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 스테이블코인과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13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스테이블코인과 금융시장의 미래: 규제, 안정성, 혁신' 세미나에서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세미나는 서울대 금융경제연구원, 한국금융학회, 한국증권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특별 심포지엄이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스테이블코인과 금융시장의 미래 세미나/사진=최태현 기자
이날 세미나는 국내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활발히 나오는 가운데 열렸다. 일각에선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위협하는 통화 주권을 지키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재원 교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수요 자체가 거의 없다"며 “수요가 없는 상태에서 발행자들은 경쟁적으로 시장에 진입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본금 규제를 보면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 공급자가 경쟁적으로 출혈 경쟁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이 금융 부문에서 벌어지면 보통 사고가 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막자는 주장은 아니라고 최 교수는 말했다. 신중 도입론자에 가까운 편이다. 최 교수는 “디지털 자산 생태계에서 혁신의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면서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엄격한 규제 아래 제도화를 꼭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 세계 99% 달러 독주…원화 스테이블코인 '수요 부재'"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수요를 보면 철저히 달러 독주의 시장이다. 전체 수요의 99% 이상은 달러고 유로화도 0.25%에 불과하다. 크립토 거래, 불법 송금 등은 모두 달러가 표준이다. 고물가나 낙후된 금융시장을 가진 국가들은 자국 화폐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달러를 쓰고 싶어 한다. 최 교수는 이를 두고 “실물 달러 지폐에 대한 '초과 수요'를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충족했다"고 표현했다.

▲스테이블코인, 달러 독주의 시장/출처=최재원 서울대 교수
이 지점에서 한국과 미국의 상황이 크게 다르다고 최 교수는 강조했다. 최 교수는 “한국은 수요도 없는데 스테이블코인을 먼저 제도화하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미국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수요의 부재'에서 출발했다. 이전에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있었지만, 거의 쓰이지 않아 자연스레 사라졌다. 반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이용자 수요에 기반해서 성장했다. 이를 규제하기 위해 지니어스법안이 뒤늦게 만들어진 것이다. 최 교수는 “한국은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 명분과 실익이 미국에 견줘 약하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기 전에 논의해야 할 이슈로 △소비자보호 및 금융안정 리스크 △신용창출의 변화 △통화정책과 충돌 가능성 △정부 세수 감소 및 주조차익 사유화 등 네 가지를 꼽았다.
소비자보호 및 금융안정 리스크 관점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면 적은 수요와 낮은 진입장벽이 결합해 과잉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 교수는 “과도한 이자를 지급하려면 결국 자산 운용상 경쟁이 심해진다"며 “이는 준비자산에 가장 높은 이율을 주는 고위험, 초장기 만기 위주의 채권으로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용 창출의 변화와 관련해 최 교수는 “미국은 달러의 초과 수요를 스테이블코인이 흡수해서 은행 예금이 크게 줄지 않지만, 원화는 은행 예금에서 돈이 이탈해 스테이블코인으로 유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교수는 “스테이블코인 입장에서 예치금이 늘면 민간 대출 여력은 줄어들 것"이라며 “대부분이 국고채인 준비자산을 늘리면 정부 부채는 확대되고 민간 대출이 위축되는 전형적인 구축 효과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면서 핀테크 업계에선 시장 주도권을 따내기 위해 선점 경쟁에 나서고 있다. 기업마다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상표권 출원 등을 너도나도 진행하고 있다. 이미 카카오가 그룹 차원에서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와 스테이블코인 TF를 구성했고, 토스도 스테이블 코인 TF를 꾸렸다. 네이버페이는 두나무와 함께 법제도 마련시 스테이블코인 사업을 함께 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업들은 이미 6월부터 저마다 상표권을 등록하고 있다.
최재원 교수는 이를 '네트워크 효과'로 설명했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성장을 보면 승자 독식의 시장 구조라는 것이다. 시장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테더와 서클은 사람들이 많이 쓰면서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유동성이 풍부해서 사람들이 테더와 서클을 더 쓰는 네트워크 효과로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최 교수는 “만약 한국에서도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활발히 전개된다면 1~2개 회사만 살아남을 확률이 아주 높다"고 내다봤다.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오해…통화주권 지키려면 원화 코인 도입해야?
패널 토론에 나선 김영식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오해를 몇 가지로 짚으며 발표를 시작했다. 먼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원화 국제화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단순히 통화의 디지털화만으로 국제화가 된다는 건 어렵다"며 “중국 위안화, 유로,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확산에 맞서 국내 통화주권을 지키기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관해서는 “근본적으로 통화 주권은 양호한 통화 정책에 따른 통화 가치의 안정에 달린 문제"라며 “오히려 중요한 건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거래 허용 여부를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스테이블코인은 준비자산을 100% 이상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안정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충분한 준비자산이 뒷받침되어도 스테이블코인 가치 변동, 코인런 발생 가능성, 준비자산 가격의 급락, 공시 투명성과 관련한 리스크는 여전히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