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포항 앞바다 유전 발견 발표에 대해 석유개발 전문가들은 석유개발 초기 단계에 불과한데도 이를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것은 다소 성급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정치적 해석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조속히 시추에 착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석유개발 전문가들은 전날 윤 대통령의 포항 앞바다 석유 매장 가능성 발표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관련 업계가 매우 좁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련 내용이 외부로 거의 유출되지 않고 극비리로 신속하게 진행된 것으로 분석된다. 반대로 보면 학계 등 전문가의 검증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윤 대통령은 국정브리핑을 통해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며 “최소 5개의 시추공을 뚫어야 하는데 1개당 1000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 이에 대한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140억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유수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의 검증도 거쳤다"며 “이는 1990년대 후반 발견된 동해가스전의 300배가 넘는 규모이고, 우리나라 전체가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 넘게 쓸수 있는 양이라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발표를 두고 전문가들은 포항 앞바다가 동해가스전과 멀지 않기 때문에 추가 유전의 부존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발표는 다소 성급한 면이 있다는 지적도 했다.
석유개발 기업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예전부터 동해에 분명 석유·가스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들이 많았다. 요즘은 기술 발달로 인해 그동안 시도가 어려웠던 심해 도전이 여러 곳에서 성과를 내고 있으니 지켜 볼 만한 가치는 분명 있다고 본다"며 “2년 전에도 한국석유공사가 호주 우드사이드와 함께 인근지역의 다른 구조에서 석유·가스 부존은 확인했지만 시추 시 높은 압력 지역을 만나 안전문제로 중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석유공학 전문가는 “석유개발 업계에서는 매장량 10억배럴이면 자이언트 유전이라고 한다. 포항 앞바다 유전은 자원량이 140억배럴이고 매장량은 35억배럴 정도일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되면 슈퍼 자이언트 유전이라 평가할 수 있다"며 “시추를 해서 이를 정확히 평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물리탐사 자료를 평가한 미국 탐사 서비스기업 액트지오(ACT-GEO)에 대해 “물리탐사 자료를 최종적으로 확인, 평가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회사가 클 필요는 없다"며 “전문가가 엑슨모빌과 페트로브라스 심해 탐사 작업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포항 앞바다 유전 발견은 탐사 초기단계일 뿐인데, 이를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것은 성급했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석유공학 전문가는 “대통령의 발표를 보고 가스하이드레이트가 떠올랐다. 동해 바다 밑에 가스하이드레이트 6억톤 부존이 확인됐지만, 경제성이 없어 현재까지 상업생산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자칫 이런 사태가 재발될 수 있기 때문에 시추 1공이라도 한 다음에 발표를 했어도 충분했지 않았나 아쉬움이 든다"고 말했다.
'불타는 얼음'이라 불리며 미래 에너지원으로 평가받는 가스하이드레이트는 동해 심해에서 기초물리탐사를 통해 6억톤 부존이 확인됐다. 2005년 정부는 가스하이드레이트 개발사업단을 꾸리고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개년 개발 기본계획에 총 2257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상업생산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사업은 종료됐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이 자원량 개념을 매장량처럼 발표한 것도 시장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자원량'은 물리탐사로 확인된 원시 부존량을 말하고, '매장량'은 상업적으로 실제 생산이 가능 양을 말한다. 가스하이드레이트는 자원량이 6억톤이지만, 매장량은 제로인 것이다. 포항 유전의 매장량은 자원량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는데도 윤 대통령은 자원량을 생산이 가능한 양처럼 설명했다.
금융위원회는 2008년 가짜 석유회사들이 매장량 개념으로 사기치는 일이 빈번하자 '유전 개발사업 관련 모범공시 가이드라인'을 통해 매장량 개념을 확실하게 표기할 것을 강조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 발표 이후 주식시장에서는 관련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했다.
천문학적인 시추비용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실패에 따른 부담 감소를 위해 해외자본을 끌어 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석유개발 전문가는 “총 시추비용은 5000억~8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5공의 시추 가운데 석유공사가 1.5공, 해외자본이 3.5공을 담당해야 실패 시 석유공사의 재무위험부담이 감소한다"며 석유공사의 재무부담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