성물산 상사부문 전 사장 등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공소제기 한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 지난 17일 대법원으로부터 최종 무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사태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서 시작됐다. 당시 최치훈 전 사장은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을 맡고 있었고 이영호 전 사장은 삼성물산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에 있었다. 2018년 최 전 사장이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에서 물러난 뒤 이 전 사장이 삼선물산 건설부문 사장 후임이 됐다.
당시 특검은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를 위해 삼성그룹 차원에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허위공시 및 고의 분식회계 등 위법이 저질러졌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 합병이 이 회장의 경영승계와 관련해 논란을 빚자, 이 회장은 물론이고 최 전 의장, 이 전 사장도 최고경영자(CEO)로써 법적인 책임 추궁을 받았다. 특히 이 회장은 법정구속 돼 2017년과 2021년에 각각 1년과 약 6개월간 구치소에 갇히기도 했다.
총수가 1년 반여 기간 동안 '영어의 몸'이 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삼성물산 행보도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2014년 '건설종가'인 현대건설을 제치고 시공능력평가 1위에 오른 이래 작년까지 11년 연속 시평 1위에 올라 '국내 건설사 톱'을 지키고 있는 삼성물산이지만 외려 지난 10년간 삼성물산은 건설업계에서 '눈에 띄지 않는 방식'의 경영 활동을 수행했다.
특히 건설사의 직접적인 B2C 영역인 국내 주택 사업에서 최근 10년간 삼성물산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삼성물산 합병 논란이 제기됐던 2015년 그 해, 서초 무지개 아파트 재건축(현 서초그랑자이) 수주전에서 GS건설에 시공권을 내준 이후 삼성물산은 도시정비사업 현장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어졌다.
당시 삼성물산은 도정사업 수주전에서 경쟁이 과열되자, '클린수주' 방침을 내세우면서 과도한 수주전을 벌어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실제로 삼성물산은 이후로 2022년까지 도정사업에서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위해 의도적으로 삼성물산이 주택 사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주가를 낮춘 것이 아니냐는 의혹 제기부터, 이재용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수익성은 낮고 직접적인 소비자 접촉은 많아 소송 리스크가 큰 주택 사업에서 철수하려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실제 삼성물산은 2015년 합병 이후 2019년까지 사실상 신규 주택 사업 수주를 중단했고, 2020년 다시 주택사업에 복귀했지만 일부 서울 강남 도정사업지에만 수주에 나서는 극히 보수적인 선별 수주 기조를 유지했다.
삼성물산이 합병 후유증을 극복해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22년부터다. 이재용 회장이 2021년 사면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사법리스크가 해소되자, 삼성물산도 다시 주택사업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2021년까지 주택사업 수주 잔액이 1조원을 밑돌았지만, 압도적인 아파트 브랜드 파워 1위인 '래미안'이 시장에 귀환하자 2022년엔 수주 잔액이 2조원 턱밑까지 치솟았고, 2023년엔 2조원을 넘겼다.
2024년엔 도정사업 수주액 3조6398억원을 기록해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에 이어 이 부문 3위에 올랐고, 올해 상반기 수주액 5조7195억원을 기록해 1위 자리에 올랐다. 2016년과 2017년에 도정사업 수주액이 '제로'였던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여기다 최근 이재용 회장을 비롯해 합병 사태로 사법리스크에 묶여있던 전임 건설부문 사장들까지 완벽하게 '사법리스크'가 해소되면서 삼성물산의 광폭행보는 속도를 더할 전망이다.
사법리스크 해소를 대표로 한 호재가 발생한 것과 정반대로, 반도체 경기 악화로 삼성전자 등 계열사 공장 공사 일감(하이테크 사업)이 줄어든 것도 삼성물산이 더욱 보폭을 넓히는 외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역설적으로는 하이테크 부문에서 감소한 먹거리를 결국 더욱 적극적인 수주 활동을 통해 메꿔야 하는 도전이 삼성물산 앞에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삼성 측은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이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삼성물산도 경영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