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2일(일)



[EE칼럼] 전력수급기본계획 해바라기 언제까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7.04 10:58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뻔한 논의 주제로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상대적 비중에 대한 논쟁부터, 좀 더 깊은 수준으로는 전기본의 존재 자체에 대한 고민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전기본 자체가 이념화되고 정치적 결정이며, 경직적이면서도 일관성이 떨어지고, 국가주도 통제경제라고 비판한다.


현재 야당 일부에서도 강력하게 폐지를 주창하고 있지만, 일단 여당 입장이 되면 정책의 방향을 리드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어 왔기에, 정치권으로부터의 존폐와 관련된 일관된 시그널도 받기 어려웠다. 현 여당이 원자력에 무게를 싣는 만큼, 과거 야당도 전기본을 통해 재생에너지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식이다.


이러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여러 계획경제 스타일의 중앙집권적 계획수립이 계속되는 원인은 무엇일지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모든 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이 전기본 수립 및 발표를 목빠지게 기다리게 하고 이에 일희일비하게 프레임을 짜는 데서 이익을 보는 집단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의도를 가지고 짜여진 프레임 틀 속에서 원전 비중이 늘었네, 경제성이 있네 없네, 역시 재생에너지 밖에 대안이 없네 하며 싸우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러한 프레임을 짠 측에게 우리 에너지 원이 더 경쟁력과 사업성이 있사오니 전기본에 반영해달라며 읍소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경쟁력이 있으면 그냥 시장에서 진검승부하여 사업자가 도태될지 생존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하면 될 일을, 정확성도 없는 유효기간 2년짜리 장기계획에 반영되기를 매달려야 하니 말이다.


결국 이 전기본의 문제의 핵심은, 자잘한 발전사업을 하나하나 계획하고 및 인허가 권한을 정부가 계속 보유하려는 데서 나온다. 전기본 자체가 많은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관성처럼 지속되는 것은,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권한을 유지하려는 관료제적 속성 때문이다.




장기적인 시계를 바탕으로 부지를 구입하고 설비를 구축하며 기술에 투자하는 사업자들에게는, 매년 날벼락 같은 일방적 수급계획을 강요하는 것은 기업에게 너무 잔인하다. 여기에 기업들의 의견이 충분히 보장되느냐 하면, 섣불리 반발했다가 오히려 불이익을 보기도 한다. 중복투자가 우려되서 아니면 환경오염 때문에? 수익달성 실패 위험은 기업이 짊어질 숙명이고 공공의 위해는 별도의 규제로 막아야지, 사업 자체를 제로베이스에서 재량으로 인허가하는 정부는 걸림돌 밖에 안된다.


그렇다고 정부가 정해준 대로 하면 문제가 없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최근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송전망 부족으로 인해 신규 발전소가 영업도 못하고 서있는 상황이다. 사업자가 모든 책임을 가지고 운영하는 방식이면 이런 건 기사감도 안된다. 하지만 정부가 정해주는 대로 따라갈 수 없다 보니, 인허가 줄 때 앞뒤 안가리고 덮어놓고 발전소부터 지어놓고 봐야 한다. 당연히 인허가권자로서 공식적으로 이에 대한 손해와는 무관하다고 할 수 밖에 없고, 사업자들은 여전히 억울함을 호소한다.


그럼 대안을 생각해보자. 첫째, 어느날 갑자기 정부에서 전력수급에 대한 계획 자체를 안하다고 상상해보자. 아마 당분간 다소 혼란이 있겠지만 분명 민간에서 중장기 전력수요전망을 바탕으로 설비에 대한 유입 전망(outlook)을 제시하고 컨설팅하는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정부에서 할 일은 시장이 벗어나지 않아야 할 필요 최소한도의 제약조건(constraint)만을 정해주면 된다. 예컨데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등이다. 기후변화 억제를 위해 국제협약 맺은 것이 있으니, 국내 에너지업계가 반드시 준수해야 할 경계선만 그어주는 심판 역할만 하면 된다. 지금처럼 심판, 운영자, 플레이어 모든 역할을 정부와 산하기관들이 하는 것보단 낫다.


둘째, 인허가권의 주체나 범위를 조정하는 것이다. 사실 정부 입장에서는 인허가권을 계속 쥐고 있으면서도 전력수급계획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어색하다. 아마 에너지업계는 로비 등을 통해 정부의 전력수급에 대한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서 역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거다. 그래서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입김을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작금의 전기본 수립 자체가 투명하다고 여겨지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프레임 안에 갇힌 의견 수렴 자체가 정부 해바라기를 양산하는 과정이고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모두가 수급계획에 예고된 신규 인허가를 기대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정부를 주시할 수 밖에 없다.


계획경제를 벗어나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전력시장이 궁극적인 목표인 건 이미 모두 안다. 그냥 누구나 시장으로의 자유로운 진출입 (Free Entry & Exit)이 보장되어 원하면 방해받지 않고 사업 개시하고, 망하면 떠나게만 하면 된다. 이걸 미리 걱정된다고 조율하겠다고 나서면 그 의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최근에 기득권 철폐가 화두가 된 적 있었는데, 전력부문이야 말로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힘든 만큼 위로부터의 조속하고 효율적인 개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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