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 투쟁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삼성 노사의 사후조정 협상이 결국 결렬됐다. 정부 주재로 '밤샘 대화'를 수차례 나눴음에도 끝까지 의견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노조는 예정대로 오는 21일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양측 모두 추가 대화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지만 핵심 쟁점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막판 '극적 타결'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공은 결국 정부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삼성전자 파업이 국가 경제에 천문학적 손실을 입힐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긴급조정권' 등을 발동할지 여부에 재계 안팎 시선이 쏠린다.
◇ '적자 사업부에 성과급 지급' 마지막 쟁점 탓에 '파행'
20일 재계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사는 이날 오전까지 '마라톤 협상'을 벌였지만 끝내 접점을 찾지 못했다.
대화를 중재한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는 노사의 사후조정이 결렬됐다고 이날 공식 발표했다. 중노위가 제출한 조정안에 사측이 동의하지 않은 탓이다.
노사는 협상 파행의 원인을 서로에게 돌렸다.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는 이날 최승호 위원장 명의의 '사후조정 결과 안내' 공지를 통해 “19일 오후 10시경 노조는 중노위가 제시한 조정안에 동의했으나 사측은 거부 의사를 밝혔다"며 “(3차 회의가 열린) 이날 오전 11시에도 사측은 '의사결정이 되지 않았다'는 입장만 반복할 뿐 끝내 태도를 바꾸지 않았고 결국 사후조정은 종료됐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경영진의 의사결정 지연으로 사후조정 절차가 종료한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 사측이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조정이 종료된 데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예정대로 내일 적법하게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선언했다.
▲삼성전자 사측 대표교섭위원인 여명구 DS 피플팀장이 20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노사협상 결렬에 따른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20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3차 사후조정 회의를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사측은 노조가 도 넘은 요구를 한 탓에 협상이 깨졌다고 받아쳤다.
삼성전자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사후조정에서 막판까지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것은 노조의 과도한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경우 회사 경영의 기본 원칙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며 “노조는 회사가 성과급 규모와 내용 대부분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자 사업부에도 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규모의 보상을 하라는 요구를 굽히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는 '성과 있는 곳에 보상이 있다'는 회사 경영의 기본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며 “이 원칙을 포기할 경우 저희 회사뿐 아니라 다른 기업과 산업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털어놨다.
사측은 “회사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대화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떠한 경우에라도 파업이 있어서는 안된다. 추가 조정 또는 노조와의 직접 대화를 통해 마지막까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노조 역시 “파업 기간 중에도 타결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해 양측 모두 추가 대화에 대한 여지는 남겨뒀다.
박수근 중노위원장은 이날 사후조정 종료를 발표한 뒤 기자들과 만나 “비록 이번 조정이 최종 합의로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노사가 합의해 사후조정을 요청한다면 언제든지 조정을 개시해 노사 교섭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협상) 내용에 대해서도 상당히 접근했다"며 “타결이 돼야 하기 때문에 노사가 신청하면 밤이든 휴일이든 언제든 응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재계에서는 핵심 쟁점이었던 성과급 재원과 제도화 측면에서 양측이 뜻을 모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 대화 내용이 '영업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주장하고 있는 다른 기업 노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추가 대화가 진행된다면 노조가 적자 사업부 성과급 지급을 포기하는 결단을 내려야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내부적으로 위상이 급락한 노조 집행부가 이를 받아들이기는 힘들 전망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디바이스솔루션(DS)과 디바이스경험(DX) 직원들 간 반목이 깊어진 가운데 직원 협박, 노조원 개인정보 무단 수집, 집행부 수당 등 각종 논란에 휩싸여 있다.
◇ '긴급조정권' 발동 여부 주목…파업 시 국가적 타격 불가피
파업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공은 결국 정부가 가져가는 모양새다. 긴급조정권 발동을 비롯해 중재를 위해 강제력을 동원할 법적 수단을 갖추고 있어서다.
긴급조정권은 노동조합법 76조에 근거한 제도다. 노조 쟁의행위가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30일간 파업이 금지되고 중노위가 조정을 진행한다.
청와대는 일단 노사 양측에 추가 대화를 촉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사후 조정이 결렬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마지막까지 노사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긴급조정권을 가진 고용노동부는 아직 신중하게 상황을 살피고 있다. 고용노동부 대변인은 이날 “노사 간 대화의 시간이 남았고 (긴급조정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는 성급한 단계"라는 입장을 내놨다.
정부 관계자들은 일찍부터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해왔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17일 대국민담화에서 “국민 경제 보호를 위해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언급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18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엑스에 “기업만큼 노동도 존중돼야 하고 노동권만큼 기업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며 “현행 헌법상 모든 국민의 기본권은 보장되지만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공복리 등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고 올렸다. 이는 전날 김 총리가 거론한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과거 긴급조정권이 발동된 네 차례 중에 두 번은 노사 합의로 종결됐다. 두 번은 정부가 강제로 중재한 뒤에야 마무리됐다. 마지막 긴급조정권이 발동된 것은 21년 전인 2005년 12월 대한항공 파업 때다.
일각에서는 긴급조정권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과 정면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삼성 로고.
삼성전자 노조는 지난 3월 중노위 조정 결렬로 쟁의행위권을 확보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총파업이 현실화하면 수십조원에서 최대 100조원까지 회사가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제일 큰 문제는 대외 신뢰도 하락이다.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빅테크 등 다양한 고객사들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파업으로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중장기적으로 이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주요 외신들도 삼성전자 노사 협상이 무산됐다는 소식을 긴급히 보도했다. AFP통신은 이날 '한국의 반도체 거인 삼성전자 노조 파업'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번 파업이 심각한 차질과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사태로 4만8000명의 노동자가 직장을 이탈하는 상황이 초래됐다"며 “이는 한국 경제 건전성을 위협하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을 교란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삼성전자는 데이터센터 서버부터 스마트폰·전기차 등 기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활용되는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대 공급업체"라며 “이번 협상 결렬은 전 세계 기술 공급망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는 지난 11일 성명을 내고 “삼성전자 노사 갈등과 파업 가능성이 글로벌 공급망과 산업 안정성, 한국의 장기적인 투자 경쟁력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6단체는 지난 18일 공동 입장문을 통해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은 국가 핵심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노조는 파업 계획을 철회하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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