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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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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세력의 진화] 카지노에서 자동차까지 '개미지옥'… '작전 대부' 이모 씨 히스토리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7.03 14:34

<상> 2012년에 시장에 등장한 '설계자'



무자본 M&A 활용해 코스닥~K-OTC까지 종횡무진



타 세력과 결탁해 반목·협력 거듭…피해는 개미 몫



영향력 끼치는 상장사 여전히 남아있어…재발 방지 난항


‘쌍용자동차 인수’라는 재료로 당시 인수 주체로 나섰던 에디슨모터스의 주가를 조작해 막대한 차익을 남긴 일당들이 구속 기소됐다. 쌍용차 인수전은 전 국민의 관심 속에서 치러졌고 그 과정에서 불공정거래를 통해 한몫 챙기려 한 일당들이 수면위로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이 일당들의 ‘작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10여년 전부터 주식시장을 배경으로 주가조작과 무자본M&A를 통해 수많은 개미를 울려온 세력이다. 에너지경제는 이번에 구속된 일당 중 전체적인 작전의 그림을 그려온 것으로 알려진 ‘이 씨’에 대해 집중 해부해봤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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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업체 에디슨모터스 관계사의 주가 조작에 관여한 이모씨가 구속전피의자심문을 받기위해 6월 19일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강현창 기자] 쌍용자동차 인수에 나섰던 에디슨모터스 주가조작을 통해 부당이득을 챙기려 한 배후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쌍용차는 새 주인을 만났고 주가조작에 나섰던 일당은 최근 무더기로 구속됐다.

이를 지켜본 금융투자업계는 드디어 주식시장에서 유명한 ‘작전꾼’의 꼬리가 잡혔다는 반응이다. 작전을 전반적으로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이 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수년간의 취재 결과 ‘이 씨’는 10여년 전부터 주식시장에서 수많은 기업을 상장폐지로 몰아넣으며 부당한 이득을 챙기던 인물로 파악된다.


◇ 에디슨EV 주가조작 혐의로 ‘이 씨’ 세력 구속

지난 6월 19일 ‘쌍용차 인수’를 내세워 주가조작을 벌인 일당 4명이 구속됐다. 인수합병 전문가로 알려진 ‘이 씨’도 이 중 한 명이다.

법조계와 금융투자업계 등 취재를 종합하면 ‘이 씨’ 등이 포함된 일당은 정황상 강영권 전 에디슨모터스 회장과 결탁해 지난 2021년 5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쌍용자동차 인수 추진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호재성 정보를 공시해 에디슨모터스의 관계사인 에디슨EV(현 스마트솔루션즈)의 주가를 띄우고 총 1621억원의 시세차익을 챙겼다.

당시 1주당 1000원대이던 에디슨EV의 주가는 반년 만에 8만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이는 모두 거품이었다. 그 해말 에디슨EV은 회계감사를 통해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초과했고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이 발행해 회사가 계속기업으로서 존속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감사의견 거절에 따라 에디슨EV는 거래가 정지됐다. 정지된 주가는 1만1600원이었다. 8만원대의 고점에 진입한 투자자라면 -90% 가까운 손실을 기록한 셈이다. 이마저도 상폐가 확정된다면 한푼도 건질 수 없다.


◇ 회계사 출신 ‘이 씨’, 2012년부터 작전 세력화


회계사 출신 ‘이 씨’는 에디슨모터스 사건으로 세간에 주목을 받았지만, 이 인물이 주식시장에 등장한 것은 훨씬 오래전부터였다. 그는 지난 2007년 설립한 한 회계법인의 멤버로 금투업계에 첫 얼굴을 알렸다.

이 회계법인은 출범 당시에는 감사 및 회계자문,세무,기업금융,내부회계 관리 구축에 나선다고 했지만 곧바로 회사 구성원 상당수가 세력화됐다. 그 전면에 선 것이 바로 ‘이 씨’다.

지난 2012년에는 셋톱박스를 만드는 현대디지탈테크라는 회사가 투자자 서 모 씨에게 인수된다. 서 씨는 사명을 제이비어뮤즈먼트로 바꾸고 자회사인 카지노 업체 AK벨루가를 흡수합병한 뒤 다시 사명을 마제스타로 바꾼다. 이 마제스타에 서 씨와 함께 ‘이 씨’가 공동대표로 취임한다. 이후 이들은 무자본M&A 과정을 거쳐 건설플랜트업체 창해엔지니어링을 인수해 사명을 엠제이비(현 큐페이)로 바꾼다.

본격적인 ‘작전’이 벌어지는 대목이다. 이후 이들은 엠제이비의 자산 중 240여억원을 싱가포르에 위치한 한 법인에 곡물거래보증금이라는 명목으로 넘긴다.

이 당시의 세력이 벌인 무자본M&A와 자산빼돌리기는 지난 2018년 윤곽이 드러났다. 싱가포르의 법인은 실제로는 한국에 위치한 또 다른 법인이 대주주로 있던 곳인데, 별도의 주가조작 세력으로 알려진 윤 씨가 그 배후에 있었다. ‘이 씨’와 윤 씨가 서로의 이익을 위해 결탁했던 것이지만 결국 이 딜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향후 윤 씨가 ‘이 씨’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 무자본M&A로 세력 확장…회사 자산도 챙겨


이후 ‘이 씨’는 마제스타를 세미콘라이트(현 에스엘에너지)와 제이스테판(현 에이루트)이라는 곳에 매각하는 딜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 딜은 전형적인 무자본M&A로 진행됐다.

먼저 마제스타 인수를 위해 세미콘라이트는 2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이는 마제스타가 200억원을 투자한 사모펀드가 인수했다.

제이스테판은 자회사 엠제이아이를 통해 마제스타와 카지노 임대차계약을 맺게 한다. 계약 보증금은 200억원이다.

결국 두 회사가 마제스타를 인수한 자금은 마제스타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세미콘라이트와 제이스테판은 서 씨(지분율 6.51%)에게 경영권 인수 댓가로 215억원을 넘겨준다. 6% 남짓의 지분이 없어도 이미 지분을 25% 넘게 확보했지만 경영권 프리미엄이라며 200억원이 넘는 회사 돈을 끌어 쓴 것이다.

마제스타 입장에서는 자신의 돈을 두 회사에 회전시켜 지분을 넘긴 뒤 두 회사로부터 215억원을 더 챙긴 셈이다.


◇ 다른 세력과 합종연횡…연이은 상폐위기


마제스타와 세미콘라이트, 제이스테판의 삼각 M&A에 참여한 다른 인물이 있다. 바로 중국인 우 씨다. 우 씨는 ‘이 씨’, 서 씨 등과 함께 이번에는 감마누라는 다른 상장사의 인수에 나선다.

이 딜도 무자본M&A로 진행된다. 우 씨가 주도하는 딜을 ‘이 씨’가 도와주는 그림이었다. 우 씨는 인수주체인 NHT컨소시엄을 통해 총 170여억원을 들여 감마누를 인수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자금은 곧바로 회수된다. 바로 감마누가 우 씨의 개인회사인 여행사 5곳에 자금대여라는 명목으로 투자해주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일정 부분 자금을 지원한 이가 바로 ‘이 씨’이다.

당시 이 여행사들은 중국인을 국내에 들이는 ‘인바운드 영업’을 통해 큰돈을 벌고 있다고 보도자료를 대대적으로 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는 사드 사태로 중국인의 한국행이 어려웠던 시기다.

2017회계연도 기준 감마누를 감사한 회계법인은 해당 여행사들과 회사가 거래한 내용에 대한 감사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며 의견거절을 낸다. 결국 감마누는 상폐위기에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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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TC까지 활용한 작전… 설계자는 ‘이 씨’


공을 들인 감마누가 상폐위기에 몰리자 이 세력은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선다. 그 타깃은 코스닥에 상장된 자동차 카매트업체 디아크의 자회사 제이테크놀로지다.

마제스타와 감마누 두 종목 모두 상폐위기에 몰리자 세력은 제이테크놀로지를 인수하고 마제스타의 카지노사업을 물적분할해 합병하는 방식으로 우회상장을 진행한다.

이후 ‘이 씨’ 세력은 두올산업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자동차 매트를 만들던 회사가 갑자기 바이오사업에 진출을 선언한 것도 이 시기이다. 두올산업은 캐나다의 한 제약업체에서 난소암 치료제 ‘오레고보맙’의 권리를 인수했다며 주가부양에 나선다.

하지만 이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이들은 암치료제의 가치를 크게 부풀려 주가부양에 나서려 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인수가격이 무려 3000억원대에 달했기 때문이다. 결국 딜의 적법성을 평가하던 회계법인이 가치산정에 의문을 제기하며 최종 보고서를 내주지 않았다.

이에 회계사 출신 ‘이 씨’는 자신과 친한 다른 회계사를 동원해 새롭게 보고서를 만든다. 이 회계사는 이번에 구속된 박 씨다.

이후 ‘이 씨’ 일당은 항암제 임상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언론 인터뷰를 하는 등 디아크의 주가를 띄워 190억원 규모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과정에서 디아크가 코스닥 시장 퇴출 위기에 몰리자 K-OTC에 등록된 두올물산(현 카나리아바이오엠)이라는 회사를 통해 회생을 시도한다.

거래 정지 중인 코스닥 상장사가 아예 K-OTC에 ‘이사’하는 초유의 상황을 겪은 뒤 결국 주주들은 또 버려진다. ‘이 씨 세력’은 항암제에 대한 권리를 이번에는 코스닥 상장사 현대사료에 넘겨준다. 이후 현대사료는 지난해 사명을 아예 카나리아바이오로 바꾼다.


◇ 구속됐지만 끝나지 않은 작전…"시장의 시한폭탄"


이 세력들이 지나온 작전의 역사를 돌아보면 사실상 쌍용자동차와 에디슨모터스는 주요 등장 배경이 아니다.

‘이 씨’ 일당은 디아크를 통해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의 인수를 시도한 적이 있는데 이때 함께한 민법상 조합들을 통해 에디슨모터스와 연이 닿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씨’ 일당은 구속 중이지만 아직 재판을 통해 유죄판결이 난 상황은 아니다. 이 들이 거치거나 여전히 손을 대고 있는 회사는 언급된 곳 외에도 R, A, H, S 등 여러 개의 코스닥 업체가 있다.

이에 대해 금융투자업계는 우려를 거둘 수 없다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세력이 침투해 경영에 참여하는 회사는 시장의 시한폭탄 같은 존재가 된다"며 "사명을 자주 바꾸거나 기존 분야와 전혀 다른 신사업의 진출, 유상증자나 대주주 지분 통매각 등으로 경영권이 바뀌는 경우 등이 있으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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