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의 고관세 정책이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생산·조달·판매 전략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리고 누가 기회를 잡고 있는지 집중 조망한다. <편집자주>

▲현대차그룹 사옥. 사진=이찬우 기자
25%까지 치솟았던 미국의 수입차 관세율이 15%로 다소 완화됐지만, 과거 무관세 시절과 비교하면 여전히 막대한 부담이다. 관세는 단순한 가격 인상 요인을 넘어 글로벌 완성차업계의 생산·투자 전략과 산업 지도를 뒤흔들고 있다.
이번 조치는 세계 시장을 장악해 온 일본·유럽 완성차 업체들에겐 피할 수 없는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현대차그룹은 선제적 대응 전략으로 영향 최소화를 꾀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한국과 유럽·일본 등 주요 자동차 제조국에 대한 15% 관세율을 확정하면서, 글로벌 업체들의 '현지 생산 확대'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앨라배마·조지아 공장의 전기차 라인 증설을 서두르고, GM은 전기차 플랫폼 '얼티엄(ULTIUM)' 기반 생산 거점을 추가 확보 중이다. 메르세데스-벤츠, 닛산, 혼다 등도 잇따라 북미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관세 충격 완화에 나섰다.
각 기업들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피해의 정도는 차이가 있다. 특히 일본·유럽 업체들은 관세 부담에 환율 변동과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친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유럽 업체들은 유로화 강세와 리튬·니켈·알루미늄 가격 불안정으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고, 일본 업체들은 올해 들어 엔화가 강세로 전환돼 달러당 140엔 안팎을 오르내리며 수출 경쟁력 저하와 함께 원자재 수입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반면에 현대차·기아는 비교적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5년 기준 현대차·기아의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은 약 54%로, 유럽 브랜드(BMW·벤츠 등)의 30~40%보다 높고, 도요타(54%)와 비슷한 수준이다.
GM(64%)이나 혼다(70%)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앨라배마·조지아 공장 증설과 메타플랜트 가동을 통해 최대 70%까지 확대 가능하다는 분석이 있다. 이 정도면 '관세 시대'에 선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생산 비율은 현재 54% 수준이지만 가동률을 높이면 혼다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며 “이는 GM, 도요타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제네시스 GV70. 사진=이찬우 기자
하지만 현대차가 버티는 힘은 '현지 생산'뿐만이 아니다. 영업이익률이 8% 후반대로, 폭스바겐(4%대)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이 교수는 “15% 관세가 부과되면 현대차·기아의 수익은 약 5조 원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전체 이익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폭스바겐은 영업이익률이 3% 미만으로 떨어질 수 있어 타격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게다가 원자재 가격 급등 속에서 일본·유럽 업체들은 판매 인센티브 확대, 미국 내 마케팅 비용 증가, 신모델 출시 지연 등 복합 비용 압박을 받고 있다.
반면 현대차는 친환경차 비중 확대와 제네시스 등 고부가가치 모델 중심 전략으로 원가 상승분을 흡수하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 교수는 “현대차는 제네시스 등 고가 모델 판매 확대로 미국 수출 차량의 평균 가격이 5만 달러에 달한다. 객단가 상승이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차이는 2분기부터 발생했다. 올해 상반기 현대차그룹은 매출 150조원, 영업이익 13조원을 기록하며 폭스바겐그룹(약 10조8600억원)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높은 수익성과 견조한 판매 구조 덕에 관세 충격이 폭스바겐보다 상대적으로 작게 작용한 것이다.
이에 업계에선 현대차그룹이 올해 남은 기간 미국 관세 부담과 전기차 수요 둔화 등 불확실성에 효율적으로 대응한다면, 수익성 부문 '톱2' 자리를 확실히 굳힐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10% 넘게 줄었지만, 4조 원 이상 관세 부담을 떠안은 토요타그룹과 비교하면 선방한 편"이라며 “자유무역협정(FTA) 영향으로 미국 자동차 관세를 충분히 낮추지는 못했지만, 경영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된 점만으로도 현대차그룹에 나쁘지 않은 환경"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