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EPA/연합)
미국 기준금리 인하를 촉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상시 투표권을 가진 리사 쿡 연준 이사의 해임을 추진한 데 이어 이번엔 투표에 참여하는 지역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 인사에도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6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는 연은 12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방안은 5년마다 한 번씩 실시되는 연은 총재 재인가 절차에 개입하는 것이다. 재인가는 워싱턴 DC에 위치한 연준 이사회가 5년마다 각 지역 연은 총재들의 재임 여부를 표결로 결정하는 절차로, 차기 투표는 2026년 2월에 예정됐다.
지금까지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활용해 매파 성향의 연은 총재에게 압박을 가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최근 해임 통보를 받은 쿡 이사 후임에 '트럼프 충성파'가 임명될 경우, 연준 이사회 7명 중 4명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인사로 채워져 재인가 표결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듯, 일부 연은 총재들은 올 여름 초반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흔들기' 구상이 자신들의 거취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쿡 이사의 해임 소식 이후 이런 불안감은 증폭됐고, 다수의 연은 총재들이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파장을 논의했다고 한 소식통은 덧붙였다.
LH메이어의 데렉 탕 이코노미스트는 “백악관은 연준의 구조를 흔들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들여다보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연준 이사회의 과반을 장악할 경우, 과거에 단순한 절차로 여겨졌던 재인가 과정이 압박 수단으로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리사 쿡 연준 이사(사진=AFP/연합)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에는 연준 이사회를 충성파로 채운다 해도 금리인하 가능성이 제한적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FOMC 정례회의에선 연준 이사회 7명과 연은 총재 5명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투표권을 가진 연은 총재 5명 중 1명은 당연직으로 참여하는 뉴욕 연은 총재이고 나머지 4명은 매년 교체된다. 올해는 보스턴, 시카고, 세인트루이스, 캔자스시티 연은 총재들이 투표권을 갖고 있다. 투표권이 없는 연은 총재들도 FOMC 정례회의에 참석해 연준의 경제 및 통화정책에 대한 의견을 낸다.
차기 연은 총재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된다. 연은 총재들은 연준 이사와 달리 대통령의 지명이나 상원 인준이 필요 없기 때문에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이사회를 장악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연은 총재들은 총 9명의 지역 연은 이사 중 B·C등급 이사 6명이 후보를 선출하고 연준 이사회가 최종 승인한다. 이 중 C등급 이사는 연준 이사회가 직접 임명한다. B등급 이사는 연은 관할지역 은행들이 선출한다.
이에 매파 성향의 인사가 차기 연은 총재 후보직으로 거론돼도 연준 이사회가 이를 거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라엘 브레이너드 전 연준 부의장은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FOMC 투표권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는 연준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이라며 “연은 총재 여러명을 교체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은 인플레이션과 장기 금리 상승을 부추길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쿡 이사에 대해 “(법) 위반을 저지른 것 같은데, 그래선 안 된다. 왜냐면 그가 모기지(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의 후임으로 “아주 훌륭한 인물들"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반면 쿡 이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조치에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불복하고, 2038년까지인 자신의 임기를 마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