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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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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제주항공 참사 유족 14명, 美서 보잉 상대 소송…“1968년식 낡은 설계가 원인”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10.15 23:12

보잉 본사 버지니아주 알링턴 인근 워싱턴 킹카운티 법원에 제소
“전기·유압 시스템 결함…조류 충돌 후 연쇄 고장 탓 착륙 불가”
“보잉, ‘안전’보다 ‘이윤’ 우선해 해묵은 ‘조종사 탓’ 전략 반복”

소방대원들이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이탈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소방대원들이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이탈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작년 12월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 무안국제공항 참사와 관련해 희생자 유족들이 항공기 제조사 보잉을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 측은 보잉이 수익성에 매몰돼 안전을 외면했다며 진실을 규명하고자 미국 법정을 택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15일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2216편 여객기 참사와 관련, 허만 로그룹(Herrmann Law Group)은 유족 14명을 대리해 현지시간 14일 보잉의 주요 생산 시설이 위치한 워싱턴주 킹카운티 상급 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고 기종인 보잉 737-800이 1960년대에 설계된 구식 전기 및 유압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해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 후 발생한 연쇄적인 시스템 고장에 대응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제주항공 2216편은 2024년 12월 29일 오전 8시 57분경 무안공항 착륙을 위해 1500피트 상공으로 하강하던 중 관제탑으로부터 조류 활동 경고를 받았다. 약 1분 후 조종사들은 착륙 시도를 중단하고 복행(go-around)을 결정했으나 그 직후 두 엔진 모두에 조류 충돌이 발생했다.


이 충돌로 조종사들은 왼쪽 엔진을 정지시키고 소화기를 작동시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비행 데이터 기록 장치(FDR)와 조종실 음성 녹음기(CVR)가 모두 작동을 멈췄다. 오른쪽 엔진마저 추력이 55% 수준으로 급감했고 항공기의 속도를 줄이고 안전하게 착륙하는 데 필수적인 거의 모든 시스템이 연달아 고장 나기 시작했다.


소장에는 △플랩 △슬랫 △스포일러 △에일러론 △랜딩 기어 △휠 브레이크 △추진 장치 등 비행 제어·핵심 제동 장치가 모두 말을 듣지 않았다고 적시됐다. 조종사들은 필사적인 노력 끝에 항공기를 활주로로 되돌렸지만 이미 필수 착륙 시스템을 모두 상실한 상태였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결국 항공기는 2600m 길이의 활주로를 1200m나 지난 지점에서 시속 175마일(약 281km/h)의 속도로 동체 착륙했다. 항공기는 활주로를 이탈해 계기 착륙 시스템(ILS) 안테나 지지대를 위한 콘크리트 제방과 충돌한 뒤 폭발하며 화염에 휩싸였고, 탑승객 181명 중 179명이 사망했다. 유족 측은 조류 충돌부터 최종 충돌까지 약 4분 21초 동안 희생자들이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겪었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윤이 안전보다 우선해 반세기 전 기술에 항공기 안전 발목"

원고 측은 이번 참사의 근본 원인이 반세기도 더 된 보잉의 구식 설계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고기는 2009년에 인도된 비교적 최신 기체였으나 전기·유압 시스템은 1968년 처음 도입된 보잉 737-100 모델의 아키텍처를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이다.


소송 대리인인 찰스 허만 변호사는 “보잉은 이 기간 동안 백업 안전 시스템에 대한 신뢰할 만한 현대 기술로의 근본적인 업그레이드를 전혀 시행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유족 측은 보잉이 막대한 비용이 드는 신규 인증 절차와 조종사 재교육을 피하고 단기 수익성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식 기술을 고수했다고 입을 모았다.


소장에는 보잉의 이러한 '이윤 제일주의'가 1997년 맥도넬 더글라스(MD) 인수 이후 심화됐다고 명시돼 있다. 당시 맥도넬 더글라스(MD)의 최고 경영자였던 해리 스톤사이퍼가 보잉의 최고 운영 책임자(COO)로 부임하며 “보잉을 훌륭한 엔지니어링 회사가 아닌 기업처럼 운영되도록 바꾸겠다"고 공언했고, 이후 '안전 제일'이라는 엔지니어링 문화가 급격히 퇴색했다는 것이다.


“진실 규명 위해 미국 법정 선택"

허만 변호사는 “보잉은 이 비극에 대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조종사들을 탓하는 낡고 진부한 전략을 반복하고 있다"며 “조종사들은 승객들과 함께 불길 속에서 목숨을 잃어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 보잉에게 외면당한 유족들은 진실을 강제할 수 있는 미국 법정에서 정의를 추구하기로 했다"고 소송 배경을 설명했다.


유족들은 이번 소송을 통해 과실·보증 위반·엄격 책임 등을 물어 보잉의 책임을 입증하고, 사망자들이 겪은 정신적·육체적 고통과 유족들의 피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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