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의 고관세 정책이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생산·조달·판매 전략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리고 누가 기회를 잡고 있는지 집중 조망한다. <편집자주>

▲31일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이 글로벌 완성차 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고율 관세로 비용은 수조원 늘어났지만 완성차 기업들은 가격을 올리기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결국 완성차 브랜드들은 너도 나도 적극적인 현지화에 나서 추가 비용을 억제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미국기업 제너럴 모터스(GM)와 적극 손잡고 위기 돌파를 모색하고 있다.
11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토요타·폭스바겐·GM 등 글로벌 대표 완성차업체 10곳이 관세로 인한 분기 손실만 118억 달러(약 16조400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폭 실적 하락이다.
토요타 마저 흔들…美 생산확대·공급망 확대 절실
미국발 관세 폭탄에 최대 피해를 입은 글로벌 완성차 기업은 일본 토요타다. 토요타는 2분기 기준 단일 업계 영업이익 감소분이 4500억엔(약 4조2400억원)에 달했다. 연간 관세로 인한 예상 손실 규모는 1조4000억엔(약 13조2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됐다.
폭스바겐은 15억1000만달러, GM은 11억달러, 포드가10억 달러의 관세 손실을 각각 기록했다. 현대차도 6억달러, 기아는5억7000만 달러로 국내 대기업 역시 직접적 피해를 입고 있다.
관세 부담에 더해 환율 변동 역시 업계 타격 요인이다. 2025년 들어 엔화가 강세로 전환, 달러당 140엔 안팎으로 상승하며 토요타 등 일본 완성차의 영업이익을 최대 7250억엔(약 6조8300억원)까지 추가로 끌어내릴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환율변동과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망 조정 압박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자동차 생산 비용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
하지만 경영진은 가격 인상이라는 근본적 해법을 쉽게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 이탈 우려 및 경쟁사의 대응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기 떄문이다.
실제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필립 후쇼아는 “관세 부담이 커져도 주요 업체들은 가격 인상에 먼저 나서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SNS 언급 자체를 두려워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완성차 업계의 대응 전략은 뚜렷하다. 미국 내 생산 확대와 공급망 재편이 그것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210억달러(약 29조원) 규모 현지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메르세데스-벤츠는 SUV 생산거점을 앨라배마주로 이전했다.
GM은 인디애나주 포트웨인 공장에서 '실버라도', '시에라' 픽업트럭 생산을 확대 중이며, 닛산은 테네시주에서 SUV '로그' 생산량을 늘렸다. 혼다도 미국 공장에 추가 근무조를 투입해 생산을 늘린다.
업계 전문가는 “이번 관세 전쟁은 개별 기업의 단기 실적 악화에 그치지 않고, 생산·조달·판매 전략 전반을 흔드는 구조적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며 “향후 2~3년간 자동차 산업의 현지화율이 제조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위기 속 기회…현대차·GM, 북미·중남미 80만대 승부수

▲지난해 9월 현대자동차그룹과 GM 간 포괄적 협력 업무협약(MOU) 체결식에서 정의선 (오른쪽) 현대차그룹 회장이 메리 바라(Mary Barra) GM 회장 겸 CEO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사진=현대차
이 가운데 현대차와 GM은 '공동 개발'이라는 전략 카드를 꺼냈다. 전체 완성차 기업들이 주춤할 때 서로 손을 잡아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양사는 지난해 글로벌 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이후, 올해 2028년 출시를 목표로 5종의 차량을 공동 개발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중형 픽업·소형 픽업·소형 승용·SUV 등 내연기관 및 하이브리드 모델과 북미 전용 전기 상용 밴이 포함된다. GM이 중남미 타깃 중형 트럭 플랫폼을, 현대차가 북미·중남미용 소형 승용차와 전기 상용 밴 플랫폼을 각각 주도한다.
연간 공동 생산 목표는 80만대 이상이며, 생산은 GM 인디애나 공장과 현대차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등 현지 기지를 활용해 관세 부담을 최소화한다.
플랫폼은 공유하지만 내외장 디자인은 각 브랜드별로 차별화해 독자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부품·소재 공동 조달, 물류 효율화, 친환경 제조 기술 협력도 병행한다.
업계에서는 현대차·GM 동맹이 관세 회피와 물류 효율화, 현지 대량 생산 등 근본적인 경영 혁신 전략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일본·유럽 완성차들이 환율과 관세 충격에 흔들리는 사이 두 기업은 협업과 현지 투자를 통해 북미·중남미 시장에서 반격의 기회를 잡고 있다는 평가다.
GM의 글로벌 구매·공급망 부문 최고 책임자인 실판 아민 수석 부사장은 “GM과 현대차는 협업을 통해 고객들에게 더 다양한 선택지를 보다 빠르고 낮은 비용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에 공동 개발하는 첫 번째 차량들은 양사가 보유한 상호 보완적 강점과 스케일의 시너지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GM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다양한 세그먼트 영역과 시장에서 고객들에게 지속적으로 더 나은 가치와 선택권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북미 및 남미 시장에서의 양사 간 협력을 바탕으로 고객들이 원하는 아름다운 디자인, 고품질, 안전 지향의 차량과 만족할 만한 기술 등을 더욱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