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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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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외면한 ‘MAGA’ 미국을 다시 가난하게 만든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12.20 06:46

트럼프 대통령 기후변화 대응 외면하지만
기후 위기로 소득 줄어 ‘다시 가난하게’로
애리조나 대학 교수, 2000~2019년 분석
미래 방치하면 경제 손실은 더 커져 지적

트럼프

▲' 마가(MAGA)' 모자를 쓰고 경례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라는 구호를 앞세워 경제 성장을 강조해 왔다. 그러면서 그는 기후 위기 증거를 '사기'라고 폄훼하고, 기후변화 대응을 비용이 큰 규제로 간주해 완화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트럼프의 노선은, 최근 축적되고 있는 경제학 연구에 비추어 볼 때 오히려 미국 경제를 구조적으로 약화시키는 선택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기후위기를 방치하는 정책은 'MAGA'가 아니라 'MAPA(Make America Poorer Again)'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이미 미국을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기후변화의 경제적 피해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가상 시나리오가 아니다. 최근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된 미국 애리조나대학 경제학과 데릭 르무안의 연구 결과는 기후변화가 이미 미국 경제에 실질적인 소득 손실을 초래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이 연구는 2000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 전역의 카운티 자료를 활용해 인간 활동으로 인한 기후변화가 일일 기온 분포를 어떻게 바꾸었고, 그 변화가 소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정밀하게 추적했다.


가장 단순하게, 특정 지역의 해당 연도 기온 변화만을 고려할 경우에도 기후변화는 미국의 연간 소득을 약 0.32% 감소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수치는 기후변화의 본질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결과다. 기후변화는 일시적이고 국지적인 현상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지속되고 공간적으로 전국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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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각 카운티별로 2000~2019년 사이 따뜻한 날(왼쪽 지도)과 무더운 날(오른쪽 지도) 숫자의 변화를 나타낸 지도. 일평균온도가 21.1 ~26.7℃인 날은 따뜻한 날로, 26.7℃보다 높은 날은 무더운 날로 분류했다. 플로리다와 텍사스 등 남부지역은 따뜻한 날은 줄었고, 무더운 날은 크게 늘었다. (자료=Lemoine, PLOS, 2025)


르무안 교수의 연구가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이른바 '전체 계산(full calculation)'이다. 이는 현재의 기온 변화뿐 아니라 과거 수년간 누적된 기온 변화, 그리고 다른 지역의 기온 변화가 무역과 가격, 투자 경로를 통해 미치는 영향까지 모두 반영하는 분석 방법이다.


이 방식으로 계산할 경우, 2000~2019년 기간 동안 기후변화로 인해 미국의 국가 소득은 평균적으로 약 12.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신뢰구간을 고려하더라도 최소 2%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단순한 환경 비용이 아니라, 무역 정책이나 조세 개편, 대규모 이민 정책 변화에 버금가는 거시경제적 충격이다. 다시 말해, 기후변화는 이미 미국 경제의 성장 경로 자체를 낮추고 있으며, 이를 외면하는 것은 '경제 우선' 전략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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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3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뉴욕시 유엔 본부에서 열린 80차 유엔총회에서 연셜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구온난화를 주장하는 것은 사기극이고, 풍력과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는 근절돼야 할 사기"라고 주장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피해는 왜 전국으로 확산되는가


기후변화의 경제적 피해가 이처럼 큰 이유는 미국 경제가 촘촘한 무역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한 지역의 폭염이나 이상 기후는 그 지역의 생산성만 떨어뜨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농산물 가격, 에너지 비용, 제조업 공급망을 통해 다른 지역의 소득과 투자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구 결과는 이러한 일반균형 효과가 매우 중요하며, 특히 무역을 통한 가격 경로가 피해 확산의 핵심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후변화를 방치할 경우, 경제적 손실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 실질적인 완화와 적응 노력이 없는 온실가스 고배출 시나리오에서는 2100년까지 전 세계 1인당 국내총생산(GDP)가 최대 20~24%까지 감소할 수 있다. 이는 케임브리지대와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진이 미국 공공과학 도서관 온라인 학술지(PLOS) '기후(Climate)'에 발표한 국가별 거시경제 분석 결과다.


특히 화석연료 확대와 정책 후퇴를 가정한 시나리오에서는, 연간 기온 상승이 장기간 누적되면서 성장률 자체가 훼손된다. 이는 일부 부문에서의 적응으로 상쇄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장기 잠재력을 갉아먹는 구조적 손실이다. 미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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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지구 기온 상승이 국내 총생산(GDP)에 미치는 영향. 다양한 기존 연구 결과들이 붉은점으로 표시돼 있고, 논문 저자들의 추정치는 회색 영역으로 표시돼 있다. (자료= Mohaddes and Raissi, PLOS Climate, 2025)


◇MAGA를 원한다면, 기후정책이 필요하다


흥미로운 점은 적극적인 기후 완화 정책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비용'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파리 기후협정 목표에 부합해 연간 기온 상승 폭을 낮출 경우, 장기적으로는 소득 손실을 크게 줄이거나 일부 시나리오에서는 순이익을 얻을 가능성도 제시된다.


이는 기후정책이 곧 성장정책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선택은 분명하다. 기후위기를 외면한 채 단기적 규제 완화와 화석연료 확대에 매달리는 전략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보다는, 이미 시작된 '미국을 다시 가난하게' 만드는 경로를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


진정한 의미의 MAGA를 원한다면, 기후변화를 비용이 아닌 경제 전략의 핵심 변수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이는 환경을 위한 선택이기 이전에, 미국 경제의 장기적 번영을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충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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