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원자력, 화력발전소의 모습.
올해 전력시장에서 재생에너지가 '우대 전원' 지위를 내려놓고 원전·화력발전과 본격적인 경쟁에 나선다. 그동안 정산단가와 균등화발전비용(LCOE)을 놓고 탁상공론에 그쳤던 발전원 간 경쟁이 실제 시장 가격을 통해 검증되는 구조로 전환되는 것이다.
다만 전력시장 개편의 성패가 올해부터 시행되는 4차 배출권거래제 기본계획에서 배출권 시장이 정상화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력시장, 연료비 반영에서 가격 경쟁 체제로
3일 전력당국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3월 재생에너지 준중앙급전 제도 도입을 시작으로, 현재 제주 지역에서 운영 중인 재생에너지 입찰제도를 올해 중으로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재생에너지를 우선적으로 구매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 경쟁을 벌이는 시장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기존의 우선구매 방식과 연료비 반영 구조로는 재생에너지 발전량 과잉과 가격 왜곡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 전력시장 개편의 배경으로 꼽힌다.
전력시장 구조가 바뀌면 발전원별 성격 차이는 가격으로 드러난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태양광·풍력 발전이 과잉될 경우 전력도매가격(SMP·계통한계가격)은 하락하고 상황에 따라 마이너스 가격까지 나타날 수 있다. 반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은 출력 조정이 가능한 유연성 전원으로서 전력 수요가 급증해 가격이 오를 때 발전에 나서 추가 수익을 회수할 수 있으나, 대신 발전에 따른 탄소배출 비용은 외부에서 감당해야 한다.
양수발전이나 대용량 배터리 등 에너지저장장치(ESS)도 전력가격이 저렴할 때는 전력을 저장하고 비싸질 때는 전력을 팔 수 있다. 원전은 연료비가 낮지만 출력 조정이 어려운 경직성 전원인 만큼 유연한 입찰 전략을 펼치기 어려워 가격 하락 국면에서는 수익성이 제한될 수 있다. 또한, 폐기물 처리와 같은 외부비용을 감당해야 하는데 발전수익으로 이 비용을 조달해야 한다.
지금처럼 재생에너지, 원전, 석탄, LNG 순으로 전력을 우선 구매하고 전력가격은 LNG 가격을 기준으로 형성되는 연료비반영시장이 일부 가격기반 경쟁시장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이같은 기존 시장 구조에서는 특정 발전원이 혜택을 본다는 '무임승차' 논란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언론과 업계에서는 LCOE와 정산단가를 기준으로 “어떤 에너지원이 더 싸다"는 논쟁을 반복해왔다. 실제 가격 경쟁을 해보지도 않고 승패를 가르려 했던 셈이다. 전력시장 개편은 발전원들을 같은 시장에 올려 실제 가격 경쟁을 붙여보는 첫 시험대가 될 수 있다.
간헐성·탄소배출·경직성 등 각 발전원이 가진 단점을 누가 더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 입찰시장에서 어떤 전원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지가 드러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발전원이 경쟁력을 갖는지 확인할 수 있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과도기적 제도로 도입되는 것이 재생에너지 준중앙급전 제도다. 준중앙급전은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가 하루 전 시간대별 발전계획을 제출하고 전력 수급 상황에 따라 전력거래소가 가동중단(출력제어)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사업자는 발전량 예측 정확도와 출력 제어 이행 여부에 따라 예측정산금과 출력제어 정산금을 받을 수 있어 단순 출력 제어에 따른 손실을 일정 부분 보전받는다. 다만 입찰을 통한 가격 경쟁을 요구하지는 않아 전력시장 전면 경쟁 체제로 가기 전의 완충 장치다.
배출권 정상화 없인 전력시장 공정 경쟁 어려워
문제는 전력시장만 개편될 경우 공정성이 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핵심 변수는 탄소배출권 시장이다.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는 발전·산업 부문에 배출 허용량을 할당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시장에서 배출권을 구매하도록 설계돼 있다.
정부는 제4차 배출권거래제 계획기간(2026~2030년)에 배출권 총할당량을 이전 계획기간 대비 17% 줄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현재 톤당 1만원 수준에 머물고 있는 배출권 가격이 올해 말에는 2만8680원까지 오를 것으로 나무이엔알(NAMU EnR)은 예상했다. 이호현 기후부 2차관도 지난해 12월 17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내년에 배출권 가격이 약 1만9000원에서 2만원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전력시장 경쟁에서 배출권은 화력발전의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역할을 한다. 배출권 가격이 충분히 형성돼야 화력발전은 그 비용을 반영한 상태에서 재생에너지·원전과 경쟁하게 된다. 이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정책 취지에도 부합한다. 특히 발전 부문은 배출권을 정부로부터 돈을 주고 구매하는 유상할당에 대한 비율을 올해 15%에서 2030년 50%까지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반대로 배출권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가격이 낮을 경우 화력발전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경쟁력을 유지하게 되고 재생에너지 측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가 배출권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고 판단해 시장안정화제도를 가동할 경우 재생에너지의 경쟁력에 간접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배출권 가격이 오르면 산업 부담이 커지지만 낮게 묶으면 탄소중립 정책의 힘이 약해진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력시장의 경쟁체제 도입은 가야 할 길"이라며 “다만 배출권의 적정 가격 수준이 어디인지는 아직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배출권 가격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없을 때 비로소 시장에서 온전히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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