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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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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영의 아파토피아]50년 전 ‘비선호’, 현재는 ‘로또’…아파트공화국 탄생사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11.16 06:00

[편집자주] 대한민국 가구 중 절반이 아파트에 산다. 아파토피아는 우리가 왜 아파트에 집착하는 지 알아 보기 위해 서울의 인기 있는 주요 아파트단지들을 직접 찾아가 소개하는 코너다. 또 아파트와 관련한 주요 이슈나 현안을 분석·해설해주고 전문가나 화제의 인물을 만나 직접 얘기도 들어 본다. <7> 아파트 공화국이 된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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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멸망한 후,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사는지 여부가 생과 사를 가르는 내용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이제 아파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거문화가 됐다.

대한민국 국민 중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 통계청의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거주 주택 유형 중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은 53.9%다.


그러나 1970년대만 해도 전국 주택 유형 중 95%가 단독주택이었고, 아파트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산업화와 함께 도시로 인구가 몰리면서 주택난이 심각해지자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를 중심으로 택지를 개발해 아파트를 대규모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80년대와 90년대 수도권 신도시 개발과 함께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1기 신도시 개발이 마무리 된 2000년, 우리 국민의 아파트 거주 비율은 36.3%로 전 국민의 3분의 1이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또 이 시기를 기점으로 각 건설사들이 브랜드 아파트를 선보였고, 2기 신도시 개발까지 이뤄지면서 국민의 아파트 거주 비율은 지속적으로 올랐다. 2015년이 되자 아파트 거주 비율이 50.1%를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국민 절반이 아파트에 사는 시대가 열렸다.


아파트가 '대세'가 된 이유

사실 처음부터 우리나라에서 아파트가 선호하는 주택이 된 것은 아니었다. 불과 50년전만 아파트에 사는 국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제 시대인 1937년에 지어진 충정 아파트와 1959년에 지어진 개명 아파트를 비롯해 산업화 시대 이전에도 이미 우리나라에 아파트는 존재했다.


그러나 이들 아파트는 1개동으로 이뤄진 개별 단독 건물에 다수의 세대가 모여 살던 방식이었다. 정원을 갖춘 단독주택 주거 형식에 익숙한 국민들에겐 개별동 아파트는 주거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크게 선호되지 않았다.




획기적인 변화가 생긴 것은 1964년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지어진 '마포아파트'였다. 마포아파트는 우리나라에서 현대적인 개념인 단지형 아파트가 처음으로 구현된 곳이었다.


대부분 단독주택이 아궁이에서 밥을 짓던 단독주택과 달리 마포아파트는 현대적인 부엌을 선보였고 재래식 화장실을 쓰던 시대에 수세식 화장실을 갖췄다. 특히 부유층을 중심으로 마포아파트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아파트는 상류층이 거주하는 주택이라는 인식이 처음으로 생기기도 했다.


1966년 용산구 동부 이촌동에 공무원아파트가 건설되면서 공무원들이 대거 아파트에 거주하기 시작하자 아파트 선호 현상은 더 강해졌다. 1971년엔 최초로 엘리베이터를 갖추고, 10층 이상 고층 건물과 20개 동 이상으로 이뤄진 한국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인 여의도 시범아파트가 준공됐다.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등장을 기점으로 이제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비선호 주거 형태에서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새로운 주거 형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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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완공 당시 현재 우리나라 대단지 아파트 개념을 시초로 도입한 여의도 시범아파트의 현재 모습


관이 주도하고, 민간이 짓는 대한민국 아파트 성공 신화

국토의 65%가 산지인 우리나라에서 사실 아파트만한 주거 효율성이 가장 높은 주거 형태이기도 하다. 과거 단독주택은 개별 세대가 토지에 집을 올렸지만, 아파트는 한정된 땅위에 집을 더 높게 지어 다수 세대의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아파트의 품질이었다. 산업화와 함께 주택난이 심각해지자 정부 주도로 시민아파트를 급격히 보급하는 와중에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고로 3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우리나라 아파트 초기 도입기엔 오히려 '아파트의 위기'가 도래하기도 했다.


정부는 당시 사고를 계기로 아파트 시공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인 시범아파트를 도입해 이 위기를 극복했다. 그리고 중소업체에게 무분별하게 아파트를 짓게 하던 관행을 철폐하고 현대건설, 대림산업(현 DL이앤씨) 등 굴지의 대형 건설사들에 아파트 시공을 맡겼다.


1970년대 강남 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반포와 잠실 지구에 반포주공아파트와 잠실주공아파트가 들어섰다. 이어 도곡주공아파트, 둔촌주공아파트, 개포주공아파트 등이 70년대 후반과 80년대 후반에 지속적으로 완공되면서 강남 개발은 현 LH가 주도했다.


대한주택공사가 시공한 강남지역 주공아파트들은 현재 강남 아파트 신화의 시초를 시작한 단지로 현재 강남 재건축 신축 아파트의 뿌리가 됐다.


이처럼 국가가 주도하던 강남 일대 대규모 아파트 공급 상황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압구정 현대 아파트의 등장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과수원과 채소밭으로 채워져 있던 15만평 규모의 압구정 지구에 현대건설이 '압구정 현대 아파트'를 대규모로 공급하면서 민간 건설사가 주도하는 고급화 아파트 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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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건설사 주도의 아파트 개발 시초가 된 압구정 현대 아파트 전경. 임진영 기자

압구정현대 아파트가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자 정부도 80년대부터 민간 건설사에 대규모 택지 지구 공급을 맡겼다. 1985년부터 1988년에 걸쳐 입주를 시작한 목동신시가지 아파트는 14개 단지, 392개동, 2만6000세대 규모로 신도시급 개발에 버금가는 대규모 사업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시공을 주택공사에 맡기지 않고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등 국내 유수의 대형 건설사 17곳에 맡겼다.


분당과 일산 등 1기 신도시 개발도 더 이상 주택공사가 시공에 나서지 않고, 민간 건설사 주도로 이뤄졌다. 압구정현대가 주택시장에서 고급 아파트를 대표하게 되면서 이미 주공아파트가 아닌 민간 건설사의 이름을 딴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이 시장의 대세가 됐다.


정부 입장에서도 서류상으로 부지를 선정하고 구획을 확정한 후 도로만 깔아놓은 다음 아파트 시공을 맡은 민간 건설사에 아파트 건축 및 주위 근린시설 개발비용까지 부담하도록 해 주택공급에 지출되는 예산을 줄일 수 있었다. 대신 정부는 민간 건설사에 각종 규제를 면제해 주거나 택지의 상가 조성 수익 등을 건설사에 제공해 민간 건설사를 아파트 공급에 뛰어들도록 했다.


70년대 강남 개발 초기에 주공이 주도하던 아파트 공급 시장이 80년대부터 정부의 가이드 라인 하에 민간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국가는 1기 신도시의 성공과 같이 최소한의 지출로 신속하게 대규모 주거단지 개발을 할 수 있었다.


21세기 아파트 계급화의 시대, 집은 사는 곳(Live)인가 사는 것(Buy)인가

2000년을 전후로 대형 건설사가 브랜드 아파트를 선보이면서 사실상 대한민국 아파트 문화는 완전히 민간 건설사의 주도 하에 놓이게 됐다. 과거 주공아파트가 강남 아파트 개발을 주도하던 시대에서 이제 LH가 짓는 아파트는 임대 아파트의 상징으로 오히려 '비선호' 대상이 됐다.


민간 브랜드 아파트가 주거 문화를 선도하자 아파트가 계급의 상징, 자산의 상징이 됐다. 삼성물산의 아파트 브랜드인 '래미안'은 론칭 초기 광고를 통해 이런 논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남자친구를 부모님께 소개시키기 위해 데려가는 와중에 “집이 어디야?"라고 묻자 여자친구가 래미안 로고가 선명한 아파트를 가리키며 연인이 흐뭇한 표정을 짓자 “수정씨 집은 래미안입니다"라는 나레이션이 흐르는 내용의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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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당시 아파트의 계층화를 부채질 한다는 비판을 받았던 삼성물산의 래미안 브랜드 광고.

2007년 당시 공개된 이 광고를 두고 래미안 아파트에 살지 않으면 연인을 자랑스럽게 소개시키도 못하냐는 반응이 나왔다. 삼성물산이 래미안의 고급화 이미지를 홍보하는 것을 넘어 사회적 계층과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서울과 지방의 양극화는 물론이고 같은 서울 내에서도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와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 및 노도강(노원, 도봉, 강북)과 금관구(금천, 관악, 구로)라는 약칭이 사회적 용어로 익숙해졌다. 강남 3구 아파트와 마용성 아파트, 노도강 및 금관구 아파트 사이엔 사실상의 계층화가 형성됐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어느 지역의 래미안 아파트 몇 평에 사는지를 묻고 따지고, 가정의 사회경제적 수준은 판가름할 정도로 이제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 단지명은 사회적인 지위가 됐다.


이는 우리나라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기형적으로 높은데 따른 것이다. 2024년 기준 전체 가계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8.6%에 달했다. 미국(13.1%) 등 선진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사실상 가계 대부분의 자산은 깔고앉은 집 한 채가 대부분인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높은 부동산 자산 비중은 현재 주택시장 불안의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가계 자산이 증식하면 '똘똘한 한 채'를 팔고 더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는 것이 우리나라 아파트 거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르고, 그 여파는 서울 한강벨트를 자극해 아파트 시장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강화하고 있다. 2025년 대한민국 아파트는 사는 곳(Live)이라는 개념보다 사는 것(Buy)이라는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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