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폐허였던 작은 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70여년이 걸렸다. 경제 발전 속도가 워낙 빨랐던 만큼 수많은 기업과 산업들이 흥하고 망하기를 반복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미래차 등 분야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고 있지만 짙은 그늘이 드리우고 있는 산업군도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눈앞에 다가온 ‘전기차 시대’를 맞아 이로 인해 생겨난 음지(陰地)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영세 정비소, 중소 부품사, 개인 주유소 등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한 분야들이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車정비소 ‘줄폐업’이 시작됐다
② 중소 부품사 직격탄…"활로가 없다"
③ 정유사 발빠른 움직임…개인 주유소는 ‘무대책’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 자동차 구동계쪽 부품을 생산하는 A사 사장은 최근 깊은 고민에 빠졌다.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회사를 매물로 내놨지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래차 관련 설비 투자를 전혀 못하다보니 시장에서 제 값을 받기도, 자녀에게 회사를 증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 자동차 변속기 관련 부품을 만드는 B사 사장은 최근 몇 년째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익률이 낮아 직원들의 임금을 올려주기 힘들어서다. 당장 주문이 계속 들어오고 있긴 하지만 내연기관차들이 사라지면 사업을 접어야 하는 처지라는 사실을 직원들도 모두 안다.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 국내 중소 부품사들이 구조조정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건전한 생태계를 새롭게 조성하지 못할 경우 한꺼번에 수많은 기업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헐값에 외국자본에 팔려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업계와 한국자동차부품협회 등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부품사는 약 9000개다. 이 곳에서 일하는 인력은 20만~23만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전기차에 필요 없는 파워트레인 관련 회사가 전체의 60%에 달한다는 점은 문제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대비 부품 수가 절반 가량이다. 복잡한 구조를 지닌 엔진, 변속기 등은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
국내에 등록된 자동차는 작년 말 기준 2500만여대다. 이 중 친환경차는 100만여대, 순수전기차는 20만대를 넘겼다. 아직 점유율이 낮지만 정부가 전기차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앞으로 5년 뒤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제조사들도 내연기관차 개발·생산 중단은 속속 선언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올해 안에 전기차·수소전기차 누적 등록대수를 50만대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자동차산업협회는 2025년 전기차 생산량이 전체의 20%에 달하면 고용은 30%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전기차 생산량이 전체의 30%로 늘어나는 2030년에는 38%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매출 500억원 미만 기업의 미래차 전환율은 16% 수준에 불과하다고 협회는 예측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부품 공급사들은 차량이 신모델로 변경만 돼도 이에 맞춰 새로운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며 "이들 입장에서 전기차 시대 전환은 산업구조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중소 부품사들이 결국 활로를 찾지 못한다면 법정관리를 신청하거나 헐값에 외국자본에 팔려나가는 회사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짚었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 전후로 이미 자동차 부품 산업에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는 점이다. 인건비 부담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여파로 영업이익률이 크게 낮아진 여파다. 반도체 수급난을 겪으며 상위 업체 주문물량이 들쭉날쭉해졌다는 악재까지 겹쳤다. 작년 말에는 현대자동차 1차협력사인 진원이 법정관리를 신청해 시장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전환에 발 맞춰 우리 부품산업도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 제조사가 하청을 주는 개념을 넘어 부품사들의 자체 브랜드를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자동차 제조사가 부품사를 하청업체로 부리는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현대차·기아의 순정부품 교체 유도에 경고를 내렸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라고 말했다.
오병성 한국자동차부품협회 회장은 "중소 부품사들에 정부 등이 지원을 해주는 것보다는 이들이 직접 미래차 분야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며 "자동차 부품사가 브랜드를 가진 경우는 타이어 정도에 불과한데 이는 우리나라만의 특징이다. 부품사가 ‘브랜드화’를 통해 다양한 상위 업체들과 협업하고 영업이익률을 확보할 수 있도록 판을 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yes@ekn.kr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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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車정비소 ‘줄폐업’이 시작됐다
② 중소 부품사 직격탄…"활로가 없다"
③ 정유사 발빠른 움직임…개인 주유소는 ‘무대책’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 자동차 구동계쪽 부품을 생산하는 A사 사장은 최근 깊은 고민에 빠졌다.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회사를 매물로 내놨지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래차 관련 설비 투자를 전혀 못하다보니 시장에서 제 값을 받기도, 자녀에게 회사를 증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 자동차 변속기 관련 부품을 만드는 B사 사장은 최근 몇 년째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이익률이 낮아 직원들의 임금을 올려주기 힘들어서다. 당장 주문이 계속 들어오고 있긴 하지만 내연기관차들이 사라지면 사업을 접어야 하는 처지라는 사실을 직원들도 모두 안다.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 국내 중소 부품사들이 구조조정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건전한 생태계를 새롭게 조성하지 못할 경우 한꺼번에 수많은 기업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헐값에 외국자본에 팔려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업계와 한국자동차부품협회 등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부품사는 약 9000개다. 이 곳에서 일하는 인력은 20만~23만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전기차에 필요 없는 파워트레인 관련 회사가 전체의 60%에 달한다는 점은 문제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 대비 부품 수가 절반 가량이다. 복잡한 구조를 지닌 엔진, 변속기 등은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
국내에 등록된 자동차는 작년 말 기준 2500만여대다. 이 중 친환경차는 100만여대, 순수전기차는 20만대를 넘겼다. 아직 점유율이 낮지만 정부가 전기차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앞으로 5년 뒤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제조사들도 내연기관차 개발·생산 중단은 속속 선언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올해 안에 전기차·수소전기차 누적 등록대수를 50만대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자동차산업협회는 2025년 전기차 생산량이 전체의 20%에 달하면 고용은 30%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전기차 생산량이 전체의 30%로 늘어나는 2030년에는 38%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매출 500억원 미만 기업의 미래차 전환율은 16% 수준에 불과하다고 협회는 예측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부품 공급사들은 차량이 신모델로 변경만 돼도 이에 맞춰 새로운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며 "이들 입장에서 전기차 시대 전환은 산업구조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중소 부품사들이 결국 활로를 찾지 못한다면 법정관리를 신청하거나 헐값에 외국자본에 팔려나가는 회사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짚었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 전후로 이미 자동차 부품 산업에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는 점이다. 인건비 부담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여파로 영업이익률이 크게 낮아진 여파다. 반도체 수급난을 겪으며 상위 업체 주문물량이 들쭉날쭉해졌다는 악재까지 겹쳤다. 작년 말에는 현대자동차 1차협력사인 진원이 법정관리를 신청해 시장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전환에 발 맞춰 우리 부품산업도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 제조사가 하청을 주는 개념을 넘어 부품사들의 자체 브랜드를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자동차 제조사가 부품사를 하청업체로 부리는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현대차·기아의 순정부품 교체 유도에 경고를 내렸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라고 말했다.
오병성 한국자동차부품협회 회장은 "중소 부품사들에 정부 등이 지원을 해주는 것보다는 이들이 직접 미래차 분야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며 "자동차 부품사가 브랜드를 가진 경우는 타이어 정도에 불과한데 이는 우리나라만의 특징이다. 부품사가 ‘브랜드화’를 통해 다양한 상위 업체들과 협업하고 영업이익률을 확보할 수 있도록 판을 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