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HDC의 다음 50년 ③] 발전소 하나가 건설사를 앞질렀다

지난해 HDC그룹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계열사가 주력 건설사보다 더 많은 영업이익을 냈다. LNG 복합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통영에코파워는 2025년 별도기준 매출 8026억원, 영업이익 2631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그룹 주력사인 IPARK현대산업개발(옛 HDC현대산업개발)의 별도기준 매출은 4조893억원, 영업이익은 2460억원이었다. 통영에코파워의 매출은 건설사의 5분의 1에도 못 미쳤지만 영업이익은 171억원 더 많았다. 영업이익률로 환산하면 통영에코파워가 32.8%, IPARK현대산업개발이 6.0%다.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통영에코파워는 HDC가 지분 60.5%를 보유해 연결대상에 포함되지만 지배주주에게 귀속되는 순이익은 지분율과 비지배지분을 따져봐야 한다. 발전업과 건설업의 원가 및 매출 인식 구조도 다르다. 그럼에도 두 회사의 손익 역전은 정몽규 HDC 회장이 수년간 강조한 '건설 중심 탈피'가 구호를 넘어 재무제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통영에코파워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IPARK현대산업개발 연결 영업이익 2486억원과 비교해도 더 많다. ◇ 'HDC' 떼어낸 건설사…신사업에는 유지 HDC그룹은 지난 3월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에서 창립 50주년 기념식을 열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라이프(LIFE)·AI·에너지(ENERGY) 등 3대 부문으로 재편한다고 밝혔다. 새 슬로건은 '투 더 그레이터 밸류(To the Greater Value)', 새 CI 심볼은 '그레이트 컨티뉴엄(Great Continuum)'이다. 기존 사업을 업종별로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사업이 창출하는 가치와 상호 연계 가능성을 중심으로 그룹 구조를 다시 정립한다는 취지다. 주목할 부분은 사명 변경 방식이다. 건설·유통·레저·문화를 아우르는 라이프 부문 계열사는 기존 사명에서 'HDC'를 떼고 주택 브랜드인 '아이파크(IPARK)'를 앞세웠다. HDC현대산업개발은 IPARK현대산업개발로 사명을 바꿨다. HDC아이앤콘스와 HDC아이파크몰, HDC신라면세점, HDC영창, HDC스포츠, HDC리조트, 호텔HDC 등도 각각 IPARK아이앤콘스와 IPARK몰, IPARK신라면세점, IPARK영창, IPARK스포츠, IPARK리조트, 호텔IPARK로 변경됐다. 반면 AI와 에너지 부문 계열사는 기존 HDC 브랜드를 유지했다. 라이프 부문에는 소비자 인지도가 높은 아이파크를 전면 배치하고, AI와 에너지에는 그룹 정체성을 상징하는 HDC를 남긴 것이다. 정 회장은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지난 50년이 도시의 외형을 만들고 주거 문화를 이끈 시간이었다면 앞으로는 사업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한 건설사를 넘어 삶의 플랫폼을 설계하고 에너지를 순환시키며 AI를 통해 혁신하는 그룹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HDC그룹은 2018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전 계열사 사명에 HDC를 적용했다. 8년 만에 다시 이뤄진 이번 개편은 건설 중심으로 인식돼온 그룹의 정체성을 라이프·AI·에너지로 확장하겠다는 브랜드 전략으로 풀이된다. ◇ 발전 자산은 아직 통영 한 곳 HDC그룹이 새로 분류한 에너지 부문에는 발전뿐 아니라 도로·교량·항만, 소재 관련 계열사도 포함된다. HDC현대EP와 HDC현대PCE, 서울춘천고속도로, 북항아이브리지, 부산컨테이너터미널 등이 에너지·인프라 부문에 배치됐다. 다만 직접적인 발전사업 실적을 내는 핵심 자산은 통영에코파워다. 통영에코파워는 약 1조3000억원을 투입해 경남 통영시 광도면 안정국가산업단지에 건설한 1012MW급 LNG 복합화력발전소다. HDC가 지분 60.5%, 한화에너지가 39.5%를 보유한 합작사로 2024년 10월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2024년에는 상업운전 기간이 2개월여에 그쳐 매출 2124억원과 영업이익 546억원을 기록했다. 발전소 가동 실적이 온전히 반영된 지난해에는 매출이 8026억원, 영업이익이 2631억원으로 증가했다. 당기순이익도 348억원에서 1540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도 수익성은 유지되고 있다. 통영에코파워는 1분기 매출 1950억원, 영업이익 578억원, 당기순이익 35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영업이익 580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상업운전 첫해에 발생한 일회성 이익만으로 건설사를 앞지른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통영에코파워의 경쟁력으로는 연료 조달과 저장 구조가 꼽힌다. 국내 복합화력발전소 가운데 처음으로 20만㎘급 자체 LNG 저장설비를 갖추고 인접한 한국가스공사 통영기지의 일부 설비를 공동 활용할 수 있다. 연료는 한화에너지 계열인 호라이즌에너지싱가포르를 통해 직도입한다. 호라이즌에너지가 해외 공급사와 체결한 장기 조달계약을 기반으로 LNG를 공급하는 구조다. 국제 LNG 가격과 계약 조건에 따른 변동성은 있지만 연료 조달 방식을 다변화하고 비용을 탄력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발전설비는 GE의 7HA 가스터빈 2기와 스팀터빈 1기로 구성됐다. 가스터빈은 기술적으로 수소 혼소가 가능하지만 구체적인 도입 시기나 혼소 비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향후 탄소 규제 강화에 대응할 수 있는 장기 선택지를 확보한 수준이다. 재무 부담도 점차 줄고 있다. 통영에코파워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6537억원에서 올해 3월 말 5663억원으로 3개월 만에 874억원 감소했다. 순차입금도 2024년 말 9470억원에서 올해 3월 말 7781억원으로 줄었다. 차입금 감소는 금융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통영에코파워의 이자비용 등 금융원가는 지난해 1분기 169억원에서 올해 1분기 115억원으로 낮아졌다. 회사는 기존 PF 차입금에 대한 리파이낸싱도 준비하고 있다. ◇ 늘어나는 전력수요…LNG에는 기회이자 위험 중장기 전력수요 전망은 발전사업에 우호적이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반도체와 이차전지 투자, 데이터센터 확대, 산업·수송 부문의 전기화 등을 반영해 2038년 기준수요를 145.6GW로 전망했다. 수요관리 효과를 반영한 목표수요도 129.3GW에 달한다. 현재 수립 중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AI 데이터센터와 첨단산업의 전력수요가 핵심 변수로 다뤄질 전망이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전력수요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LNG 발전의 역할이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반면 LNG 발전을 둘러싼 정책 불확실성도 있다.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LNG 발전량을 줄이고 무탄소 전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질 수 있다. 국제 LNG 가격과 원·달러 환율, 전력도매가격(SMP) 변동에 따라 수익성이 달라지는 구조도 위험 요인이다. 통영에코파워가 현재와 같은 높은 영업이익률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는지는 연료 도입가격과 가동률, 전력시장 제도 변화에 달려 있다. 그룹의 확장 전략도 아직 구체화되지 않았다. HDC그룹은 에너지 부문의 목표로 발전 자산 확대와 에너지사업 투자, 신재생에너지 진출을 제시했지만 현재 실적을 내는 발전 자산은 통영에코파워 한 곳이다. 두 번째 발전 자산이나 신재생에너지 투자 대상, 구체적인 투자 규모와 시기는 공개하지 않았다. ◇ AI, 기존 사업은 있지만 독립 성장축은 아직 AI 부문의 실무 중심은 HDC랩스다. HDC랩스는 스마트홈과 AIoT, 건물 종합관리, 홈서비스 등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부동산R114 사업 부문을 인수해 부동산 데이터를 활용한 AI 서비스 확대도 추진 중이다. 따라서 AI가 전혀 새로운 선언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HDC그룹은 계열사 전반에 AI 전환을 적용해 운영 효율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공간과 시스템이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HDC랩스에는 정 회장의 장남인 정준선 KAIST 교수가 AI·기술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AI 분야 석·박사 학위를 받은 정 교수는 산학협력과 기술 지원, 교육 및 우수 인재 확보 등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등기임원이나 상근 경영진으로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구조는 아니다. AI가 기존 사업의 효율을 높이는 내부 도구를 넘어 독립적인 외부 매출을 창출하는 성장축으로 자리 잡았는지는 아직 확인하기 어렵다. 현재 공개된 실적만으로는 HDC랩스의 기존 건물관리·스마트홈 사업과 새롭게 추진하는 AI 사업의 매출 및 손익을 분리해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발전·건설 접점은 데이터센터 에너지와 AI, 건설을 잇는 접점으로는 데이터센터가 거론된다. AI 데이터센터 입지 선정에서 안정적인 전력 확보가 최대 변수로 떠오른 상황에서 발전 자산과 건설·개발 역량을 함께 보유한 HDC그룹의 사업 구조는 잠재적인 강점이 될 수 있다. IPARK현대산업개발은 2022년 정관에 데이터센터업을 사업목적으로 추가하고 관련 전담조직을 구성했다. 통영에코파워 발전소 부지를 데이터센터 후보지로 검토하는 등 발전과 건설 역량을 결합하는 방안도 모색해왔다. 그룹은 저탄소 데이터센터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통영에코파워 개발 과정에서 축적한 에너지 플랜트 경험을 데이터센터 개발에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투자 규모와 최종 입지, 착공 시기, 전력공급 방식, 데이터센터 운영 주체가 확정된 프로젝트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발전소를 보유했다는 사실만으로 데이터센터 사업의 수익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대규모 선투자와 전력계통 연계, 고객사 확보, 서버 운영 역량 등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이름은 바뀌었고 숫자도 한 차례 역전됐다. 통영에코파워는 건설 중심이던 HDC그룹이 에너지사업에서 실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다만 그 역전을 만든 발전 자산은 아직 한 곳뿐이다. AI와 데이터센터 역시 기존 사업과 준비 조직은 갖췄지만 구체적인 투자 규모와 외부 수익모델을 제시하는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다음 50년의 포트폴리오라고 부르려면 선언을 뒷받침할 후속 투자가 필요하다. 두 번째 발전 자산이나 신재생에너지 사업, 실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가운데 무엇을 내놓느냐가 HDC그룹의 '탈건설'이 구조적 변화인지 통영 발전소 한 곳이 만든 일시적 역전인지를 가를 전망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정몽규 HDC의 다음 50년 ②] 사고 4년 반, 영업정지는 아직 ‘0일’

IPARK현대산업개발(옛 HDC현대산업개발)은 외형 축소에도 수익성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연결 매출은 4조1470억원으로 2.6%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2486억원으로 34.7% 늘었다. 올해 1분기에도 매출은 6739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5.6% 감소한 반면 영업이익은 801억원으로 48.4%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11.9%로 2021년 2분기 이후 약 5년 만에 두 자릿수를 회복했다. 연결 부채비율도 지난해 말 136.5%에서 올해 1분기 말 129.3%로 낮아졌다. 증권가에서는 광운대역세권 개발사업인 서울원 아이파크를 비롯한 자체 사업 매출 인식이 본격화하면서 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도 수익성 개선과 신용도 회복, 회사채 수요예측 흥행 등을 재무구조 정상화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실적 지표와 함께 봐야 할 숫자가 하나 더 있다. 회사가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에 따른 영업정지 처분을 공시하면서 '영업정지 금액'으로 제시한 3조5997억원이다. 이는 2024년 토목건축공사업 매출로, 당시 전체 연결 매출 4조2562억원의 84.6%에 해당한다. 다만 영업정지 대상 사업의 매출 규모를 뜻할 뿐 회사가 추산한 실제 예상 손실액은 아니다. ◇ 1년 영업정지 처분, 실제 집행은 '0일' 2022년 1월 11일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신축 현장에서 23층부터 39층까지의 구조물이 무너져 작업자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원청인 HDC현대산업개발과 하청업체, 감리업체 등 법인 3곳을 포함해 총 20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형사 1심 판결은 사고 발생 3년 만인 지난해 1월 나왔다. 법원은 원청과 하청업체의 현장소장 등 현장 책임자들에게 징역 2∼4년 등을 선고했다. 반면 당시 회사 대표이사 등 경영진에 대해서는 사고와 관련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주의의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전에 발생해 해당 법을 적용할 수 없었던 점도 경영진에 대한 처벌 범위를 제한했다. 형사 1심 판단을 기다려온 서울시는 지난해 5월 화정 아이파크 사고와 관련해 두 건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따른 부실시공으로 중대한 손괴와 인명피해를 초래했다는 이유로 8개월, 산업안전보건법상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4개월을 각각 부과했다. 당초 8개월 처분은 지난해 6월 9일부터 올해 2월 8일까지, 4개월 처분은 올해 2월 9일부터 6월 8일까지 집행될 예정이었다. 회사는 지난해 5월 20일 8개월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본안 소송과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법원은 같은 달 30일 집행정지를 인용해 처분 효력을 본안 1심 선고일로부터 30일이 되는 날까지 정지했다. 올해 1월에는 4개월 처분에 대해서도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냈다. 이에 따라 서울시가 부과한 1년의 영업정지는 현재까지 하루도 집행되지 않았다. 회사는 집행정지 결정 이후 정상적인 영업활동에 영향이 없다고 공시했다. ◇ 형사 항소심 기다리며 행정재판도 정지 영업정지 처분 취소소송의 첫 변론기일은 지난해 12월 12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나진이) 심리로 열렸다. 그러나 재판은 이날 사실관계에 대한 본격적인 판단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IPARK현대산업개발 측은 광주고법에서 진행 중인 형사 항소심에서 사고 원인에 대한 추가 감정이 이뤄지고 있다며 감정 결과가 나온 뒤 행정소송의 다음 기일을 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시 측은 형사 1심에서 이미 사고조사위원회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판단이 내려졌다며 추가 감정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맞섰다. 재판부는 형사 항소심의 감정 결과를 확인한 뒤 다음 기일을 지정하기로 했다. 다만 절차가 지나치게 지연되면 직권으로 기일을 정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행정소송 일정이 형사 항소심 진행 상황에 사실상 연동된 셈이다. 행정법원이 형사 항소심 판단에 반드시 구속되는 것은 아니지만 두 재판에서 사고 원인과 시공사의 책임 범위를 공통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김진환) 심리로 진행 중인 형사 항소심은 지난해 9월 첫 공판 이후 사고 원인 감정 절차 등으로 장기간 지연되다가 지난달 재개됐다. 법조계에서는 이르면 다음 달 종결 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이 거론된다. 화정 사고와 별개로 2021년 광주 학동 재개발 철거 현장 붕괴 사고에 따른 8개월 영업정지 소송도 진행 중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4월 회사가 하도급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회사는 이에 항소했고 항소심에서 다시 집행정지가 인용돼 이 처분 역시 현재까지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 당장 공사 중단 없지만 신규 수주는 제한 회사 측은 영업정지가 집행되더라도 진행 중인 공사 전체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처분 전에 이미 도급계약을 체결했거나 관계 법령에 따라 인허가를 받아 착공한 공사는 계속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시상 영업정지 금액인 3조5997억원이 실제 손실로 직결되지 않는 이유다. 문제는 신규 수주다. 영업정지가 집행되면 대상 업종에서 새로운 도급계약을 체결할 수 없어 그 기간 신규 수주 활동이 제한된다. 회사는 지난해 5조8304억원을 수주했고 올해도 서울원 아이파크를 비롯한 자체 사업과 대규모 복합개발, 도시정비사업 확대를 예고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신규 수주는 3091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71.6% 감소했다. 다만 회사가 약 32조원 규모의 수주잔고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1개 분기의 수주 감소가 당장 실적 악화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영업정지의 영향도 시차를 두고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기존에 확보한 사업은 계속 진행할 수 있지만 영업정지 기간 발생한 신규 수주 공백은 수년 뒤 매출과 영업이익 감소로 연결될 수 있다. 자체 개발사업의 매출 인식이 현재 실적 개선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도 향후 사업 파이프라인 확보가 중요하다. 사고 발생 후 4년 6개월이 지났다. 서울시가 1년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 지도 1년 넘게 흘렀지만 실제 집행된 기간은 아직 하루도 없다. 형사 항소심의 사고 원인 감정이 길어지면서 행정소송은 첫 변론 이후 다음 기일조차 정해지지 않았다. 그 사이 회사는 영업이익률 11.9%를 기록하며 약 5년 만에 두 자릿수 수익성을 회복했다. 회사의 영업 정상화와 사법 절차에 따른 방어권은 보장돼야 한다. 동시에 수년 동안 집행되지 않는 영업정지 처분이 건설안전 제재로서 어느 정도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지는 별도의 질문으로 남는다. 회사 측은 지난해 영업정지 처분 당시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되면 처분 취소소송 판결 전까지 영업활동에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영업정지 효력이 발생하더라도 처분 전에 도급계약을 체결했거나 관련 법령에 따라 인허가를 받아 착공한 공사는 계속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법적 대응에 나서면서도 “직원과 협력사, 고객, 투자자를 위해 노력하고 안전에도 더욱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안전·품질 관리도 강화했다는 설명이다. 회사는 2022년부터 안전보건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경영진과 현장소장, 안전관리자, 협력회사 관계자 등 1400명을 대상으로 'HDC SAFETY-I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안전·품질 우수 협력사 약 40곳으로 구성된 안전품질위원회를 운영하고 현장 재해 예방과 품질관리 개선에도 나서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안전·품질 경영 선포식에서 안전과 품질을 최우선 과제로 기업문화에 정착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단독] ‘대한항공 94% 깎고 쿠팡 상한선 막히고’…공정위, ‘기업 결합 이행 강제금’ 전면 손질 나선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의 기업 결합 이행 강제금 '94% 감경' 특혜 시비와 쿠팡의 과징금 '상한선 한계' 등 잇따른 솜방망이 제재 논란을 계기로 금전적 제재 산정 체계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에 돌입한다. 상위 법령을 무력화한 하위 규범의 모순을 바로잡고 위반 행위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던 획일적인 제재 기준을 정교하게 세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24일 본지 취재 결과 공정위 기업집단결합정책과는 최근 30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기업 결합 이행 강제금 제도 개선 연구 용역'을 발주하고 사업자 선정 작업에 착수했다. 당국은 이달부터 오는 11월까지 4개월간 진행되는 이번 용역을 통해 이행 강제금 산정 체계를 합리화하고 관련 규정 간 정합성을 제고할 계획이다. 이번 제도 개편의 직접적인 배경에는 지난 5월 불거진 '법령 하극상' 논란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기업 결합 승인 조건인 11가지 시정 조치 중 1개(인천-프랑크푸르트 노선)를 어긴 데 대해 당초 산정된 981억 원의 이행 강제금 중 94%를 감경한 58억8000여만 원만 부과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최초 산출액의 1% 수준인 5억8000여만 원만 부과받았다. 현행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시행령은 감경 한도를 '산정 금액의 2분의 1(50%) 범위'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하위 규범인 공정위 고시인 '부과 기준'에 명시된 '현저히 불합리한 경우 기준과 다른 금액을 부과할 수 있다'는 폭넓은 예외 규정을 근거로 상한선을 초과하는 '묻지마 감액'을 단행해왔다. 이에 따른 법규 해석·적용상 논란도 뒤따르고 있다는 점을 공정위 역시 인지하고 있다. 이에 공정위는 일반적인 행정상 이행 강제금과 기업 결합 분야 이행 강제금의 차이를 재분석하고, '가중·감경 요소 및 재량 행사 기준에 관한 현행 시행령과 고시 간 정합성 검토'를 핵심 과제로 적시하며 본격적인 제도 정비에 나서기로 했다. 제재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획일적인 산정 방식(모수)도 대폭 뜯어고친다. 현재 이행 강제금은 위반의 중대성이나 불이행 특성과 무관하게 전체 '기업 결합 금액' 단일 기준으로 획일화돼 있다. 공정위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16년 이후 처리된 기업 결합 시정 조치 심결례 총 28건을 전수 분석한다. 시정 조치를 자산 매각 등의 '구조적 조치'와 공급 의무·차별 금지 의무·보고 의무 등 세부 유형으로 나뉘는 '행태적 조치'로 구분해 부과 기준을 차등화할 계획이다. 파급력이 큰 구조적 조치에는 기존처럼 기업 결합 금액을 산정 모수로 단일화해 유지하되 부과 비율을 차등 적용하고, 행태적 조치 위반에는 △관련 매출액 △총매출액 △정액 기준 등 새로운 대안 모수를 도입해 제재의 비례성과 집행 실효성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특히 공정위는 시행령 이하에서 새로운 대안 모수를 도입할 경우 현행 법률상의 '이행 강제금 상한 규정'과 충돌하지 않는지 적용 가능성을 폭넓게 따져볼 예정이다. 이는 최근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쿠팡 사례에서 금전 제재 시스템의 구조적 맹점이 고스란히 노출됐기 때문이다. 앞서 공정위는 쿠팡의 납품가 인하 압박과 광고비 강요 행위에 대해 위반 기간 2년 초과를 이유로 20% 가산을 적용, 각각 6억 원의 과징금 산정 기준을 세웠다. 하지만 대규모유통업법상 정액 과징금 상한(5억 원)의 벽에 부딪혀 결국 1억 원씩 하향 조정됐다. 여기에 쿠팡 체험단 행사 미사용 상품 대금 미반환 등에 대해서도 조사 개시 후 이자 일부 지급과 '조사 적극 협조'를 이유로 각각 10~15%를 추가 감경받아 4가지 갑질에 대한 쿠팡의 총 과징금은 21억8500만 원에 그쳤다. 거대 플랫폼의 횡포를 효과적으로 억제하기엔 턱없이 약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번 연구 용역은 하위 규정에서 산정 체계를 정비하더라도 쿠팡 사례처럼 상위법의 상한선에 부딪혀 제재 취지가 무력화되는 사태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공정위는 구체적인 대안 설계를 위해 미국·유럽연합(EU)·영국·독일 등 주요국의 금전적 제재 수단과 법령을 심층 비교·분석하고 각국 경쟁 당국 직원·전문가 인터뷰, 이해 관계자 간담회 등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공정위는 오는 9월 30일까지 100쪽 이상의 중간 보고서를 거쳐 11월 30일까지 150쪽 이상의 최종 보고서를 받을 예정이다. 아울러 도출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공정거래법 시행령과 이행 강제금 부과 기준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속도감 있게 마련하고, 필요시 공정거래법 자체의 개정안까지 포괄적으로 도출할 방침이다. ◇해외선 매출 연동해 제재↑…日선 이행 여부까지 점검 EU의 경우 기업 결합 승인 조건이나 의무를 위반하면 기업 총매출액의 최대 10%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여기에 불이행이 이어지면 평균 일일 매출액의 최대 5%를 매일 추가로 물릴 수 있어 기업 규모가 크고 위반이 길어질수록 제재 부담도 함께 불어나는 구조다. 독일에서는 기업 결합 규제 위반에 대한 제재 기준을 법률에 직접 규정하고 있다. '경쟁제한방지법(GWB)'에 따라 승인 전 기업 결합을 실행하거나 조건을 위반한 기업에는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일본 공정취인위원회는 '독점금지법'으로 기업 결합 이후 시정 조치 이행까지 관리하고 있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에서도 한일 국제선 일부 노선에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고 보고 슬롯 양도 등의 시정조치를 전제로 결합을 승인, 외부 감시 수탁자를 통해 이행 여부를 점검 중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김수인 인턴기자

‘세기의 이혼’ 끝났지만…최태원, 9440억 현금 마련은 이제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금으로 9440억 원을 지급하라는 파기환송심 판결이 나오면서, 거액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혼소송이 시작된 지 9년 만에 나온 이번 판단으로 총수 개인의 이혼 소송이 그룹 전체의 지배구조와 주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SK그룹에 미칠 파장에도 이목이 집중된다. 서울고법 가사1부는 24일 오후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재산분할 등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기일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 원과 이에 대한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2024년 5월 항소심에서 결정된 1조3808억 원보다 31.6% 줄어든 금액이지만, 2022년 12월 1심이 인정한 665억 원과 비교하면 14배가 넘는 규모다. ◇ 1심·2심·대법원 엇갈린 판단…쟁점은 SK㈜ 주식 이번 소송의 최대 쟁점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이 부부 공동재산으로서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였다. 1심은 이 주식을 혼인 전부터 보유한 최 회장의 '특유재산'으로 보고 분할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면 항소심은 혼인 기간과 재산 형성 시점·과정 등을 종합해 노 관장의 기여를 인정하고 해당 주식을 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이혼과 위자료 부분은 그대로 확정하면서도,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이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300억 원의 비자금은 설령 실제 존재하더라도 불법 자금인 만큼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로 평가할 수 없다고 보고 재산분할 부분만 파기환송했다. 이번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항소심과 마찬가지로 SK㈜ 주식을 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재판부는 “해당 주식은 혼인 기간 중 최 회장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부부 모두가 형성과 가치 유지·증가에 기여했다고 인정된다"며 노 관장의 가사·양육과 그룹 관련 대외 활동이 주식 가치 유지·증가에 기여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 판단에 따라 노태우 전 대통령 측 지원금 300억 원은 노 관장의 기여도 산정에서 제외했고, 혼인 파탄 이전 이미 증여된 재산도 분할 대상에서 빠지면서, 재산분할 비율은 최 회장 3분의 2, 노 관장 3분의 1로 환송 전보다 노 관장 몫이 소폭 낮아졌다. ◇ '16만원이냐 81만원이냐'…주가 산정 기준일 쟁점 분할 대상 재산의 가액을 어느 시점 주가로 산정할지도 핵심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재산 가액 산정 기준일을 환송 전 항소심 변론 종결일(2024년 4월 16일)로 정했다. 당시 SK㈜ 주가는 16만 원대였지만, 파기환송심 변론이 종결된 지난달 26일에는 81만 원대까지 오른 상태였다. 재판부는 재판상 이혼 확정 후 재산분할을 청구하더라도 분할 대상 재산과 가액은 원칙적으로 이혼소송의 사실심 변론 종결일을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며 “주가 상승에 최 회장의 경영적 기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 없고, 이혼이 확정된 후 주식 처분 여부에 따라 발생한 이익이나 손해까지 모두 전 배우자와 나눠야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이후 주가 상승분을 재산 가액 자체에는 반영하지 않는 대신, 공동재산을 보다 공평하게 나눈다는 취지에서 재산분할 비율을 정할 때 이를 고려했다"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부부 공동재산의 상당 부분은 혼인 기간 중 형성·취득된 자산"이라며 “쌍방의 협력으로 이룩한 공동재산을 공평하게 분배하기 위해 환송 전 항소심 변론 종결일 이후 최 회장 보유 주식 가치가 큰 폭으로 상승한 점을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SK㈜ 주식이 최 회장의 SK그룹 경영권과 지배력의 기반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주식을 직접 나누는 현물분할이 아닌 현금 지급 방식으로 재산분할을 명령했다. ◇ 현금 9440억 원, 어떻게 마련하나 가장 빠르고 확실한 현금 확보 방법은 SK㈜ 주식 매각이다. 최 회장은 SK㈜ 보통주 1297만 5472주(지분율 17.76~17.9%)를 비롯해 SK디스커버리 보통주 2만 1816주(0.12%)와 우선주 4만 2200주(3.22%), SK케미칼 우선주 6만 7971주(3.21%), SK텔레콤 보통주 303주, SK스퀘어 196주, SK실트론 보통주 1970만 4865주(29.4%) 등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친인척과 계열사 임원 등 우호 지분을 합치면 SK㈜ 지분율은 25.42%에 이른다. 만약 재산분할액 9440억 원 전액을 SK 주식 매각으로 충당한다고 가정하면, 최 회장의 지분율은 15%대로 낮아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주식 외 다른 재산도 함께 분할 대상이 되는 만큼 실제 지분 감소폭은 이보다 작을 가능성이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보유 중인 SK 주식을 팔아서 지급하는 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인 건 맞다"며 “그러나 SK㈜는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이기 때문에, 최 회장이 대규모 지분을 한번에 내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SK 주식을 직접 팔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현금을 마련할 것이란 예상도 적지 않다. SK텔레콤 등 우량 계열사가 주주 배당을 확대하면 지주사로 유입되는 현금이 늘고, 최대주주인 최 회장에게 돌아가는 몫도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재산분할 판결 직후 SK텔레콤 주가가 상승한 것도 이런 시나리오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 최 회장 개인 명의의 SK실트론 지분(29.4%)을 매각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다만 비상장인 SK실트론 매각이 완료될 때까지는 법원이 정한 지연이자를 부담해야 한다는 점은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재계에서는 SK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방안 쪽에 더 무게가 실린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분을 팔지 않고도 현금을 마련할 수 있어 경영권에 미치는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에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세청에 법인세나 상속세를 낼 때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나누어 내듯이, 재산분할금 역시 경영권이 흔들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괄 지급이 아닌 연부연납 방식으로 나누어 지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보통 상속세도 5년 정도에 걸쳐 내는 것처럼, 이 자금 역시 10년에 걸쳐 나누어 내도록 한다면 현실적으로 훨씬 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 1988년 결혼부터 2017년 이혼소송까지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미국 시카고대 유학 시절 만나 교제한 뒤 1988년 9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딸과 선경그룹(現 SK그룹) 회장 장남의 결혼으로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았으며, 슬하에 세 자녀를 뒀다. 결혼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아 선경그룹의 1990년대 초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당시 정권 특혜 의혹이 제기됐고, 두 사람은 외화 밀반출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가 혐의를 벗기도 했다. 파경은 2015년 12월 최 회장이 언론에 보낸 편지를 통해 노 관장과의 10년 넘는 갈등과 혼외 자녀의 존재를 알리며 공개됐다. 최 회장은 2017년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했고, 처음에는 반대하던 노 관장도 2019년 12월 반소를 제기하며 이혼을 받아들였다. 최 회장 측 법률대리인은 이날 선고 후 “최 회장은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판결에 대한 구체적 입장은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말씀드리겠다"고 밝혀, 재상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노 관장 측 변호인단은 취재진의 질문에 별다른 언급 없이 법원을 떠났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신은서 인턴기자

서울고법, “최태원, 노소영에 9440억 현금으로 줘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담당 재판부가 최 회장으로 하여금 노 관장에게 9000억 원대의 재산 분할 판결을 내렸다. 2017년 7월 최 회장이 이혼 조정 신청을 낸 지 9년 만이다. 서울고법 가사1부는 24일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지급해야 할 재산 분할금 규모를 9440억 원으로 확정 판결했다. 이 판결 확정일 다음 날부터 발생하는 지연 손해금도 함께 지급하도록 명했다. 이번 파기 환송심은 본소 전부와 반소 중 이혼과 위자료 청구 부분이 앞선 대법원 심리를 통해 이미 분리·확정됨에 따라 오직 반소의 '재산 분할' 청구 부분에 한정해 심리가 이뤄졌다. 재판부는 파기 환송심에서도 최 회장이 보유한 주식회사 SK 지분을 부부 공동의 재산 분할 대상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해당 주식이 최 회장 명의로 취득됐으나 혼인 기간 중 경영 활동으로 가치가 크게 증대됐고 노 관장의 가사 및 양육, SK그룹에 관한 대외적 활동이 그 가치 유지·증가에 기여했다고 인정했다. 이에 따라 분할 비율은 부부 공동 재산의 △취득 경위 △형성 기여도 △혼인 기간 등을 포괄 참작해 최 회장이 3분의 2, 노 관장이 3분의 1을 가져가는 것으로 정해졌다. 재판부는 노 관장 몫으로 배정된 주식 가운데 부족한 부분에 대해 최 회장이 전액 현금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이른바 '대상 분할'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파기 환송심에서 밝힌 양측의 분할 방법에 관한 의사를 수렴하는 한편, 해당 주식이 최 회장이 경영하는 회사에 대한 경영권 내지 지배권의 근거가 되는 측면이 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아울러 혼인 관계가 파탄에 이르기 전, 최 회장이 경영권 유지와 경영 활동의 일환으로 친인척에게 증여했던 주식은 분할 대상 재산 목록에서 제외했다. 분할 대상 주식의 가액을 산정하는 기준 시점은 앞선 이혼 소송의 사실심(환송 전 항소심) 변론 종결일이었던 2024년 4월 16일로 정해졌다. 재판부는 재판상 이혼 확정 후 재산 분할을 청구하는 경우에도 분할 대상과 액수는 이혼소송 사실심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특히 상장 주식은 가액 변동성이 크고 언제든 환가할 수 있는 현금성 자산이므로 이혼 확정 이후의 주식 처분 여부 등에 따른 손익을 혼인관계가 해소된 부부 쌍방에게 분담시키지 않는 것이 부부 공동 재산의 공평한 청산 목적에 어긋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항소심 변론 종결일 이후 이번 파기 환송심 변론 종결일 사이에 SK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한 현상에 대해서는 “최 회장의 경영적 기여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가액 기준일 자체를 임의로 늦추는 대신 “부부 공동 재산의 공평한 분배를 위해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 사정은 재산 분할 비율 산정에서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가액 기준일은 원칙대로 고정하되, 주가 급등이라는 변수를 분할 비율(노소영 1/3) 조정 과정에 유연하게 반영한 셈이다. 이번 재산 분할액이 1조3808억 원에 달했던 직전 항소심에 비해 대폭 줄어든 결정적 배경에는 대법원의 판단이 자리 잡고 있다. 작년 10월 대법원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은 애당초 '불법 자금'이므로 설령 이 돈이 SK에 유입됐다고 해도 재산 분할에서 노 관장의 기여로 참작할 수 없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돌려보낸 바 있다. 파기 환송심 재판부 역시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비자금 300억 원이 SK 측에 전달됐다고 해도 이를 최 회장 보유 주식의 형성이나 가치 유지에 대한 노 관장 측의 기여나 재산 분할 비율 산정에서 전혀 참작하지 않았다. 작년 대법원 판단 당시 위자료를 20억 원으로 산정했던 2심 판단은 이미 그대로 확정되었기에, 이번 파기 환송심에선 오직 '재산 분할' 액수만을 두고 심리가 이루어졌다. 앞서 2022년 12월 1심 재판부는 위자료 1억 원과 재산분할 현금 665억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반면 2024년 5월 2심 재판부는 SK그룹 성장에 노 전 대통령의 300억 원 비자금과 노 관장의 기여가 있었다고 보고 주식회사 SK 지분까지 분할 대상으로 판단해 위자료 20억 원과 1조3808억 원이라는 재산 분할액을 판결하며 액수를 대폭 늘렸다. 그러나 대법원의 파기 환송을 거치며 최종적으로 9440억 원 현금 지급으로 결론이 나 길었던 소송전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게 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측은 “약 20년에 가까운 혼인 해소 과정에서 작년 대법원 판결로 이혼이 확정됐고, 금일 재산 분할의 파기 환송심 판결이 있었다"며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법원의 판결문을 검토 후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정몽규 HDC의 다음 50년 ①] 축구협회 13년 5개월…정몽규가 남기고 간 것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13년 5개월간 맡아온 대한축구협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축구 행정에서 한발 물러난 정 회장 앞에는 광주 사고의 후속 절차와 창립 50주년을 맞은 HDC그룹의 사업 재편이라는 과제가 놓여 있다. 정 회장이 남긴 축구계의 유산과 HDC그룹의 미해결 과제, 에너지·AI를 앞세운 향후 50년 전략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정몽규 HDC 회장이 지난 6일 대한축구협회장직을 내려놨다. 2013년 1월 제52대 회장으로 취임한 지 13년 5개월 만이다. 정몽준 전 회장의 16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긴 재임 기간이다. 사퇴 자체는 예고돼 있었다. 정 회장은 지난 5월 29일 북중미 월드컵이 끝난 뒤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다만 실제 사퇴 시점은 계획보다 13일 앞당겨졌다. 당초 북중미 월드컵 폐막일인 7월 19일 이후 사임할 예정이었으나, 대표팀이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협회를 향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다. 정 회장은 지난 6일 오전 충남 천안 코리아풋볼파크에서 임원회의를 주재한 뒤 사임서를 제출했다. 그는 사퇴 인사말에서 “대한민국 축구의 발전과 영광만을 바라보며 달렸지만 때로는 깊은 실망을 안겨드리기도 했다"며 “모든 영광과 성과는 선수들과 팬 여러분 덕분이며, 모든 부족함과 과오는 오롯이 저의 책임"이라고 밝혔다. ◇ 회장직 내려놔도 끝나지 않은 법적 절차 사퇴로 정리된 것은 축구협회장이라는 직위뿐이다. 정 회장 재임 중 제기된 각종 의혹을 둘러싼 행정소송과 경찰 수사, 국회 청문회는 계속된다. 축구협회는 문체부의 특정감사 결과에 불복해 낸 행정소송에서 지난 4월 23일 패소했다. 문체부는 2024년 감사를 통해 국가대표 감독 선임과 대한민국축구종합센터 건립 등 총 27건의 위법·부당 사항을 적발하고 정 회장 등에게 자격정지 이상의 징계를 요구했다. 재판부는 문체부의 감사 범위와 조치 요구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정 회장이 진행한 면접을 단순한 면담으로 보기 어렵고, 전력강화위원회의 기능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권한 없는 개입이 이뤄졌다는 문체부의 지적도 타당하다고 봤다. 홍명보 전 감독을 1순위 후보로 선별하는 과정의 절차적 문제도 인정했다. 협회는 지난 5월 항소를 결정했다. 법원이 항소심 판결 때까지 문체부의 중징계 요구 효력을 정지한 만큼 징계의 최종 이행 여부는 2심 판단 이후 결정될 전망이다. 경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경찰은 홍 전 감독 선임 등을 둘러싼 축구협회 관련 고소·고발 9건을 수사하고 있다. 정 회장은 업무상 배임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발된 피고발인 신분이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이달 들어 박주호 전 전력강화위원을 비롯해 홍 전 감독 선임 당시 협회 임원과 전력강화위원들을 잇달아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경찰이 확보한 진술을 토대로 정 회장을 다시 소환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오는 30일 대한축구협회 현안 청문회를 열고 정 회장을 증인으로 부를 예정이다. 청문회에서는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과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책임, 협회 운영 및 재정 집행 실태 등이 다뤄질 전망이다. 정 회장은 협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AFC 집행위원과 FIFA 상업·마케팅자문위원회 부위원장직은 유지하고 있다. 축구협회는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했으며 보궐선거 준비와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착수했다. ◇ 코리아풋볼파크·디비전 구축 성과도 정 회장의 13년 5개월이 논란만으로 채워진 것은 아니다. 그의 재임 기간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 진출 기록을 이어갔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다. 2019년 FIFA 20세 이하 월드컵 준우승도 정 회장 체제에서 거둔 국제대회 성과다. 아마추어 축구부터 프로축구까지 연결하는 디비전 시스템 구축과 천안 코리아풋볼파크 건립도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후원사 및 중계사와 장기계약을 체결해 협회의 재정 기반을 넓혔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임기 후반에는 이 같은 성과보다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절차 위반 논란이 더 크게 부각됐다. 클린스만·홍명보 전 감독 선임과 승부조작 가담 축구인 사면 시도는 협회의 핵심 의사결정이 적절한 내부 검증과 견제를 거쳤는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특히 대표팀 감독 선임이라는 협회의 핵심 업무를 둘러싼 절차적 문제가 문체부 감사에 이어 법원의 1심 판결에서도 지적되면서 정 회장 개인의 리더십뿐 아니라 협회 지배구조 전반을 손봐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졌다. ◇ 축구 논란, 여러 차례 HDC그룹으로 번져 정 회장의 축구 행보가 HDC그룹 이슈로 옮겨붙은 사례도 적지 않다. 2024년 국정감사에서는 천안 대한민국축구종합센터 건립 과정에서 HDC 계열 건설사가 사업상 이익을 얻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축구협회가 기본계획 설계를 맡은 네덜란드 건축회사와 주고받은 이메일 일부가 HDC현대산업개발에 공유되고, HDC현대산업개발 직원들이 별도 계약 없이 관련 업무에 관여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HDC현대산업개발 임원의 축구협회 파견을 둘러싼 의혹도 경찰 수사로 이어졌다. 문체부 감사 결과 해당 임원은 파견 근무 최장기간인 2년을 넘겨 11년간 축구협회에서 근무하면서 협회로부터 10억원의 자문료 등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체부는 인사 규정상 근거 없이 HDC 임원이 파견됐고, 자문료 인상 과정에서도 내부 결재와 인사위원회 등의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해당 임원의 편법·불법 파견과 수임료 지급 과정에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 확인해 달라며 관련자들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기부를 둘러싼 논란도 있었다. 정 회장은 지난해 초 4연임에 도전하면서 대한민국축구종합센터 완공을 위해 협회에 5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2021년 광주 학동 재개발 철거 현장 붕괴 사고 유가족들은 희생자 추모사업보다 축구협회장 선거를 위한 기부가 우선이냐며 반발했다. 당시 붕괴 사고가 발생한 재개발 사업의 시공사는 HDC현대산업개발이었다. 이달 10일에는 KBS가 국세청 공시 결산서류를 토대로 정 회장이 13년 재임 기간 축구협회에 출연한 사재가 총 3000만원이라고 보도했다. 2015년 1000만원과 2018년 2000만원 등 두 차례가 전부라는 것이다. 4연임 도전 당시 정 회장 지지 인사들이 그의 재정 지원 능력을 주요 장점으로 내세웠던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 압도적 재신임 1년 5개월 만에 조기 퇴진 앞서 정 회장은 지난해 2월 치러진 제55대 축구협회장 선거에서 유효투표 182표 가운데 156표를 얻어 4연임에 성공했다. 득표율은 85.7%에 달했다.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과 승부조작 가담 축구인 사면 시도, 홍명보 전 감독 선임 절차를 둘러싼 논란이 잇따랐지만 선거인단은 다시 정 회장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불과 1년 5개월 만에 그는 임기를 2년 이상 남겨두고 스스로 물러났다. 압도적인 재신임과 조기 퇴진 사이의 간극은 정 회장 개인의 리더십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팬 여론과 동떨어진 선거인단 구조와 회장에게 집중된 의사결정 권한, 절차상 문제를 내부에서 바로잡지 못한 견제 시스템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축구협회장직을 내려놓으면서 정 회장의 13년 체제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행정소송과 경찰 수사, 국회 청문회는 계속되고 있으며 축구와 HDC그룹 사이에 남은 이해관계 논란도 해소되지 않았다. 정 회장이 남긴 것은 코리아풋볼파크와 디비전 시스템 같은 유형의 성과만이 아니다. 차기 회장 체제에서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와 무너진 신뢰 역시 그의 13년 5개월이 남긴 유산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한화그룹 3형제 분업 下] 무차입 ‘클린 지주사’ 쥔 김동선…‘푸드테크 실험·규제 돌파’는 과제

대한민국 재계 서열 5위 한화그룹이 74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지배 구조의 변곡점을 맞이했다. 지난 15일, 그룹의 지주 회사격인 ㈜한화의 인적 분할 안건이 99.95%의 찬성률로 주총 문턱을 넘으며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각자의 영역을 나눠 지배하는 '3형제 분업형 독자 경영'이 마침내 본궤도에 올랐다. 겉보기엔 평화로운 영토 분할 같지만 총 부채의 99.7%를 맏형 김동관 부회장이 독박을 쓰고, 막내 김동선 부사장은 부채 비율 0.3% 이하의 '무차입 클린 컴퍼니'를 쥐고 링에 오르는 극단적인 비대칭 구조를 이룬다. 본지는 이 화려한 축포 뒤에 숨겨진 한화그룹 3세들의 생존 고차 방정식과 자본시장의 평가를 2회에 걸친 심층 기획으로 파헤친다. 오는 8월 1일 출범하는 신설 지주회사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가칭)'는 삼남 김동선 부사장의 독자 경영 데뷔 무대다. 이 신설 법인은 존속 법인 ㈜한화로부터 순자산 장부가액 기준 23.7%를 분할 받지만 부채는 총 249억 원만 승계한다. 존속 법인이 분할 전 부채의 99.7%를 책임지면서 신설 법인은 부채비율이 3% 미만인 압도적인 무차입 '클린 컴퍼니'로 출발하게 된 셈이다. 고금리 시대에 이자 부담 없이 신사업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백지수표를 쥐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전체적인 'SWOT' 관점에서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는 사실상 전무한 부채와 든든한 캐시 카우라는 강점과 푸드 테크 융합 생태계 선점이라는 훌륭한 기회를 쥐고 출발한다. 신설 법인의 사업은 한화비전·한화모멘텀·한화세미텍 등 기계·장비의 '테크' 부문과 한화갤러리아·한화호텔앤드리조트·아워홈 등 유통·서비스의 '라이프' 부문으로 나뉜다. 김 부사장의 핵심 전략은 자칫 성장이 정체될 수 있는 유통·서비스 산업에 첨단 IT 기술을 입혀 피지컬 AI 기반 푸드 테크·스마트 호스피탈리티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올해 1분기 기준 매출 4414억 원과 영업이익 221억 원을 기록한 글로벌 영상보안 강자 한화비전이 든든한 캐시카우 역할을 전담하고, 1분기 매출 6694억 원과 영업이익 182억 원으로 선방 중인 단체급식 2위 아워홈의 거대한 식자재 유통망에 한화로보틱스의 조리 로봇과 한화모멘텀의 물류 자동화 설비를 접목하는 방식이다. 비록 한화세미텍 등 일부 계열사들이 선제적 연구·개발(R&D) 인프라 투자 확대로 1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갤러리아 역시 내수 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무차입 지주사의 탄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이질적인 B2B 장비 산업과 B2C 소비재 산업의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 기업 가치를 재평가받겠다는 구상이다. 한화비전은 적자가 지속되던 비전넥스트 청산하는 '선택과 집중'을 단행했고, 지난 4월 말에는 적자 상태인 한화세미텍에 500억 원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진행하며 자체 경쟁력 강화에 발 벗고 나섰다. ◇ ㈜한화 건설 임원 사임으로 '선 긋기' 본격화…융합 한계와 자생력 입증 하지만 B2B와 B2C라는 이질적 조직 문화의 통합, 그리고 유통·외식 부문의 구조적 저마진을 단기간에 끌어올려야 하는 약점(Weakness)을 안고 있다. 최근 공시를 통해 이러한 테크-라이프 융합 구상에 결정적인 시그널이 포착됐다. 2026년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김동선 부사장은 지난 4월 1일 자로 장남 김동관 부회장의 영역으로 분류되는 ㈜한화 건설부문(옛 한화건설) 임원직에서 사임했다. 한화갤러리아 등 라이프 부문 임원직만 유지한 채 테크 부문 경영에서 손을 떼며 형제 간의 명확한 선 긋기에 나선 모양새다. ◇ 지주사 규제 '합병 묘수'로 돌파…아워홈 1조 베팅과 자산 유동화 기회 다만 사업적 시너지 창출에 앞서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공정거래법에 따른 지주 회사 행위 제한 규제를 2년 내에 해소해야 하는 거대한 법적 허들이다. 우선 지주 회사는 비상장 자회사 지분을 50% 이상 보유해야 하는데 분할 계획서 및 1분기 공시상 ㈜한화의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지분율은 49.80%여서 최소 0.2% 이상의 지분을 추가 매입해야 한다. 또한 지주사의 자회사는 자신이 지배하는 손자회사가 아닌 다른 국내 계열사의 지분을 소유할 수 없는 교차 소유 금지 규정도 풀어야 한다. 현재 아워홈의 모회사인 특수 목적 법인 우리집에프앤비와 한화로보틱스 지분을 ㈜한화와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나누어 쥐고 있는데, 분할 이후 신설 지주사가 ㈜한화의 지분을 승계하면 자회사인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자매 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게 돼 법을 명백히 위반하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설 지주사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보유한 우리집에프앤비와 한화로보틱스 지분을 전량 매입해 지주사의 100% 직속 자회사로 승격시켜야 한다. 이 과정은 가장 막대한 재무적 지출이 예상됐던 아워홈 지배 구조 개편에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다. 만약 우리집에프앤비가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산하에 그대로 남는다면 아워홈은 지주사의 증손회사가 돼 법적으로 지분을 100% 확보해야 하는 막대한 자금 출혈 요건에 걸리게 된다. 하지만 신설 지주사가 우리집에프앤비를 100% 직접 자회사로 흡수하면 아워홈은 손자회사로 신분이 상승해 비상장사 지분 50% 요건만 충족하면 되므로 현재 지분율(50.62%)만으로도 규제를 비켜 갈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실질적인 경영권 장악과 규제 돌파를 위해 파격적인 베팅이 이뤄졌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자회사 '우리집에프앤비'를 통해 무려 8642억 원을 투입해 아워홈 지분 58.62%를 확보했고, 구본성 전 부회장의 잔여 지분 8%를 1186억 원에 2027년 5월까지 추가 매입하는 2차 계약도 맺었다. 신사업 재원 마련을 위해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소공 2지구 유휴 부동산을 한화생명에 802억 원에 매각해 넉넉한 현금을 쥐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올해 2월 한화푸드테크에 400억 원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기존 자산을 극적으로 유동화해 푸드테크 생태계 구축에 과감히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2년 내에 재무적 누수 없이 얽히고설킨 공정거래법 지분 고리를 풀어내야 하고, 롯데·신세계 등과의 치열한 유통 경쟁 속에서 내부거래 축소로 자생력을 증명해야 하는 명백한 위협 요인도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한화 측은 이 규제 리스크를 영리하게 우회했다. 옛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는 2025년 1월 사업회사인 구 한화비전을 흡수·합병해 사명을 '한화비전'으로 확정했고, 이 합병에 따른 자산 요건 변동으로 지난해 7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아예 '지주회사 적용 제외' 통보를 받았다. 지주사 체제 전환에 따른 자회사 지분 확보·교차 소유 해소 시급이라는 규제 족쇄를 합병이라는 묘수로 털어낸 것이다. ◇ 계열 분리 최종 수순 '지분 스왑' 이번 분할로 김동선 부사장의 독자 경영 체제가 물리적으로 확립됐으나 완전한 친족 독립 경영인 계열 분리 인정을 받기까지는 지분 맞교환(스왑)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한다. 공정위 친족 분리 요건에 따르면 분리하는 친족 측이 동일인 측 상장사 지분을 3% 미만으로 소유해야 한다. 김 부사장은 현재 존속 ㈜한화 보통주 지분을 5.38% 보유하고 있고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인 한화에너지 지분 역시 10%를 쥐고 있어 규제 상한을 초과한 상태다. 결국 향후 신설 지주사의 기업가치를 한껏 끌어올린 루 김 부사장이 보유한 ㈜한화와 한화에너지 지분을 두 형이 신설 지주사에서 배정받게 될 지분과 맞교환하는 대규모 스왑 절차가 완전한 독립의 최종 수순이 될 전망이다. 완전한 계열 분리 위해 지분 맞교환과 내부 거래 축소 등 과제 산적한 가운데 더불어 코레일이 약 30%의 지분을 들고 있는 한화커넥트의 지배 구조 개편 역시 공공 기관과의 조율이 필요해 까다로운 복병으로 꼽힌다. 하지만 진짜 명백한 위협 요인은 지분 구조에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 403억 원을 기록한 핵심 수익원인 '한화커넥트'의 최대주주는 장남 영역인 '한화솔루션(48.31%)'이며, 김 부사장 측(한화호텔앤드리조트) 지분은 18.94%에 불과하다. 이를 온전히 품기 위해서는 코레일보다 큰형으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아야 하는 셈법 복잡한 '형제간 교통 정리'가 수반돼야 한다. 아울러 최근 공정위가 분리 이후 3년간 부당 내부거래 내역을 의무 제출토록 사후 감시를 대폭 강화한 만큼, 아워홈이나 호텔앤드리조트가 기존 방산·케미칼 형제 회사 물량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외부 매출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려 독립된 시장 자생력을 증명해야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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