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업체 에디슨모터스 관계사의 주가 조작에 관여한 이모씨 등 4명이 구속전피의자심문을 받기위해 19일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에너지경제신문 강현창 기자]10여 년간 국내 주식시장에서 ‘작전’을 펼친 혐의로 구속된 전직 회계사 출신 ‘이 씨’가 관계사의 주요 거래에 필요한 자산평가 업무를 특정 회계사에 몰아준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해당 회계사 ‘박 씨’는 이번에 ‘이 씨’에게 뒷돈을 받고 카나리아바이오그룹의 주요 모멘텀인 난소암 치료제 ‘오레고보맙’에 대한 허위 가치평가를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상태다. ‘이 씨’는 G회계법인의 창립멤버며, 박 회계사는 G회계법인 소속으로 근무 중이다.
이 씨와 박 회계사의 관계가 재조명되면서 둘 사이의 불법 유착이 이번만이 아닐 것이라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공시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이 씨’와 박 회계사의 관계는 각별한 것으로 파악된다.
◇ ‘박 회계사’가 내놓은 보고서 6개 중 5개가 ‘이 씨’를 위한 것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각종 M&A와 사업양수도 등에서 박 회계사가 작성한 ‘외부평가기관의평가의견서’는 총 6개다. 그중 5개가 작전대부 ‘이 씨’와 관련된 마제스타(현 글로앤웰), 제이스테판(현 에이루트), 두올산업(현 디아크)과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다.
먼저 지난 2019년 4월 마제스타가 제이테크놀로지의 주식을 양수하면서 진행한 평가의견서다.
당시 마제스타는 지속적인 카지노 매출 감소와 연속 영업손실 발생 등에 따른 계속기업에 대한 불확실성, 전 대표이사의 횡령과 회계기준 위반 등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몰려있던 상태였다.
가장 시급한 일은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카지노 사업이었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 카지노 사업을 떼내면 주력사업이 없어지는 터라 상장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이에 마제스타는 반도체 유통회사 제이테크놀로지를 인수해 합병하고 카지노사업은 물적분할을 통해 매각해 상장을 유지하려는 그림을 그린다.
이에 비상장사였던 제이테크놀로지는 먼저 두올산업에 220억원에 인수된 뒤 4일만에 다시 마제스타에 225억원을 받고 팔린다. 이후 마제스타는 사명을 아예 제이테크놀로지로 바꾼다.
이 과정은 모두 ‘이 씨’의 그림이다. 당시 ‘이 씨’는 마제스타의 대표였으며 두올산업에는 감사로 재직 중이었다.
그리고 제이테크놀로지의 기업가치를 산정한 인물이 바로 G회계법인의 박 회계사다. 박 회계사는 순자산 규모 186억원의 회사를 225억원에 사도록 평가의견서를 작성해준다.
하지만 마제스타(당시 제이테크놀로지)는 결국 그해 12월 상폐를 피하지 못했다. 이후 회사 측은 반도체 사업부를 메모닉스라는 신생업체에 재매각한다. 메모닉스는 제이테크놀로지가 마제스타에 팔리기 전 최대주주 소유의 다른 법인이다. 결과적으로 마제스타는 제이테크놀로지의 반도체 사업을 빌려 상장 유지를 꾀했지만 실패했했다.
◇ 제이스테판-우진기전 M&A…박 회계사 보고서가 결정적 영향
이어 박 회계사는 2019년 6월 제이스테판이 공시한 지오닉스 주식 양수 관련 평가의견서에도 이름이 등장한다.
이 딜도 앞서 마제스타와 판박이다. 당시에 ‘이 씨’가 대표로 재직했던 제이스테판은 지오닉스를 인수해 무정전 전원 공급장치(UPS) 솔루션 사업을 영위함으로서 관리종목 지정우려를 탈피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몸값 부풀리기 논란이 있었다. 지오닉스가 관계사를 이용해 매출을 키운 뒤 높은 가치를 평가받았다는 의혹이다.
제이스테판은 지오닉스의 지분 99.15%를 총 110억원에 양수한다. 지오닉스는 2016년까지 우진기전의 종속회사였다가 매각됐다.
지오닉스는 2017년까지 연매출 100억원 안팎에서 움직이다가 2018년에는 199억원으로 급증한다. 2018년 실적을 토대로 박 회계사는 지오닉스의 지분가치를 110억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당시 지오닉스 매출 급증은 특수관계자인 우진기전과의 거래 덕분이었다. 2018년 우진기전이 지오닉스에 외주가공비와 용역 제공 등의 명목으로 102억원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오닉스의 2018년 매출액 대비 51% 이상이 우진기전에서 나왔다. 그전에는 우진기전 관련 매출 규모는 30%를 넘지 않았다.
게다가 2016년 우진기전이 지오닉스를 매각할 당시 지오닉스의 지분 19.8%의 장부금액은 7억원에 불과했다. 지오닉스의 전체 가치를 35억원 정도로 본 것이다.
이에 당시 시장에서는 박 회계사가 평가한 지오닉스의 기업가치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 결국 ‘오레고보맙’ 허위 보고서에 꼬리잡혀…"주가조작 일인자가 된 비결"
이어 박 회계사는 2019년 9월에 제이테크놀로지의 마제스타 주식 양도가액에 대한 평가와 2019년 10월에는 지오닉스의 회사채 양수가액(양수인 제이스테판)의 적정성에 대한 평가, 그리고 2020년 4월에는 두올산업의 난소암 치료에 오레고보맙의 양도가액 적정성에 대한 평가를 도맡는다. 모두 ‘이 씨’가 깊숙하게 관여한 기업들이다.
특히 오레고보맙에 대한 평가는 이번 검찰이 회계사법 위반으로 지적한 부분이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박 회계사는 이 씨에게 부정한 청탁을 받고 오레고보맙에 대한 가치를 허위로 작성해주고 용역대금 명목으로 5500만원을 받아 챙겼다.
특히 이번에는 박 씨와 함께 G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정 회계사도 함께 기소됐다. 정 회계사는 G회계법인의 심리실장으로 2010년부터 근무 중이다. 심리실장은 회계법인이 내놓는 보고서를 모니터링하는 자리다. 작전 설계자 ‘이 씨’는 이번에 오레고보맙에 대한 가치평가보고서를 박 회계사에게 청탁하면서 정 회계사에게도 금품을 건넸다.
한편 ‘이 씨’가 그동안 ‘주가조작 일인자’로 시장에서 통하는 것은 이처럼 특정 회계법인과 회계사의 협조가 있던 덕분이라는 게 금융투자업계의 분석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아무리 시장에서 각종 가치 산정에 의문을 품더라도 현직 회계사의 보고서가 가진 권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며 "회계법인과의 오랜 유착 덕분에 ‘이 씨’가 작전세력에서 실력자로 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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