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사에서 '매수 의견'을 담은 애널리스트 보고서 비중이 지난 25년간 꾸준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의견이 바뀌는 경우도 매우 드물어 '투자 의견' 무용론마저 제기된다.
2020년부터 5년간 발표된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투자 의견을 보면, 매수와 적극 매수 의견 비중이 93.1%에 이르는 걸로 나타났다. 매도 의견은 0.1%에 불과했다. 사실상 대부분 리포트는 '사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매수 의견 비중이 높은 건 외국계 증권사도 비슷하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애널리스트 '낙관 편향' 갈수록 심해진다
22일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애널리스트의 낙관적 편향' 보고서에 따르면, 매수와 적극 매수 의견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5년간 꾸준히 늘었다. 2000년대에 67%였던 매수 의견 비중은 2010년대 89%, 2020년대는 93% 수준에 이르렀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투자의견 비중 추이
특히 투자 의견이 바뀌는 경우는 전체 2.5%에 그쳤다. 투자 의견이 상향 또는 하향으로 바뀐 경우는 2000년대 5.6%에서 2020년대 2.5%로 줄었다. 김준석 연구위원은 “애널리스트 투자 의견이 대부분 매수 의견이고 변경되지도 않는다면 투자 의견 무용론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외국계 증권사도 매수 의견이 더 많은 건 맞지만, 보유나 매도 의견 리포트도 적지 않다. 금융투자협회 공시를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외국계 증권사 11곳의 국내 지점은 매수 의견이 절반을 조금 넘긴 59.9%였다. 보유 의견 29.3%, 매도 의견 11.2% 수준으로 투자 의견을 냈다. 국내 증권사 31곳은 평균적으로 투자 의견 10건 중 9건이 매수 의견인 것과 견줘 해외 증권사는 보유나 매도 의견도 40% 정도 분포해 있다.

▲국내/외국계 증권사 투자의견 비율 차이
애널리스트의 낙관적 편향은 투자 의견뿐만 아니라 목표 주가에서도 드러난다. 목표 주가는 통상 1년 뒤 적정 주가를 추정치로 제시하는데, 실제 1년 뒤 주가는 해당 목표에 이르지 못해 예측 오차가 크게 벌어졌다.
2021년 이후 애널리스트의 목표 주가를 기준으로 볼 때, 예상 수익률은 36.8%였지만 실제 수익률은 -2.9%에 불과했다. 예상 수익률에서 실제 수익률을 뺀 예측 오차는 39.7%였다. 김 연구위원은 “목표주가 예측오차에서 관찰되는 낙관적 편향의 추세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분석했다.
분석 대상인 기업이 애널리스트를 평가하는 '이해상충' 문제
애널리스트 투자 의견이 매수로 쏠리는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이해상충 가능성이다. 애널리스트도 증권사 직원인 만큼 증권사의 수익 창출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애널리스트의 분석 대상이 되는 기업 대부분은 증권사 고객이기 때문에 함부로 부정적 의견을 내기 어렵다.
김 연구위원은 애널리스트의 이해상충 요소 중 중개 업무가 가장 강하게 작용한다고 평가했다.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세미나 등 중개 업무에 관한 지원 활동이 애널리스트 성과 평가에 중요하게 반영되고, 애널리스트 경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베스트 애널리스트 선정도 기관투자자 평가에 좌우된다. 김 연구위원은 “결국 애널리스트 업무가 중개 업무에 종속되어 중개 업무 성과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보의 편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중개업무 수익성과 매수 투자의견 비중/출처=자본시장연구원
실제로 지난 25년간 발표된 전체 투자의견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증권사의 중개 업무 수익성이 높아질수록 매수 의견이 제시될 확률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규모, 성장성, 업종 등 다른 조건이 모두 같다고 가정한 뒤 분석했다.
금융당국도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신뢰성을 제고하고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몇 차례 개선을 시도했다. 2023년 4월 금융감독원은 '매수 일색'인 증권사의 종목 리포트 관행을 개선하려고 '리서치 관행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업계 의견을 수렴해 애널리스트 조사 분석 업무와 영업 부문 간 연계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 등이 개선안에 담겼다. 독립 리서치사를 제도권 안에 끌어들이는 방안도 함께 추진했다. 그러나 별다른 소식 없이 활동 기간이 끝났다. 2017년에도 리서치 관행 개선을 위한 협의체를 꾸렸지만 흐지부지됐다.
김 연구위원은 “애널리스트의 낙관적 편향이 20년 이상 지속해서 누적, 고착화하고 있다"며 “애널리스트의 객관성, 독립성을 확보하고 이해상충을 예방하고자 하는 제도 개선의 취지를 살릴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