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박원주 칼럼] 기술진보와 우리의 선택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7.14 10:30

박원주 전 청와대 경제수석

박원주

▲박원주 전 청와대 경제수석

역사에 '만약'은 없다(There are no ifs in history.)지만 사실 '만약(ifs)'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살아남은 이들만의 특권이다. 그리고 그 '만약(ifs)'은 대체로 선택의 순간을 뜻한다. 현재는 과거 무수한 선택의 결과이고 우리 선택의 씨줄과 날줄이 모여 전혀 다른 미래를 만든다. 좋은 선택을 하는 방법은 결과를 충분히 예측하고 결론을 내는 것. 가장 흔한 선택중 하나가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인데 유감스럽게 이 때도 그 후과는 피할 수 없다. 케이지속의 기니아피그는 위협을 받으면 작은 구멍에 코를 박고 눈을 질끈 감는다. 그걸로 자기 덩치가 감춰질 거라 믿는다. 선택을 하지 않겠다는, 우리가 가장 흔하게 하는 선택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선택의 순간을 만들어 내는 것은 드문 일이다. 대부분의 모멘텀은 변화나 도전의 형태로 바깥에서 찾아 온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겪는 도전은 기술진보이다. 기술진보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양면적이다. 새로운 기술이 혁신을 불러오고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킨다는 점에서는 이를 환영한다. 국가 또는 기업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에서도 환영한다. 하지만 기술 진보가 그간의 거래 행태나 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불러온다면, 그래서 예상치 못했던 피해자가 나오고 승자독식의 구도가 만들어지면 사회적, 정치적 반발이 생겨난다. 기존 기술로 충분히 재미를 보던 시장점유자들도 혁신을 미루려다 실기하고 만다.


그렇게 해서 좌초되거나 폭망한 혁신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한국판 우버를 표방했던 TADA의 차량공유 서비스, 출혈경쟁에 빠진 대리운전, 당일배송 플랫폼, 10여년전 약진하다가 사회적 반발과 규제로 급브레이크가 걸렸던 대형마트의 물류유통 혁신 등. 외국에서도 이런 사례는 많다. 필름시장의 초강자로 사진, 영상시장의 디지털화를 온몸으로 막으려 했던 KODAK의 파산, 휴대전화 시장 세계1위 기업이었음에도 안드로이드 OS로의 전환에 때를 놓쳐 강퇴당한 핀란드 노키아 등. 실패는 단순히 기업의 소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버가 동남아에서 그랩, 볼트 등으로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의 이동 선택지가 늘어나고, 유통시장에서도 편리하고 위생적이며 저렴한 쇼핑이 제공되는 동안 한때 세계 IT의 메카라 자부했던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글로벌 혁신의 흐름에서 소외되어 왔다. 새로운 기술, 산업, 경제활동이 만들어 냈을 고급의 새로운 일자리와 소득기회도 우리를 비껴갔다. 확실히 '만약(ifs)'이란 단어가 아프긴 하다.


기술진보에 대한 또다른 반발은, 나중에 생각해 보면 명백하게 무가치한, 구시대적 가치관이나 도그마로부터도 온다. IMF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국제사회로부터 고강도 구조조정을 요구받았다. 우리 가치관이나 사회적 가치는 하찮은(irrelevant) 것으로 취급받았다. 강요된 혁신이 고통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전화위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구조조정 이전 우리나라는 외국인들이 국내에 토지나 자산, 기업을 사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그러나 '그날' 이후 우리 정부는 매년 외국인투자 유치 실적을 주요 성과로 발표했다. 우리 상식이 얼마나 덧없는지 보여주는 일례다.


그럼에도 일고의 가치도 없는 고루한 도그마나 정치구호는 여전히 미래를 암담하게 한다. 재생에너지, 온실가스 저감, 원자력, 자원 개발 등 응당 해야 할 일들에 정치색이 입혀지면서 분쟁과 파당이 만들어지고 있다. 상복 입는 기간을 두고 드잡이질하던 이조시대 예송 논쟁조차 이보단 어른스러워 보인다.




기술진보 앞에서 우리 선택지는 많지 않다. 하거나 또는 말거나 그뿐이다. 하지 않는다고 현상유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변화를 거부해도 경쟁자들이 이를 택하면 우리 입지는 약해진다. 그래서 이해충돌을 중재하고 올바른 선택을 찾는 역할이 중요하다. 피해자에 희생을 강요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래된 경제이론에 코즈정리(Coase Theorem)라는 것이 있다. 이익 보는 자와 피해자가 있을 때 서로 거래를 통해 모두 만족하는 균형을 찾을 수 있다는 이론. 21세기의 정부는 그런 일을 하라는 조직이다. 그래서 남보다 앞장서서 책임지고 창의적으로 선택하는 공무원이 잘 되는 세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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