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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
자율주행분야에서 자동차와 함께 기술 개발이 빠르게 진전되는 분야가 선박이다. 이달 초 초대형 LNG운반선인 ‘프리즘 커리지’호가 자율운항 솔루션으로 대양 횡단에 성공했다. 대형선박이 기존 1단계 자율운항 수준을 넘어 2단계 자율운항 시스템으로 대양을 횡단한 것은 세계 최초의 사례다. 며칠 후 서울 강남에서는 국토교통부 장관과 서울시장이 자율주행 택시인 ‘로보라이드’에 1호 손님으로 탑승했다.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 도로에서 주행 제어와 책임이 모두 자율주행 시스템에 있는 4단계 자율주행의 기술이 일부 적용된 것으로 완전 자율주행에 한 발 가까워진 것이다.
현재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인간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동작하는 운송체를 만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조만간 열릴 거대한 시장을 선점하고자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동차산업연합회는 2030년 세계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가 800조 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고,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어큐트 마켓 리포츠(Acute Market Reports)는 2028년 자율운항선박 및 관련 기자재 시장 규모를 295조 원으로 예상한다.
육지에서 수상과 공중에 이르기까지 자율주행 운송체를 개발하고, 상업적으로 운용하는데 사활을 거는 이유는 자율주행 운송체를 통해 안전성과 환경보호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즘 커리지호는 미국 멕시코만 연안에서 출항해 태평양을 횡단, 충남 보령에 입항할 때까지 약 2만km 중 절반 정도를 자율운항했다. 자율운항 중 타 선박과의 충돌 위험을 100여 차례 회피했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5% 감소시키면서도 연료 효율은 7% 높이는 성과를 기록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자율운항선박을 ‘MASS(Maritime Autonomous Surface Ship)’라 명명하고, ‘다양한 수준으로 인간의 개입 없이 독립적으로 운전하는 선박’이라 정의하면서, 선원의 탑승 여부와 외부 제어를 기준으로 자율운항 단계를 4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조선업에서 세계 수위를 다투고, 해운 강국으로도 꼽히는 우리나라는 자율운항선박 개발 및 운용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산업이나 기술 측면과 달리 자율운항선박의 정의나 운항을 위한 근거 법령조차도 법제화되어 있지 않다. 자율주행자동차의 경우 2020년부터 자율주행자동차법이 자율주행자동차 개발 및 운행과 관련한 내용들을 규율하고 있다. 위 법을 중심으로 자동차관리법 및 같은 법 시행규칙에서 자율주행에 요구되는 기능, 장치 및 시험 운행을 위한 요건 등이 점차 세밀하게 규정되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정부의 로드맵에 따라 조속히 선박법, 선박안전법 등 관련 법령에 자율운항선박에 대한 정의, 장치 기준과 운항 요건 등을 입법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자동차처럼 주행 과정에 많은 변수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박이라고 망망대해를 유유자적 운항하는 것은 아니다. 대양을 가로지르는 선박은 안전이나 경제성을 고려해 최적경로를 택해 운항하게 되고, 이런 해로는 생각보다 좁아 선박들이 밀집되어 운항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사고의 가능성도 증가할 수 밖에 없다.
항구에 입출항하는 경우는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전기선박 시승회에서 만난 업체 대표는 자동차보다 선박의 자율운항이 오히려 먼저 실현될 수 있다면서도 선박은 자동차와 달리 브레이크가 없고, 전진과 후진만 가능해 급정지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만큼 정교한 운항 능력과 예기치 못한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완전자율주행을 위한 V2X 방식의 자율협력주행을 도입한 국내 자율주행자동차법처럼 자율운항선박도 자율협력운항시스템을 도입해 다른 선박 및 항만시설과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아 사고를 미리 방지할 필요성이 있다. 자율운항선박은 사고 수습이 어려우므로 최대한 사고를 예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율운항선박들은 이를 통해 향후 사고 발생 시 대응을 위해 군집 운항을 할 수도 있고, 운항 정보를 교환할 수도 있다.
선박은 관할이 다른 국제 운항이 많으므로 자율운항 관련 국제표준을 확립하는데 협력하고, 이에 부합하는 국내법을 신속히 제정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현재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조선업과 해운업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재도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