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아바이오 ci |
[에너지경제신문 강현창 기자] 쌍용자동차를 인수하겠다며 상장사의 주가를 조작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된 회계사 출신 이 씨와 관련해 투자자들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까지 이 씨가 꾸려온 작전세력은 사실 쌍용차가 아니라 바이오 사업을 ‘펄’로 삼고 있었다. 이 씨의 발목을 잡게 된 쌍용차 인수전 참여는 사실 돌발적으로 진행된 ‘과외활동’이었다. 지난 수년간 이 씨가 공들이던 곳은 오레고보맙이라는 신약을 중심으로 한 카나리아바이오그룹이다.
이 씨의 구속 이후에도 카나리아바이오 관계사의 투자자들은 ‘약은 진짜’라고 믿으며 투자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유의할 점이 많다고 경고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약물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거래소 "바이오 임상 정보 빠짐 없이 공시하라"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2월부터 한국거래소는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제약·바이오 업종 기업에 대해 적용되는 포괄공시 제도에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 포괄공시는 열거된 항목에만 공시의무가 있다는 ‘열거주의’의 반대되는 개념이다. 회사가 스스로 판단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이 있다면 이를 공시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는 것이 포괄주의다.
제약·바이오 업체에서 발생한 어떤 정보가 영업과 생산활동, 재무구조 또는 기업 경영활동 등과 관련성이 있고 주가나 투자자의 투자판단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기존에 열거된 공시의무가 없는 내용이더라도 공시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는 제약 바이오 업체의 임상시험의 성공확률이 매우 낮지만, 시장에서는 높은 기대치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향후 임상이 실패할 경우 투자자 손실이 발생하고 시장 신뢰성도 침해된다는 게 거래소의 우려다.
이미 임상과 관련된 정보는 포괄주의가 채택됐지만 그 방법과 의무가 확실하지 않았다. 실제 임상관련 공시를 하는 코스닥 업체는 찾기 힘들었다.
이에 거래소는 제약·바이오 기업에서 △임상시험 △품목허가 △기술도입·이전계약 △국책과제 선정 등의 이유가 있다면 중요정보를 빠짐 없이 공시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거래소의 가이드라인이 적용된 지난 2월 7일 이후 33곳의 상장사에서 58건의 임상 관련 공시가 코스닥에서 쏟아졌다. 레고켐바이오가 4건의 임상관련 ‘투자판단관련주요경영사항’공시를 냈으며 셀리드와 네오이뮨텍, 지놈앰컴퍼니 등이 3건씩 관련 공시를 냈다.
◇카나리아바이오, 오레고보맙 임상 정보 공시 ‘0’
문제는 바이오사업을 중심으로 집단을 형성한 카나리아바이오그룹은 관련 공시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카나리아바이오는 자율공시가 아니라 그동안 정기보고서나 보도자료 등을 통해서 난소암 치료제 오레고보맙에 대한 임상 상황을 언급한 적은 있다.
카나리아바이오의 최근 정기보고서 등에 따르면 오레고보맙은 전세계 17개국 602명의 난소암 신규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 3월말 기준으로 미국과 캐나다, 대만, 유럽, 남미 국가 등 179개 임상사이트 및 병원에서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게 카나리아바이오 측의 설명이다.
또 언론 기사를 통해 관련 내용을 알린 적도 있다. 나한익 카나리아바이오 대표는 지금까지 10차례가 넘는 언론사 인터뷰를 진행하며 오레고보맙에 대한 임상 과정을 밝혔다. 관련 내용을 보도자료로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정보는 위반 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공시를 통해서는 알린 적이 없다.
이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과거 HLB의 허위공시 논란 사례를 예로 들며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21년 HLB는 리보세라닙의 임상 3상이 실패했지만 이를 성공이라고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는 의혹으로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의 조사를 받은 바 있다. 해당 사안은 검찰통보로 이어진 뒤 ‘혐의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 이슈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HLB의 주가가 급등락해 개인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검찰도 이미 허위라고 인정…"구색만 맞추고 투자자 기망해"
과거 HLB의 경우 검찰의 혐의없음 통보가 나왔지만 이번 카나리아바이오의 오레고보맙 관련 문제는 이미 검찰이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
주가조작을 설계한 이 씨를 기소한 검찰은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이 문제를 지적했다.
자료에 따르면 "이 씨는 본건 범행 구조 설계자로서, 주로 경영상황이 좋지 않아 시총이 작고 싸게 나온 상장사를 ‘쉘(Shell)’로 삼아 전주(錢主)를 모집해 무자본 인수하고, 본업과 관련성이 전혀 없더라도 주가부양에 유리한 핫 아이템을 무작위로 붙여 대규모 시세차익 취득(Exit)을 도모했다"고 밝혔다.
이어 "바이오사업은 선량한 일반투자자들을 기망하기 위해 외적으로 구색만 맞출 뿐, 실제로 지속적인 바이오사업을 위한 인적·물적 인프라 등 능력과 의사는 전무했다"며 "현재 상태는 외부감사인 의견거절과 감독기관 조사 등 이후 대응용 보완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수사결과대로라면 카나리아바이오그룹은 오레고보맙에 대한 내용을 공시하기가 어렵다. 만약 회사 측의 보도자료와 인터뷰 내용대로 정식 공시를 할 경우 향후 관련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면 책임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카나리아바이오그룹은 이미 10년 전부터 오레고보맙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 가치는 크지 않았다"며 "최근 이 씨 일당이 회사를 장악한 뒤 갑자기 관련 자산을 수천억원대로 부풀리며 주가조작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검찰이 수사를 통해 실체가 없다고 명시한 바이오 사업에 아직도 기대감을 가지는 투자자들이 많아 안타깝다"며 "향후 회계감사 등을 통해 관련 사업에 대한 재평가로 회사의 자산 규모가 지금보다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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