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냉매와 온실가스
해마다 여름이면 극심한 폭염이 반복되면서 에어컨은 필수품이 됐다. 국내 에어컨 보급률은 98%에 이르렀다. 에어컨 사용이 늘면 전력 수요 증가로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지만, 에어컨 속에 들어 있는 냉매가 기후위기를 키우는 '복병'이라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냉장고, 에어컨 등의 냉매로 주로 사용되는 수소불화탄소(HFCs)는 과거 염화불화탄소(CFCs)처럼 오존층을 파괴하지는 않지만, 지구온난화 잠재력(GWP, 온난화지수)이 이산화탄소(CO2)보다 수백~수만 배에 이를 정도로 강력한 온실가스다. 한번 배출되면 대기 중에 오래 남아서 계속 온실효과를 지속해서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환경부가 발표한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자료에 따르면 냉장·냉방 기기의 확산으로 인해 수소불화탄소 냉매와 관련된 온실가스 배출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22년 3220만톤에서 2023년 3340만톤으로 늘었고, 2024년에는 3500만톤까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양한 종류의 냉매마다 지구온난화 잠재력이 다른데, 이를 이산화탄소 기준으로 환산해서 합산한 값이다.
주목할 점은 2024년 냉매 관련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도보다 160만톤(4.8%) 증가했다는 것이다. 냉매를 포함한 산업 부문 전체의 배출량이 130만톤(0.5%)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냉매가 다른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크게 잠식한 것이다.
냉매 관련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는 것은 자동차를 폐차할 때나 냉장고를 폐기할 때 관련 업체에서 비용 문제를 들어 냉매를 제대로 회수, 재활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어려워 보이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달성을 더욱 곤란하게 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 중국 베이징대학교 환경과학공학대학 후젠신 교수팀은 최근 '환경 과학 기술(Enivironmental Science and Technology)'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불화탄소(수소불화탄소와 염화불화탄소 등을 포함한 개념) 문제 해법을 제시했다.
이른바 불화탄소 수명주기 관리(FLM, Fluorocarbon Life-cycle Management)다. 단순히 냉매를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 사용 중인 불화탄소를 회수·재활용·재생·파괴하는 전 과정 관리 전략이다.
전 세계적으로 불화탄소는 에어컨과 냉장고 등 기기 속에 '은행(banks)'처럼 저장돼 있는데, 관리하지 않으면 수명이 끝날 때 대기 중으로 유출된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2022년 전 세계 불화탄소 '은행' 규모는 13.4~24 Gt CO₂eq(기가톤, 이산화탄소 환산량), 최대 240억톤으로 추정된다. 이는 중국, 미국, 인도 3개국의 연간 배출량을 합친 것에 맞먹는 양이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키티맷에 위치한 LNG 캐나다 액화천연가스 시설의 냉매 저장탱크. (사진/로이터=연합)
연구팀은 이러한 불화탄소를 방치될 경우 금세기 중반까지 0.014℃의 추가 기온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적극적인 FLM을 도입하면 2060년까지 11.2 Gt CO₂eq 감축이 가능하며, 그중 93%는 톤당 10달러 이하라는 낮은 비용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석탄·가스 발전 감축보다 훨씬 저렴한 수단이다.
FLM에서 핵심은 재생(Reclamation)이다. 불화탄소를 회수해 정제·재생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는데, 이는 신규 물질 생산을 대체해 자원까지 아낄 수 있다. 중국의 경우 2060년까지 최대 7.0 Gt CO₂eq 상당의 HFC를 재생할 수 있으며, 이는 자국 서비스 수요를 모두 충족하고도 남을 양이다.
재생은 냉매를 파괴(destruction)하는 것보다 경제성이 뛰어나고, 재생된 물질의 시장 가치가 비용 절감을 뒷받침한다. 다만 재생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어, 정부의 제도적 지원과 의무 사용 규제가 병행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냉매 관리 강화는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기후 해법이자, 국제적으로 검증된 전략"이라며 “한국도 FLM 체계를 본격 도입해 회수·재생 시장을 육성하고, 국제 협력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냉매는 지금까지 대중적 주목을 덜 받았지만, 사실상 탄소중립의 성패를 좌우할 '숨은 핵심 과제'라는 것이다.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안영환 교수는 “냉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도 중요하다"면서 “환경부도 회수 재사용을 늘리는 노력은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온난화 잠재력이 낮은 대체 냉매를 개발할 필요도 있는데, 미리 준비한 선진국에 비해 늦은 만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