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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게임은 마약이 아니다…질병코드 도입보다 인식 개선이 먼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7.08 13:44
기첩_이태민

▲이태민 산업부 기자

학창시절 여가 생활로 게임을 즐기던 친구들은 주변의 걱정 섞인 핀잔과 함께 자랐다. “게임이 아이의 미래를 망친다"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이 학교에서 달마다 배송됐고, 부모님의 단골 멘트는 “게임 많이 하면 머리 나빠진다"였다. 게임이 주는 순기능은 명확한 반면, 세간에서 쏟아내는 우려에 대한 객관적 지표는 없어 늘 의구심을 품었다.


며칠 전 유명 교회에서 열린 마약 중독 간증이 어딘지 불편하게 다가온 건 이 때문이다. 이날 무대에 오른 한 연사는 국내 마약 범죄 증가의 심각성을 알리면서 “어떤 이는 살아가며 느끼는 고통을 술로, 게임으로, 도박으로, 마약으로 해소한다"고 발언했다. 부정적 습관으로 내면의 결핍을 채우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그 한 마디에 게임을 사회악으로 여기던 20여년 전 오류가 내포돼 있어 씁쓸했다.


기자가 사회인으로 자라는 동안 게임 산업은 눈부신 성장을 이뤄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3년 상반기 콘텐츠 산업 동향 분석'에 따르면 게임 수출액은 34억4600만달러(약 4조5056억원)으로 전체의 약 64%를 차지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게임을 30대 수출 유망품목으로 지정한 바 있다.


과거 스타크래프트의 부흥을 이끌었던 임요환과 홍진호의 아성은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전설 페이커(본명 이상혁)로 이어지면서 e스포츠 종주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게임을 막연하게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하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등재 여부에 대한 업계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이는 게임이 각종 사회문제의 원인이란 주장의 근거로 활용돼 비합리적 규제가 양산되고, 산업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콘진원은 질병코드가 도입될 경우 2년 동안 게임 산업이 약 8조8000억원의 피해를 보고, 8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질병코드 등재를 섣불리 결정해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게임이용장애의 정의와 진단 기준 자체가 모호한 데다 게임과 질병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WHO의 질병코드 등재 과정에서 각계 의견 수렴이 부족했던 만큼 숙의를 충분히 거쳐야 한다는 게 학계 중론이다.


어떤 취미든 지나치게 몰입하면 그것을 '중독'이라 칭한다. 그것은 앞서 언급했던 연사의 말대로 알콜이 될 수도, 게임이 될 수도, 마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게임은 마약이나 알콜과는 달리 긍정적 측면이 많은 활동으로 '손 대기만 해도 문제인' 게 아니다. 인식의 전환이 시급한 이유다.


그 시절 게임을 즐겨 부모님의 걱정을 샀던 친구들은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라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문화산업진흥법 개정을 통해 게임도 문화의 한 일원으로 인정받은 지 10여년이 지났다. 이제는 시대 변화에 발맞춘 정책으로 산업 발전과 올바른 게임문화 정착을 이끌어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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