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정부가 지난 7일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을 공식화하면서 산업·에너지 정책 지형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효율성과 실행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에너지 정책과의 충돌로 인해 이미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혼선과 갈등 우려가 크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조직 개편에서 에너지 정책 전반을 환경부 기반의 부처로 넘기고, 전기·가스·원자력 관련 기능을 분산시킨 점이 핵심 비판 대상이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에너지 거버넌스 전문가인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를 만나 이번 개편안의 문제점과 대안을 들어봤다.
유승훈 교수는 “이번 개편은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놓치는 개편"이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그는 “세계는 RE100, AI데이터센터, 반도체 산업 등으로 에너지 수요가 폭증하고 있고, 이에 맞춘 전력망·가스망 재정비, 탄소중립 달성 전략이 동시에 필요한데 이런 중장기 전략을 부처 간 파편화된 구조로는 절대 추진할 수 없다"며 “이번 개편안은 기후를 강조한 나머지, 에너지의 본질과 산업적 기반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에너지, 환경부에 붙이는 나라 없어...전기·가스 분할, 에너지 수급 리스크 키운다"
유 교수는 “에너지를 환경부 중심 조직으로 이관하는 것은 세계 그 어떤 제조업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에너지부), 일본(경제산업성), 독일(경제·기후행동부) 등 주요국들은 모두 에너지를 산업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본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에너지는 규제가 아닌 진흥의 대상이다. 에너지 정책은 수출, 제조, 일자리, 경제성장과 직결되기 때문에 보통 산업이나 경제 담당 부처가 맡는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환경 중심 조직으로 넘긴다고 하니, 산업계 입장에서는 매우 혼란스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 중 하나로 전기와 가스를 서로 다른 부처에서 관리하게 됐다는 점을 꼽았다. 전기와 가스는 생산·요금·수요관리 등 모든 측면에서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력 수급의 유연성은 주로 LNG 발전에 의존한다. 특히 피크타임 조정은 가스 수급과 직결된다. 그런데 이 두 에너지원이 서로 다른 부처 관할로 넘어가게 되면, 수급 위기 대응 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선진국 대다수는 전기·가스를 통합 규제기구에서 관리한다. 영국은 Ofgem, 프랑스는 CRE, 독일은 BNetzA, 미국은 FERC와 같은 독립된 규제위원회를 통해 정책 조율과 요금체계 설계를 담당한다.
“원전 운영·수출 분리? 수출 경쟁력 사라질 것"
이번 조직 개편에서는 원자력 정책의 운영과 수출 기능을 각각 다른 부처에 분산시키는 안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원전 운영과 수출은 필수불가결한 관계인데 이를 분리하겠다는 건 사실상 원전 경쟁력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원전을 수출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기술'이라는 신뢰다. 그런데 운영은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수출은 산업부가 맡는다면 해외 파트너는 누구와 협상해야 하나? 이건 외교·산업·기술 측면 모두에서 심각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이어 “원전 운영과 수출의 분리는 에너지 정책을 모르는 사람들의 설계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원전 수출은 단순히 계약만 따는 게 아니다. 해외 정부와 협상할 때 '당신들이 사용하는 원전 기술을 그대로 수출하겠다'는 신뢰 기반의 협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UAE 바라카 원전 수주 성공도 한수원의 운영 역량과 국내 설비 경험이 결합됐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해외에서 보기에 운영과 수출을 둘로 쪼개면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유 교수는 특히 “기존에도 산업부와 과기정통부의 이원화로 혼란이 많았는데, 이제는 3개 부처 체제가 되는 셈"이라며 “그야말로 효율성은 사라지고, 책임은 분산돼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산업-에너지-기후 통합 대부처 필요… 규제는 위원회로 분리해야"
유 교수는 대안으로 '기후에너지환경부'처럼 기후·에너지를 억지로 합치는 방식이 아닌, 산업-에너지-기후를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부총리급 대부처 신설을 제안했다. 이는 영국의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BEIS)', 독일의 '경제·기후행동부', 프랑스의 '생태전환부' 등 해외 사례에서도 이미 검증된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전기·가스 요금, 공급계획, 시장구조 조정 등의 기능은 정치로부터 독립된 에너지규제위원회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도 방송통신위원회, 금융위원회-금감원 등의 규제·진흥 분리 모델을 갖고 있는 만큼, 에너지 분야도 같은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선수와 심판이 같은 부처에 있으면 공정성과 전문성이 떨어진다. 정책 갈등도 줄어들지 않는다. 심판은 위원회가 하고, 정부는 산업과 수급을 책임지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 명분 내세운 조직개편, 산업현실 외면해선 안 돼"
유 교수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명분이 산업 현실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세계적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산업 정책의 혼선은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뒤흔들 수 있다는 경고다.
유 교수는 끝으로 “이번 개편안은 '기후를 위해서라면 뭐든 가능하다'는 식의 단편적 접근"이라고 지적하며 “에너지 정책은 단순히 감축이 아니라 공급의 안정성과 산업적 지속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균형을 잃으면 어떤 명분도 산업계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