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드바(사진=로이터/연합)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과 국채를 둘러싼 투자심리가 엇갈리고 있다. 국제금값은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는 반면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주요 경제국들이 발행한 장기 국채에는 매도세가 쏟아지고 있다. 투자자금이 채권에서 금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심화되면 금값이 온스당 50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5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장기물 매도세가 집중되며 국채금리가 급등했다. 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인다.
미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3일(현지시간) 장중 한때 5%를 넘어섰다. 영국 30년물 국채 금리는 1998년 이후 27년 만의 최고치를, 프랑스 국채 30년물 금리는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대표 안전자산인 독일 30년물 국채 금리 역시 14년 만에 최고 수준을 찍었다. 일본 30년물 국채금리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국제금값은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3600달러 선을 돌파했다. 12월물 금 선물가격의 경우 지난달 29일 3500달러 선을 넘어서더니 지난 3일엔 3635.50달러까지 치솟았다.
국채와 금은 경제 불확실성이 고조될 때마다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대표적 안전자산이다. 국채는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이 극히 낮은 데다 이자를 지급한다는 장점이 있고, 금은 실물자산으로서 가치 저장 수단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채 수요가 줄면서 금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배당금이나 이자를 발생시키지 않음에도 투자자들은 장기채 대신 금에 눈길을 더욱 돌리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왼쪽), 제롬 파월 연준 의장(사진=로이터/연합)
이러한 배경엔 재정 악화 우려,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속 물가 상승) 리스크, 정치적 불안이 모두 맞물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CNBC에 따르면 야데니 리서치의 에드 야데니는 “일본, 프랑스, 영국 등에서 재정 악화로 부채 위기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재정 불안에 대한 보호 수단으로 포트폴리오에 금을 추가하는 투자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저금리 환경,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여파로 정부 부채가 크게 불어난 상황에서 주요 국가들은 여전히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전 세계 부채 규모가 324조달러로 역대 최대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규모 감세 법안으로 미국 재정 적자는 10년간 3조4000억달러(약 4740조원) 더 불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금리 인하 압박을 이어가면서 연준의 독립성 훼손 우려까지 불거지고 있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이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확산하고 있다.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가 법적 근거가 없다고 연방 대법원이 최종 판결할 경우 관세 수입은 더욱 감소할 전망이다.
영국과 독일 역시 막대한 국채 발행 규모와 재정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장기채 금리를 밀어 올렸고, 프랑스는 재정 우려에 더해 정치적으로 내각 해산 가능성까지 제기돼 금리가 급등했다. 여기에 영국은 물가상승률이 4%에 육박하는 등 주요 7개국(G7) 중에서 가장 높아 잉글랜드은행(BOE)의 추가 금리 인하 관측도 점점 줄고 있다.
일본도 참의원(상원) 선거 패배 후 이시바 시게루 총리에 대한 퇴진 압박이 거세지며 정치적 혼란이 가중된 것이 금리 상승의 배경으로 꼽힌다.

▲트레이더(사진=로이터/연합)
이와 관련해 야데니는 “많은 국가의 재정 및 통화정책에 불만을 나타내는 채권 자경단들이 선진국 장기채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상승 모멘텀이 있는 쪽에 쏠리기 마련인데 지금은 그 대상이 금"이라고 짚었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스티브 소스닉 최고전략가는 “통상 국채 금리가 오르면 투자자들이 채권 매수에 나서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프랑스나 일본 등처럼 재정 불안이 커지면 채권 매수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금이 각국의 재정 상황이나 정채적 개입에 자유롭다는 점에서 최고의 안전자신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CNBC는 “금에 대한 투자 매력의 일부는 독립성에서 비롯된다고 애널리스트들이 말한다"며 “향후 투자금 상환을 약속하는 채권의 경우 투자자들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상쇄하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한다. 이와 달리 금은 재정 관리 부실이나 정치적 간섭에도 가치가 하락할 수 없는 자산"이라고 전했다.
미즈호은행의 비슈누 바라단 이코노믹스 총괄은 연준의 독립성 훼손 등으로 달러 기반의 법정통화 체계가 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금이 “궁극의 가치 저장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투자노트를 통해 “가장 확신을 갖고 매수를 권장할 수 있는 자산은 금"이라며 국제금값이 내년 중순까지 4000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개인투자자들이 보유 국채의 1%를 금으로 옮길 경우 금값이 온스당 50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