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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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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배출권 대란 초읽기②]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韓 에너지믹스 신중해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10.12 08:40

에너지 공급망 위기 지속에 유럽도 기후 대책 일보 후퇴



전문가들 "중동전쟁 확대 시 ‘오일쇼크, 천연가스 쇼크’ 발생가능성 배제 못해"



국제 LNG가격 폭등세, 석탄은 비교적 안정



"자원빈국 한국, '묻지마 탈석탄'은 경제에 직격탄"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가 발발하면서 에너지업계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특정 에너지원에 집착하기 보다 거시적 차원의 에너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관련 정책을 선도한 유럽에서도 일부 후퇴하는 분위기다.

영국은 내연 자동차 퇴출을 5년 연기했고 프랑스는 원전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으며 호주도 석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독일은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상당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른 나라가 기후 대책 위주의 에너지 정책을 추진했고, 우리도 동참했다고 해서 상황이 변했음에도 에너지 자원이 전무하다시피 한 우리나라까지 무작정 따라가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 하마스-이스라엘 전쟁까지 발발했다.

에너지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제5차 중동전쟁으로 번진다면 석유 수급에 차질을 빚는 ‘오일 쇼크’는 말할 것도 없고, 액화천연가스(LNG) 수입량 전체의 60% 가량을 중동에서 수입하는 우리나라에 ‘천연가스 쇼크’로 번져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또 한 번 큰 충격이 올 수 있는 만큼 무리한 단일BM 정책 도입 등 섣부른 석탄발전 폐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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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현지 시각)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이미 전쟁 발발 이후 국제유가와 금값 등이 출렁이고 있다. 향후 산유국 개입에 따라 석유 수급·운송은 물론 물가·무역수지·환율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에너지 정책은 큰 차원에서는 기후, 탄소배출 문제를 넘어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흔히 전쟁은 동맹이 있지만 경제에 있어서는 동맹이라는 게 없다고들 한다. 실제 전 세계가 보호무역주의 등 각자도생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유럽, 미국에 끌려다니기 보다 우리의 입장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 이미 세계 경제 순위도 14위로 밀린 상황이다. 에너지 정책은 큰 틀의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자족할 수 있는 저렴한 에너지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석탄발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무작정 내몰기 보다 서서히 시간을 두고 우리의 에너지 사정을 봐가면서 조정을 해도 문제 될 게 없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에너지안보’에 대해 ‘에너지 자원을 합리적 가격으로 적정하게 공급할 수 있는 정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저렴한 가격으로 에너지원의 중단 없는 가용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0일 국정감사에서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각종 보조 정책이 한전이 200조가 넘는 빚을 지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김동철 한전 사장이 제시한 킬로와트시(kWh)당 25원 이상 전기요금 인상안에 대해서는 "그런 정도의 인상률은 국민 경제가 감당해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도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기로 했다"며 "첨단산업 등 여러 국내외 여건을 고려한 원전과 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전원을 균형 있게 활용하는 에너지 믹스를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에너지업계에서는 방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이 타당하면서도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지적한다.

방 장관이 강조한 무탄소 에너지는 단기간의 확충이 어렵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흐름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우리나라의 사정을 고려한 다양한 에너지원 활용의 문을 열어놔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현 글로벌 기후 정책의 모태가 된 ‘파리 협정’은 유럽 지역에서 설정한 의제다. 다만 또 다른 강대국들인 미국과 중국에서는 온전히 동의를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도 기후·에너지 정책은 우리의 자족, 에너지 수급 실정을 봐가면서 조정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에너지 정책을 세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정부에서는 ‘세계적인 추세’라는 이유로 이에 동승하는 에너지 정책을 세우고 2030 NDC, 2050 탄소중립을 법제화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이를 주도한 유럽 국가들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책을 바꾸고 있다.


◇ "탄소 저감 주도한 유럽도 일보 후퇴…韓도 경제여건 고려해 정책 유연성 확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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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지난달 내연기관 자동차 신차 판매 금지 시기를 2035년으로 5년 늦춘다고 발표하고 있다. 단상에는 ‘밝은 미래를 위한 장기적 결정(LONG-TERM DECISIONS FOR A BRIGHTER FUTURE)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연합뉴스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는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어 휘발유와 경유를 쓰는 신차 판매 금지 시기를 2030년에서 2035년으로 늦춘다고 발표했다. 그는 ‘2035년 판매 금지’는 유럽연합(EU)과 같은 일정이라며 기존의 기후 변화 대응 목표는 가계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수낵 총리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한다는 기존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며 ‘좀더 실용적이고 균형 있으며 현실적인 접근법’을 취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시기 연기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한 사안이다.

유럽연합은 지난 3월말 내연기관 자동차를 2035년부터 퇴출시키기로 확정하면서, 전기 기반 합성연료를 쓸 경우 2035년 이후에도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허용하기로 했다.

또, 미국 연방 정부는 지난 4월 중순 자동차의 오염물질 배출 기준을 강화해 2032년까지 전기차 판매 비중을 전체 승용차의 67%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수낵 총리는 2035년부터 가정용 가스 보일러 새 제품 판매를 금지하려던 계획도 완화하기로 했다.

새 정책에 따르면, 집 주인들은 기존 가스 보일러를 교체할 시기가 도래하면 전기 열펌프로 바꿔야 한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보일러 교체 지원금은 7500파운드(약 1240만원)로 기존보다 2배 늘지만, 상당수의 주택은 의무 교체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집 주인들에게 부과되는 에너지 효율 목표치도 사라진다.

수낵 총리가 이렇게 나선 배경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영국의 에너지위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22년 여름 영국 발전원의 40%를 차지하는 풍력발전량이 급격히 줄어들자 지난해 8월 영국의 식료품 가격 지수는 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에너지 위기 이후 영국의 천연가스 가격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탄소 가격은 물론 전력 가격까지 최고치를 기록하게 됐다. 실제 1인 가구의 연간 전기요금이 300만원을 넘는 등 폭등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가격이 얼마나 더 올라갈지, 바람이 불고 날씨가 따뜻하면 얼마나 더 급락할지 전혀 알 수가 없는 변동성은 기후대응 정책을 주도하던 유럽의 지도자들이 방침을 바꾸게 만들었다.


◇ "탄소 가격 급등시키는 현 에너지정책, 산업 전반 위기로 번질 것"


이처럼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높은 천연가스 가격은 이를 원료와 연료로 사용하는 모든 산업에 어려움을 줬다.

이미 높은 가스 가격으로 가동을 중단했던 비료공장의 재가동을 위해 영국은 재정지원을 하기로 했는데 영국 환경부 장관은 이 조치에 수백만 파운드의 비용이 들 것이며 음식 및 음료 제조업체들이 이산화탄소 가격을 5배 더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 유럽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2021년 이후 2020년의 4배가 넘는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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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탄소배출권 가격 추이. 에너지위기가 본격화된 2021년 하반기부터 가파르게 상승해 수년째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출처=TRADING ECONOMICS


스웨덴도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해 2019년 자국의 마지막 석탄과 가스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목적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부담금을 3배 올리기로 한 뒤 전력 공급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이 부담금은 2018년에 비해 4배 이상 오른 탄소배출권보다 비싸 스웨덴 전력기업들이 수익 악화로 전력생산을 감축하거나 중단하게 만드는 효과를 초래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부존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수급을 보장하는 석탄 발전에 배출권 부담을 강화할 경우 전력수급 안정성 저하는 물론 산업과 경제 전반에 도미노 효과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최승신 C2S 컨설팅 대표는 "유럽은 2021년부터 시작된 에너지위기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자 대안으로 석탄을 구하기 시작했다"며 "원래 석탄발전은 탄소배출 비용이 추가돼 유럽에서 가스발전보다 더 비싼 전력생산원이었지만 에너지 위기 이후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석탄발전이 탄소세를 지불하고 나서도 천연가스보다 저렴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전력비용 급등을 막기 위해 유럽은 석탄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탄소배출 저감과 친환경을 위해 재생에너지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위기가 발생하자 원전 뿐만 아니라 ‘가장 더러운 연료’라며 폄하했던 석탄발전까지 슬며시 가져다 쓰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탄소배출권 가격 상승은 에너지 위기가 식량난, 경제난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비료의 부산물로 생성되는 이산화탄소는 가축도축과 신선고기·농산물의 포장, 온실채소 성장 촉진, 탄산음료와 맥주, 제품 냉각과 드라이아이스에 사용되기 때문에 식품 밸류체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한전 적자에도 요금인상을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당분간 석탄발전을 줄이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석탄발전에 배출권 부담을 가중 시키면 탄소 다 배출 제조업인 철강, 반도체, 조선 등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기업들은 생산성과 수출경쟁력 저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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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천연가스 가격 추이.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가 발생한 지난 주말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출처=TRADING ECONOM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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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석탄 가격 추이. 천연가스에 비해 안정적인 가격 추이를 보이고 있다. 출처=TRADING ECONOMICS



◇ "유럽도 후퇴…세계 유일 탄소배출 저감 법제화·단일BM 재검토해야"


일각에서는 우리나라도 2030 NDC와 2050탄소중립 정책 등 기후위주의 에너지 정책이 국가장기재정, 경제성장, 연금이슈 등을 동시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역량이 되지 못할 경우 지금과 같은 법제화가 아닌 로드맵이나 아웃룩 형식으로 법적 위상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배출권 정책도 마찬가지다.

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2030 NDC와 2050탄소중립를 법제화 한 나라나 단일BM을 도입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미국은 예산이 계산되지 않으면 함부로 법제화 하지 않는다. 우리는 목표부터 던지고 재원을 마련하려하니 점점 더 어려운 상황이 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전력수급기본계획이나 장기천연가스수급계획 등 국가 차원의 에너지계획이 다 영향을 받아 비현실적 계획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2021년에 만든 2030NDC가 왜 중장기 계획인지 모르겠다. 송전망도 표준공기가 7∼8년, 발전소도 10년 가까이 걸린다. 현실성이 너무나도 중요한 계획인데 이를 주도하는 당국이 너무나 가볍게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최근에는 석탄을 더 조기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30년 된 발전소의 폐쇄도 세계적으로 볼 때는 ‘초초 조기폐쇄’다. 전력수급과 산업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배출권 BM이슈도 마찬가지다. 지금과 같은 에너지 안보 위기 상황에서는 전력시장에 지장이 갈 수 있는 정책은 잠시 연기하거나 원전 재검토 할 필요가 있다"며 "에너지 수입국인 우리나라는 에너지포트폴리오 다각화가 필수적이다. 이미 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른 제주도 전력공급 과잉과 출력제어가 심화되고 있다. 2050 탄소중립 에너지 믹스 상 다변화와 함께 석탄, 석유 자원과 CCUS 활용, 장기비축 가능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지금과 같은 2050 탄소중립은 영원히 저성장, 저자본의 덧에 갇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성장자본을 확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환경적 목표의 동시 달성, 기후위기에 대비한 기후적응 투자 역량 제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인구절벽, 재정절벽, 연금절벽을 넘어설 수 있는 비전 제시를 통해 에너지안보, 국가안보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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