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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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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재난’ 강릉, 인공강우·해수담수화도 힘들다…당분간 소방차·페트병 의존 불가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9.01 11:03

영동지방 최근 3개월 강수량 평년의 36.5%
물부족 사태 내년까지 이어질 우려도 있어
실험단계 인공강우로 강수량 증가 5㎜ 미만
담수화 건설 2000억원 예산, 5년 이상 걸려

바짝 마른 오봉저수지

▲강릉 지역 생활용수의 87%를 공급하는 상수원 강릉 오봉저수지가 바짝 말라 있다.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15% 아래로 떨어졌다. (연합뉴스)

강릉 가뭄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정부도 지난달 30일 가뭄 피해가 본격화된 강원도 강릉지역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재난사태는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에 따라 행정안전부장관이 선포하는데,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사람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에 미치는 중대한 영향이나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선포할 수 있다. 가뭄은 자연재난과 사회재난 중에 자연재난에 속한다.


강원도 영동지방은 최근 3개월 동안 강수량이 평년의 36.5% 수준에 머물고 있다.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시기인 6~8월의 강수량이 이 정도여서 당장도 문제지만, 자칫 내년 장마철까지도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수도 있다.


강릉 가뭄

▲최근 3개월 전국의 평년 대비 강수량 비율(%). 강원 영동 지역은 40% 미만인 반면, 광주 등은 평년보다 많은 비가 내렸음을 볼 수 있다. [자료: 기상청]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페트병에 담긴 수돗물을 보내와 마시는 물은 해결한다지만, 설거지·화장실·목욕·세탁·청소 등 생활용수 부족은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강릉시는 지하저류댐을 짓고 정수장을 확충해서 3만2000톤의 수돗물을 추가로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몇 년이 걸리는 사업이라 당장은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면 인공강우나 해수담수화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도입 가능성을 사례를 통해 살펴봤다.





◇인공강우로 댐 채우기는 역부족


인공강우

▲2022년 10월 4일 인공강우 실험을 위한 비행경로. 공군 항공기의 전체 경로는 흰색 선으로 표시돼 있고, 기상청 항공기 나라호 경로는 노란색 선으로 표시됐다. 파란색 선은 공군 항공기의 구름 씨앗 파종 경로이고 검은색 선은 나라호 구름씨앗 파종 경로다. 검은색 점은 강수량 측정 지점을 표시한 것이다. [자료: Asia-Pacific Journal of Atmospheric Sciences, 2025]


인공강우 실험

▲인공 강우 실험인 구름 씨앗 살포에 따른 강수량 변화 모의 결과. 2022년 10월 4일 강원 영동지역에서 진행한 실험에서 6시간(오후 2~8시) 동안 누적된 강수량 변화(㎜, 색깔로 표시, 오른쪽 범례)와 기상청 관측소에서 관측된 강수량(원 안의 색깔로 표시, 왼쪽 아래 범례). [자료: Asia-Pacific Journal of Atmospheric Sciences, 2025]

하늘에 구름 씨앗을 뿌리고 비를 내리게 하는 인공강우를 검토할 수 있지만, 국내 기술로는 아직 역부족이다. 국내에서는 가뭄이 심할 때 인공강우에 관심을 보이고 연구개발에 투자하다 가뭄이 끝나면 연구비를 삭감해 연구가 지연되는 역사를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마침 지난 4월 기상청 국립기상과학원은 강원 영동지방을 대상으로 지난 2022년에 실시했던 인공강우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한국기상학회가 발간하는 '아시아 태평양 대기 과학(Asia-Pacific Journal of Atmospheric Sciences)' 저널에 발표한 이 논문에 따르면, 항공기로 구름 씨앗을 뿌렸을 때 강수량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모델링으로 추정하는 방식으로 실험이 진행됐다.


2022년 10월 4일 실험에서는 공군 수송기를 이용해 1.5톤의 염화나트륨(NaCl, 소금) 미세 분말 1.5톤을 오후 1시 48분부터 3시 20분 사이에 강릉 해안 부근 상공에 살포했다. 소금 분말에는 인산삼칼륨 5%가 포함됐다. 또, 오후 4시 29분부터 5시 27분 사이에는 기상청 항공기 나라호에 부착된 24개 염화칼슘(CaCl2) 연소탄을 태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연구팀은 이날 6시간(오후 2~8시 사이) 누적 강수량을 추산했는데, 북강릉 지점에는 2.7㎜, 강릉 성산에는 4.4㎜, 대관령에는 0.9㎜의 비가 인공강우 덕분에 더 내렸던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팀은 이 실험을 통해 구름 씨앗을 어떤 상황에서, 어떤 고도(해발 고도 약 1.5㎞)에 구름 씨앗을 뿌리면 효과가 있다는 중요한 정보는 획득했으나, 이를 당장 강릉에 실용화하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2020~2023년 기상청의 인공강우 실험을 종합하면 평균 증우량(늘어난 강우량)이 1.3㎜, 평균 영향 면적은 서울의 1.5배인 약 930㎢이다. 기상청은 2028년까지 항공기 여러 대를 동원해 구름씨를 연속해서 뿌리면서 증우량을 증가시키는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항공기 3대로 총 6회 비행하면서 구름씨를 이어서 뿌리면 평균 증우량이 2.5~5.0㎜까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샘터에서 물 받는 강릉시민들

▲31일 강원 강릉시 대관령샘터에서 시민들이 식수로 사용할 물을 받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에서 운영하는 대관령샘터는 대관령 지하 암반수를 취수해 수처리 과정을 거쳐 시민에게 식수를 제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지금 강릉의 상황에서 인공강우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강릉의 주요 상수원인 오봉 저수지의 경우 유역면적이 109㎢이고, 여기에 내린 빗물 가운데 절반이 저수지로 들어온다고 가정하더라도 30㎜ 안팎의 강수량이 있어야 유효 저수량이 1430만톤인 오봉 저수지의 저수율이 10% 높아질 수 있다. 지금처럼 가뭄이 심하다면 비가 내려도 토양에 흡수되거나 곧바로 증발되기 쉽다.


한편, 미국에서는 수자원 확보와 우박 예방 등의 목적으로 인공강우를 활용하고 있고, 상업화된 기상 업체가 관련 기술을 확보해 외국에 진출하고 있다. 겨울철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수자원 확보와 적설 증가를 위해 산악 구름을 대상으로 한 기상조절 프로그램을 2006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폐회식 비구름 소산을 위해 인공강우 실험을 진행하기도 했다. 항공기는 물론 대포와 로켓도 활용하고 있다.


1932년 세계 최초의 구름 연구소를 설립한 러시아는 90년 이상 인공강우를 연구해 구름 소산이나 우박 억제 기술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수담수화 시설, 돈·시간이 문제


해수담수화

▲부산 기장의 해수담수화 시설 내부. (사진=강찬수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강릉 가뭄대책회의에서 “혹시 바닷물을 담수화할 생각은 해본 적 없느냐"며 가뭄 근본 대책으로 해수담수화 시설을 직접 언급했다.


김홍규 강릉시장이 “(생각)해봤지만, 얻는 양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든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장기적으로 물 부족 문제는 저수지를 계속 만든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물이) 고갈될 텐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재명 대통령, 강릉 가뭄 대책 회의 발언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강원 강릉시청 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가뭄 대책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해수담수화 시설을 탑재한 선박이 있다면, 당장 강릉에 정박해 마실 물을 공급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선박에 탑재한 해수담수화 시설의 규모는 많아야 하루 500톤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작은 섬 주민의 물부족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만, 인구가 20만명인 강릉 같은 도시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대규모 해수담수화 시설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있지만, 문제는 설치에 몇 년이 걸리고 돈도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부산 기장군에는 하루 생산량 4만5000톤 규모의 해수담수화 시설이 있다. 2000억 원이 들어간 이 시설의 핵심은 역삼투(RO) 공정이다. 반투과막을 이용해 물에 녹아 있는 오염물질을 걸러낸다.


부산시는 2009년 공사에 들어가 2015년 준공해 기장군 5만 가구에 물을 공급하려 했지만, 인근 고리 원자력발전소 온배수 속의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 유입을 우려한 주민들 반대에 부딪혀 제대로 가동도 못했다. 결국 부산시는 기장, 일광지역 하수처리수를 기장 해수담수화 시설로 보내 여과를 거친 뒤 동부산 산업단지에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데 시설을 활용하기로 했다.


강릉의 경우 원전 방류수 걱정도 없고, 동해·삼척·울진 쪽에서 전력을 끌어다 쓸 수도 있다. 지난달 30일 대책회의에서 황주호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해수담수화 시설 설치 비용을) 계산해서 보고드리겠다"고 답했는데,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운반급수 나선 소방차들

▲지난달 31일 강원 강릉시민의 87%가 사용하는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홍제정수장에서 전국에서 달려 온 소방차들이 운반해 온 물을 쏟아붓고 있다. (연합뉴스)


◇수돗물 공급 확대 시간 걸려


강릉시의 주 상수원인 오봉저수지는 현재 저수율이 15%를 밑돌고 있다. 강릉시는 지하 저류댐을 건설하고, 연곡정수장 확장을 통해 수돗물 공급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폭포가 아닙니다…오봉저수지로 쏟아지는 물줄기

▲지난달 28일 강원 강릉시 주요 상수원인 오봉저수지에 저수지 하류의 남대천에서 관을 통해 끌어 올린 물이 쏟아지고 있다. 14억원을 들여 추진한 이 용수개발사업으로 하루 1만t의 물을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대책도 당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봉저수지 하류의 지하수를 퍼올려 거꾸로 저수지로 보내는 방법까지 동원해야 하는 이유다.


당분간은 전국에서 동원된 소방차로 물을 실어나르고, 다른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페트병 수돗물로 버텨야 하는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난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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